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등 우여곡절 끝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이 재출범했다. 지난 8년간 전쟁을 치른 아프간에 제2막이 오른 만큼 국제사회의 기대가 많지만 현실은 쉽지 않아 보인다. 두 번째 임기 연장에 성공한 카르자이 대통령이 혼란 속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19일 카르자이 대통령이 취임식을 치르고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제2기 카르자이 정부는 카불 시민들 없이 출범했다고 말할 수 있다. 중무장 병력이 카불 시내를 포위하고 탈레반 공격을 막기 위해 취임식 날을 임시 공휴일로 선포했다. 상점과 학교는 문을 닫았고 국민에게 외출 자제를 당부했다. 카불로 가는 주요 간선도로는 구급차와 군대 차량을 제외하고는 통행이 통제되었다. 카불 시내는 텅 비다시피 했고 국민은 집안에서 방송 중계를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취임식장에는 카불 시민 대신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 데이비드 밀리밴드 영국 외무장관 등 42개국 외교관과 귀빈이 자리를 지켰다. 대통령 취임 연설의 주요 내용은 부패 및 마약 척결 약속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취임식 전날 스캔들이 불거져 공언의 설득력을 떨어뜨렸다. 광산부 장관이 2007년 구리광산 개발권 입찰 과정에서 중국 기업으로부터 뇌물 3000만 달러를 받은 의혹이 그것이다. 이 추문에 대해 카르자이는 딱히 부인도 인정도 하지 않았다.

제2기 카르자이 정부의 내각 구성원으로 거론되는 사람 중 부패와 연관된 인물이 많다. 아프간타임스 아메드 기자는 “아프간에서는 지금이 가장 활발하게 뇌물이 오가는 철이다. 장관 자리를 두고 가격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카불 시민들은 크고 비싼 차가 지나가면 ‘저 차 트렁크에 미국 달러가 어마어마하게 있겠지? 지금 장관 사러 다니느라 바쁘네’ 하고 비웃는다”라고 전했다.

지난 11월19일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이 재출범했지만 부패 및 마약 척결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영국, 아프간 문제 유엔에 떠넘기고 싶어해

마약 척결 약속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동생 왈리 카르자이는 ‘마약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부패의 대명사가 되었다. 미국과 유럽이 이 마약 왕을 처리하라고 카르자이 정부를 몰았지만 카르자이 대통령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이 든든한 형 덕에 동생 왈리는 마약 유통을 독점해 전 세계 아편 93%를 주무르고 있다. 이런 동생을 두고 마약 척결을 호소하는 대통령이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재선을 위해 카르자이가 손을 잡은 인사들도 하나같이 과거 집단 학살과 마약 거래 등 전력이 있는 군벌 출신이다. 그래서 ‘합법적인 범죄 집단’ 같은 정부가 탄생할 것이라고 카불 시민은 걱정한다.

실현 불가능한 부패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취임식 테이프를 끊은 카르자이 정부가 이런 핑크빛 개혁 약속을 실행하지 못한 채 과거의 무능을 되풀이한다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아프간 원조 및 재건 의욕이 꺾일 수도 있다. 이미 지난 9월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등 3국 정상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아프간 대선 여파 등을 논의할 국제회의를 올해 안에 열 것을 주문했다. 3국 정상은 아프간 군대와 경찰의 훈련을 강화하고 규모를 늘려 독자적인 자위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작전 지휘권을 이양하는 문제 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것은 미국과 유럽 주요국이 ‘아프간에서 손을 떼고 싶으니 이제 유엔이 그 문제를 떠맡아달라’는 묵시적 압박이다. 아프간 대선이 부정 선거로 얼룩진 다음 나온 것이라 대선을 계기로 서방의 실망이 직접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된다.

미국은 알카에다를 공격 목표로 삼고 있지만, 실제 전투는 탈레반(위)과 벌인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카르자이는 본인 취임식을 계기로 무언가 쇄신하는 모양새를 보여 국제사회의 원조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한다. 국제사회의 원조 없이는 제대로 국정을 수행할 수 없는 아프간의 가난함에서 연유하는 비극이지만, 그동안 부패지수 최하위를 보인 아프간 정부의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또한 카르자이 정부가 이번 취임식에서 제시한 중대한 목표는 탈레반과의 화합이다. 카르자이는 무력을 포기한 전직 탈레반 인사를 대거 수용할 의사가 있으며, 탈레반과 화해를 모색하기 위해 헌법상 최고 민의 수렴 기구인 부족장회의 소집을 촉구했다. 카르자이가 미국과 아프간 정부의 주적으로 규정되어 전투를 벌이던 탈레반과의 화합을 모색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대통령 선거 운동을 하면서도 탈레반을 끌어들이려 안간힘을 썼다. 대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였다. 결과야 탈레반이 무장 공격으로 응사했지만 여전히 그는 탈레반을 끌어들이고 싶어한다. 아프간은 이제 탈레반 없이는 정상화되기 힘든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는 끊임없이 탈레반을 향해 러브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와 대통령은 물론 부족장회의까지 미국의 앞잡이로 규정하는 탈레반이 카르자이와 손잡을 리 만무하다. 이래저래 카르자이 정부의 갈 길이 먼 것이다.

카르자이의 취임식에 맞춰 미국 행정부가 9월부터 끌던 추가 파병과 아프간 출구전략을 발표했다. 12월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대국민 연설을 통해 내년 상반기까지 아프가니스탄에 미군 병력 3만명을 추가로 파병하는 계획과 함께 2011년 7월부터는 군대를 철수시키겠다는 출구전략도 구체화했다. 추가 파병을 통해 테러 조직 알카에다를 토벌하고 이 지역 안보책임을 아프간으로 이양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2년 안에 8년째 이어온 아프간 전쟁에서 벗어나겠다는 게 새 아프간 전략의 핵심이다. 이는 현장 지휘관인 스탠리 매크리스털 장군의 4만명 추가 파병 요구를 충분히 받아들인 결과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7월부터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라고 공언했다.
그동안 추가 파병에 대해서 여러 관측이 나왔지만 동맹국들이 추가 파병에 적극적이지 않아 미국이 3만명 선에서 자체 부담을 진 것이다. 이로써 현재 아프간에는 9만명이 넘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이라크 전쟁 당시 10만명에 근접한 숫자다. 사실 미군 3만명을 추가 파병하는 것이 오바마 대통령으로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날이 미군 사상자가 늘어가며 아프간 전쟁 반대 여론이 50%가 넘어서는 상황에서 더 많은 미군을 본토에서 아프간으로 보내는 것은 국내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다. 그만큼 미국에게 아프간 상황이 다급해진 것이다. 2011년에 철군한다는 시한을 못 박은 것도 이런 국내 여론을 의식해 같이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아프간 공화국은 미국의 새로운 전략을 환영한다. 추가 파병은 평화와 안보, 아프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밝혔다.

오바마 연설문 중 눈여겨볼 것은 토벌 대상을 탈레반이 아니라 알카에다로 규정한 것이다. 사실 아프간에서 미군과 직접 전투를 벌이는 대상은 탈레반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왜 탈레반을 거론하지 않았을까? 앞서 카르자이가 탈레반과의 화해를 도모하고 있고, 미국의 토벌 대상이 알카에다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알카에다를 와해시키고 물리치는 것이 목표라고 거듭 확인했다. 즉 아프간-파키스탄 국경지대에 있는 알카에다 은신처에 대한 파괴가 급선무라고 언급했다. 이를 통해 볼 때 탈레반을 최대한 회유해 알카에다와의 연결고리를 끊어 아프간 평화를 모색하는 것이 미국의 주요 전략이 될 전망이다.

미국의 적, 탈레반에서 알카에다로

하지만 오바마의 새 전략도 카르자이의 그것처럼 실현 가능성이 별로 있어 보이지 않는다. 현재 아프간 미군 사상자는 932명을 넘어 1000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6월 2만1000명 추가 파병 시기에 맞추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미군 사상자는 3만명 추가 파병을 계기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2년이라는 시기를 명시해 수렁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목표를 제시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미지수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오바마 대통령 연설이 있은 지 불과 며칠 후인 12월6일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2011년 7월은 철군을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쉽게 말해 아프간이 안정되면 그때 미군 철수 시기를 고려한다는 이야기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는 출구전략을 이야기하거나 최종적인 철군 마감 시한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권한 이양을 시작할 수 있느냐는 평가이며 권한 이양은 아프간 보안군에 책임을 넘기는 것이다”라고 게이츠 장관 발언을 뒷받침했다.

카르자이 대통령 역시 CNN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7월로 제시된) 일정은 철수 개시 시점이 아니라, 아프간이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으로부터 치안 통제권을 떠맡기 시작하는 목표 시점이다. 2011년 7월까지 아프간 스스로 치안을 떠맡을 준비를 하지 못하면 미국과 여타 동맹국이 인내심을 갖고 계속 아프간에 병력을 주둔시켜야만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아프간과 관련한 주요 발언을 종합해보면 2011년 7월 미군 철수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카르자이 말대로 동맹국이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줄지는 알 수 없다. 동맹국 처지에서도 지난 8년을 제외하고라도,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막대한 원조와 군비를 감당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동맹국들에게 아프간 전쟁이 미국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국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며 같이 가야 할 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에 아프간과 미국은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지만 아프간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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