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정보기술(IT) 업계에도 알려진 소문난 얼리어답터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처럼 블랙베리폰을 이용해 이동 중에도 트위터에 글을 올리던 그가 최근 애플사의 아이폰을 구입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사비를 털어 진보신당 당직자들에게 아이폰을 사주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한나라당도 당직자 100여 명에게 아이폰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진보 정당과 보수 정당이 스마트폰(전화와 전용단말기, 무선인터넷이 모두 가능한 휴대전화)으로 얼리어답터 경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포털사이트 ‘다음’도 전 임직원에게 스마트폰을 제공하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애초 다음 측은 아이폰을 지급할 예정이었지만 스폰서 기업인 삼성의 옴니아2도 지급 대상에 포함했다. 임직원들이 어떤 스마트폰을 더 선택할지가 IT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요즘 IT업계 최대 화두는 아이폰이다. 12월3일 IT업계 종사자들이 많이 참석한 트위터파티(국내 트위터 이용자들의 자선파티)의 1등 경품 역시 아이폰이었다. 참가자 100여 명이 가위바위보 시합에서 1등을 차지한 V코어 유영진 대표가 ‘아이폰 전도사’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가 제공한 아이폰을 선물로 받았다.
이날 파티 참석자 중 아이폰을 가진 사람은 유영진 대표와 이찬진 대표만이 아니었다. 아이폰이 본격 출시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지만 수십 명이 아이폰을 가지고 와서 행사 장면을 찍고 트위터에 행사 소식을 전하고 초대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바로 그 가수의 트위터에 팔로워 등록을 했다.

언론은 왜 아이폰 비판 기사 양산하나

행사가 끝나고 아이폰 이용자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구입한 아이폰을 내밀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트위터에서는 우스갯소리로 휴대전화를 쓰는 사람은 ‘폰루저’고, 아이폰을 쓰는 사람은 ‘폰유저’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아이폰 출시 전후로 아이폰의 배송과 기능 등에 대한 글이 트위터 게시판(타임라인)을 도배했다.

아이폰은 이제 IT업계 이슈를 넘어서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되었다. IT업계에서는 아이폰 출시를 흑백 텔레비전에서 컬러 텔레비전으로 전환하는 것에 비유한다. 혹자는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을 컬러 텔레비전을 건너뛰어 고화질 디지털 텔레비전으로 옮겨간 것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미리 예약 주문을 받았던 아이폰은 순식간에 6만5000대가 팔려나갔다. 출시된 지 일주일 만에 T옴니아 1년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판 것이다. 대기수요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초기 인기에 힘입어 발생할 수 있는 추가 수요를 반영하면 아이폰 현상은 당분간 지속되리라 보인다. 증권가에서는 벌써 아이폰 수혜주들이 테마주로 묶이고 있다.

아이폰 출시로 시장이 요동치게 된 데에는 국내 이동통신사와 휴대전화 업체들의 ‘쇄국주의 정책’이 한몫했다. 외국에 비해 1년10개월이나 늦게 아이폰이 출시되었는데 그 이유가 국내 이통사와 휴대전화 업체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오기도 전에 이미 대단한 기계가 되어버렸다. 얼마나 대단한 휴대전화기에 그렇게 견제하느냐는 것이다. 

아이폰 출시가 늦춰지면서 국내 통신업체와 휴대전화 업체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은 계속 고조되었다. 언제까지 빗장을 잠그고 ‘기능은 떨어지는데 요금은 비싼’ 휴대전화를 사용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노키아나 모토롤라 등 외국 휴대전화 업체의 영향력이 미미한 국내 시장은 이미 ‘공급자시장’으로 편재되어 있어서 이런 소비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폐쇄성은 두 가지 역효과를 낳았다. 하나는 일종의 ‘티저 마케팅’처럼 아이폰에 대한 궁금증을 키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키운 것이다. 이제 국내 휴대전화 업체는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아이폰이라는 강력한 적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IT업계와 인터넷에서는 아이폰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지만 언론에서는 뜨뜻미지근했다. 아이폰이 단점이 많다거나 배송이 지연되고 있고 곧 신제품이 나와서 아이폰 인기를 추월한 것이라는 식으로 아이폰 신드롬에 물타기를 하는 보도가 횡행했다. 과연 아이폰은 별볼일 없는 휴대전화일까?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아이폰 관련 보도를 하는 언론이 아이폰과 이해관계가 반대되는 삼성전자·LG전자·SK텔레콤 등에게 받는 광고비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왜 언론에 아이폰 배송 문제와 개통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가 차고 넘치는지, 아이폰의 강점은 소프트웨어인데 왜 하드웨어를 비교하는 기사만 넘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누리꾼이 많았다.  


100명 중 72명 "아이폰이 최고 폰"

〈시사IN〉은 아이폰 현상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답을 구하기 위해 모바일업계 관계자·기자·블로거·얼리어답터 등 이동통신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이들에게 최고의 스마트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스마트폰 운영체제 중 가장 나은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설문에 참여한 사람들은, 업계 관계자가 얼리어답터이고, 얼리어답터가 블로거로 활동하고, 블로거가 기자가 되고, 기자가 블로거로 활동하기도 하는 등 서로 얽히고 설키어 있다. 이들은 모바일과 관련한 최신 정보를 가졌거나 다양한 사용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조사 대상은 전문가로부터 연속적으로 소개를 받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자신이 얼리어답터라고 자천하며 참여한 사람은 사용 경력을 감안해 포함시켰다. 대학생부터 중장년층 사용자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대표할 수 있도록 안배했다. 주로 남성이었지만 여성 응답자도 적지 않았다. 선택 폭을 넓히기 위해 곧 출시될 스마트폰도 대상에 넣었다. 

조사 결과는 명확했다. 국내 전문가들의 머릿속에는 국산 스마트폰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차이가 현격했다. 절대 다수가 아이폰을 최고 스마트폰으로 꼽고 아이폰 운영체제인 ‘맥 OS’를 최고의 스마트폰 운영체제로 꼽았다. 아이폰을 계기로 스마트폰 업계 전반을 들여다보려고 했던 기사는 다시 아이폰으로 회귀했다.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 100명 중 72명이 아이폰 3GS를 최고의 스마트폰으로 꼽았다. 그 다음 14명이 모토롤라 드로이드 등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꼽혔다. SKT가 내년 초에 모토롤라 사의 드로이드를 도입할 예정이어서 곧 아이폰과 함께 양강 체제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림(RIM) 사의 블랙베리폰은 6명이 선택했다. 블랙베리폰은 특히 비즈니스용으로 유용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이폰을 최고 스마트폰으로 꼽은 사람 중에서도 블랙베리의 효용성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밖에 삼성 스마트폰과 HTC의 ‘HD2’, 노키아 ‘XM5800’을 꼽은 사람이 각각 4명씩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꼽은 4명 중 2명은 미라지폰을 선택했다.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이유였다. 그 외 쇼옴니아 폰을 꼽은 사람이 한 명, Wi-Fi(와이파이·근거리 통신용 무선랜) 기능이 탑재된 수출용 옴니아2를 꼽은 사람이 한 명이었다. 아이폰의 라이벌로 꼽히는 T옴니아2를 꼽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네오위즈의 허진호 대표는 각 스마트폰의 특징을 비유를 섞어 절묘하게 설명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특징에 따라 조강지처와 애인 그리고 (여자)친구로 구분했다. 투박하지만 실용적인 블랙베리폰은 조강지처, 이것저것 매력이 많은 아이폰은 애인, 아직 좋은지 나쁜지 모르는 안드로이드폰은 그냥 ‘여자친구’ 정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에서는 하드웨어 경쟁력만큼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중요하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스마트폰 운영체제에 대한 것인데 한 스마트폰 운영체제에 익숙해지면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운영체제가 중요하다. 업계에서는 향후 스마트폰 시장이 하드웨어 경쟁력 보다는 운영체제를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 경쟁력 위주로 재편되리라 예상한다.

스마트폰 운영체제에 대한 조사에서도 역시 아이폰에 탑재된 맥 OS에 대한 선호도가 46명으로 가장 많았다. 가장 열린 운영체제로 꼽히는 구글 안드로이드를 꼽은 사람도 33명이나 되었다. 대체로 전문가들은 아이폰 OS를 가장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체제라고 인정했지만 미래 가능성은 안드로이드에 더 무게를 두었다. 노키아의 운영체제인 심비안을 꼽은 사람은  6명이었다. 반면 옴니아2가 채택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모바일을 꼽은 사람은 2명뿐이었다. 

전문가 설문조사의 결과 아이폰의 현재 위상과 안드로이드폰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블로그 ‘링블로그’를 운영하는 야후코리아 명승은 차장은 “아이폰이 초기 승자가 되겠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쪽은 안드로이드 체제다”라고 말했다.

강력한 시장 주도자로 떠오른 아이폰에 대한 글로벌 기업 삼성의 전략은 무엇일까? 하나는 애국심이다. 삼성전자 대리점에서는 옴니아2에 태극기를 그려 넣고 홍보하기 시작했다.  노상범 한국안드로이드 대표는 “삼성이 하드웨어 비교와 애국심 호소밖에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호평받아

삼성전자가 아이폰 쓰나미를 막기 위해 주력하는 부분은 하드웨어의 비교다. 배터리 교체가 안 되는 것, DMB 방송을 볼 수 없는 것, 애프터서비스가 리퍼 방식(고장난 휴대전화를 다른 휴대전화로 교체해주는 방식)이라 소비자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것 따위를 강조한다. 문제는 이런 단점이 장점에 가려진다는 것이다.  

얼리어답터인 춘천MBC 박대용 기자는 “방송 기자는 특성상 뉴스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그래서 DMB 기능이 있는 옴니아2를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고의 스마트폰은 아이폰이라고 본다. 직접 사용해보면 차이가 현격하게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하드웨어의 비교는 전문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아이폰에 대해서 가장 인정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UI(User Interface)가 잘 되어 있다는 것, 즉 사용자 친화적이어서 초보자도 금방 사용법을 익힐 수 있다는 점이다. IT 블로거 문성수씨는 “아이폰은 현존하는 스마트폰 중 가장 사용자 친화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애플 아이폰의 차이에 대해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마인드 차이라고 분석한다. 삼성이 휴대전화 기술을 개발할 때 애플은 휴대전화 기술을 개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IT 전문가인 한국경제신문 김광현 기획부장은 “아이폰은 휴대폰의 콘셉트를 바꿔놓은 혁신적인 폰이다. 앱스토어라는 것을 통해 전 세계 개발자들이 애플리케이션(확장 이용장치)을 만들어 올리게 함으로써 패러다임을 바꿨다”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부진이 독점시장의 폐해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폐쇄적인 옴니아2를 선택한 SK텔레콤의 부진은 승자독식 구조의 폐해를 보여준다. 대형 이동통신사로부터 콘텐츠 개발 이익이나 부가서비스 이익을 편취당해온 개발자들은 아이폰 관련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런 양상이 심해지면 아이폰의 독주가 계속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폰 출시로 독점시장은 균열이 생겼다. 아이폰 출시에 대비해 20만원이나 낮춰졌던 옴니아2의 가격은 다시 20만원이 더 낮아졌다. 통신회사들은 이동통신 부가서비스 가격도 낮추고 있다. 이제 본격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과연 국내 휴대전화 업체와 이동통신사는 아이폰 쓰나미를 막아낼 수 있을까? 아이폰을 구입하며 노회찬 대표는 “아이폰보다 더 좋은 국산제품이 곧 나올 것을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블랙베리폰과 아이폰을 쌍권총처럼 차고 다니는 그가 국산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날이 과연 올까?  

 

 

 


※설문에 참여해주신 분들:곽동수(교수) 구본권(한겨레신문 기자) 권정혁(개발자) 김광현(한국경제신문 기자) 김낙호(블로거) 김종래(PR전문가) 김주완(경남도민일보 기자) 김철균(청와대 비서관) 김태현(얼리어답터, 목사) 노상범(애프터레인 이사) 도아(블로거)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 소장) 류현정(전자신문 기자) 명승은(야후 차장) 문성수(블로거) 박대용(춘천MBC 기자) 안홍기(오마이뉴스 기자) 양광모(블로거, 의사) 이성규(태터앤미디어 팀장) 이성진(블로거) 이요훈(블로거) 이정환(미디어오늘 기자) 이중대(블로거) 이찬진(드림위즈 대표) 이학준(블로거) 임정욱(라이코스 대표) 정재욱(블로거) 정호재(동아일보 기자) 조병천(얼리어답터) 최진주(한국일보 기자) 한준성(하나은행 신사업본부장) 허진호(네오위즈 대표) 홍순성(블로거) 홍진석(세계일보 기자) ladyqaqa(얼리어답터) 5oa(대학생) 외 64명.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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