1주일 말미를 주고, 돈 가치를 100분의 1로 떨어뜨리는 ‘폭거’는 과연 북한 같은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화폐개혁이야말로 북한 체제의 비합리성과 폭력성을 유감없이 드러낸 사례입니다. 이번 조처가 지난 2002년 7·1조치 이후 싹터온 시장경제 요소를 억제하고 국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 역시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번 호 〈시사IN〉에서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남습니다. 왜 하필 지금인가. 화폐개혁이 단행된 건 11월30일. 그로부터 8일 후면 미국 보즈워스 특사가 방북할 예정이었습니다. 굳이 대외로의 출구를 마련하기 위한 중요 회담을 앞두고 통제체제로 복귀한다는 인상을 줄 조처를 단행한 이유가 뭘까요?
지난주 베이징의 한 소식통이 이런 의문을 풀어줬습니다. 그는 북측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단언했습니다. “화폐개혁은 내년(2010년)의 대담한 개방을 앞둔 체제정비 조처이다.”
그의 설명인즉 이렇습니다. 올해는 북한에게 ‘사방이 꽉 막힌 봉쇄상태에서 살아남기’를 실험한 한 해였습니다. 지난해(2008년) 12월24일 김정일 위원장의 천리마제강소 방문에서 올해 6월25일 국내경제 부문 일꾼과의 담화 때까지 이 기조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9월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대외경제 부문 일꾼과의 담화에서 변화가 나타납니다. 내년부터 외국투자를 적극 유치할 테니, 미국·유럽을 비롯한 선진 발전국과의 경제무역 합작을 위한 방안을 찾아보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입니다. 이때부터 대외 개방을 위한 법령 및 체제 정비가 조용히 진행됐고, 이번 화폐개혁 조처 역시 그 일환이라고 합니다.
북한이 그동안 나진·선봉이니 신의주니 하면서 여러 차례 개방을 시도했으나 별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절박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내걸었는데, 국내의 낙후한 생산설비를 교체하지 않고는 요원하다는 거지요. 자체 개발을 통해 가능하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외국의 선진 산업기술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빠르면 2010년 신년 사설에서부터 새로운 정책 기조를 엿볼 수 있다는 건데, ‘대담한 개방’이라는 ‘가지 않은 길’에 앞서 집안단속이 필요했다는 거지요.
북의 수뇌부가 그리는 2010 북한의 모습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라는 과거와 해외의 직접투자라는 미래가 공존하는 어디쯤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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