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 호프만 씨(42)는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2003년부터 5년간 아프가니스탄 동부 쿠나르 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벌였다. 어릴 때부터 구호 활동에 관심을 가진 그는 아프간으로 갈 때도 아프간 국민을 치료한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설레었다고 한다. 그가 진료했던 쿠나르 주의 작은 마을에는 연일 환자가 몰려들었고 약을 받아가던 주민의 감사하다는 말에 피곤을 잊곤 했다. 하지만 2004년 6월, 아프간 북서부 바드기스 주에서 국경없는 의사회 구호요원 5명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그의 의료 봉사활동은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 사건은 2001년 말 탈레반 정권 붕괴 후 국제 구호요원을 대상으로 벌인 최악의 공격으로 평가되었다.

그 후에도 간신히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이어진 그의 진료는 지난해부터 아프간 치안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아프간에 두고 온 환자들에 대한 염려로 매일 상심에 젖어 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아프간 산맥들이 보이고 아파서 우는 아프간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 괴롭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렇듯 아프간이 위험해지면서 국경없는의사회 같은 국제 구호 단체마저 철수하고 있다.

탈레반에게 납치된 프랑스 구호 단체 직원 에그레토 씨(위)가 위협받는 모습.
지난해 11월, 아프간 현지 방송들이 일제히 공개한 비디오에는 한 프랑스 남자가 총으로 위협당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는 지난해 11월3일 아프간 파르완 주에서 피랍된 프랑스 구호 단체 직원 다니 에그레토 씨(32)였다. 에그레토 씨는 파리에 본부를 둔 인권그룹 솔리다리테 래케 소속의 교육 전문가로 이날 다른 프랑스 구호 단체 ‘아프란’ 소속 차량에 탑승해 파르완 주 시내를 지나는 중 갑자기 무장 괴한에게 강제로 끌려갔다. 그렇게 납치된 그가 얼굴 양쪽을 총구로 위협받으며 석방을 호소하는 장면은 프랑스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그는 아프간 사람들을 구호하러 간 민간 구호 단체 직원이어서 프랑스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더군다나 그가 납치된 곳은 미군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설명해온 파르완 주로, 한국군 주둔 예정지이기도 하다.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구호 단체들은 주로 아프간 국민에게 긴급히 이루어져야 할 구호를 담당한다. 현재 252개 국제 비정부기구(NGO)가 아프간 당국에 신고되어 있으며, 이들 기관은 주민 수백만명에게 의료·식량 등을 지원한다. 그들은 군과 별개인 순수 민간인 차원의 구호 단체 소속인 경우가 많으며 아프간 사람들에게 절실한 의료나 교육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을 한다.

한국인 납치 사건으로 외국 구호 단체 위축

하지만 에그레토 씨처럼 이들 외국인 구호 단체가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 아프간에서 활동 중인 100여 개 구호 단체는 지난해 8월1일 공동성명을 통해 탈레반의 공격 횟수가 전 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 가까이 증가했으며, 최근에는 구호 단체에 대한 공격도 늘었다고 주장했다. 구호 단체 직원들에 대한 납치나 공격이 계속 늘어 그나마 활동 중인 구호 단체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프랑스 구호 단체 ‘아프란’ 소속 활동가인 이사벨 시온 씨는 “아프간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파르완에서 벌어진 에그레토 씨 납치 사건 이후 프랑스 구호 단체 일부가 철수했고 그나마 남아 있는 단체들도 바깥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목숨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구호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현지인 활동가를 뽑아 우리 사업을 계속 진행하려 했으나 그것도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활동가들의 움직임이 줄어들자 아프간 현지인 구호 활동가가 희생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탈레반이 민간 구호요원을 납치하는 이유는 공격하기 쉽고 외국 정부를 압박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위는 한 난민 캠프의 유니세프 임시학교.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국제 구호 단체에 신변 안전 정보를 제공하는 ‘아프간 비정부기구안전국’(ANSO)은 지난 10월 초 펴낸 최신 보고서에서 7~9월에만 인도적 지원 활동가를 겨냥한 공격이 모두 42차례나 벌어졌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 8명이 목숨을 잃었고, 6명이 다쳤다. 사망자는 모두 현지인 활동가였다. 올 들어 9월 말까지 인도적 지원 활동가를 겨냥한 공격은 114차례 벌어졌으며 외국인 활동가 18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에그레토 씨 납치 사건을 주도한 것은 탈레반으로 밝혀졌다. 외국 구호 단체 직원에 대한 납치나 공격은 주로 탈레반에 의해 이뤄졌다. 그들은 연합군 부대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무장한 민간 외국인이 공격하기 쉽기에 그들을 납치해 협상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고 외국군을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2007년 발생한 한국인 23명 납치 사건이다. 그들은 한국인 납치를 통해 한국군 철수를 유도했고 구속되었던 탈레반 지도자 석방을 요구했다.

한국인 납치 사건으로 외국 구호 단체들은 더욱 위축됐다. 미국외교협회는 ‘아프가니스탄 지원에 대한 도전’이라는 제목의 분석 보고서에서 “탈레반이 한국인 23명을 납치함으로써 아프간 지원 요원에 대한 폭력사태가 고조될 수 있다는 새로운 공포감이 조성되고 있다. 폭력사태 확산으로 한국 등의 몇몇 그룹이 활동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8월 일본 NGO ‘페샤와르카이’에 소속돼 아프간에서 구호 활동을 하던 이토 가즈야 씨(31) 사망 사건이다. 일본 시즈오카 현 출신인 그는 아프간 현지 진료소에서 의료 활동 중인 페샤와르카이에서 농업 전문가로 일해왔다. 아프간 잘랄라바드에서 차로 이동하던 중 운전기사와 함께 납치됐던 이토 가즈야 씨는 잘랄라바드 근교 산악지대인 케와 지구의 나우 지역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의 죽음 이후 탈레반 대변인은 “일본인을 살해했다. 모든 외국인이 아프간을 떠날 때까지 계속 죽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아프간에서 구호 활동을 하다 탈레반에게 납치·살해된 이토 가즈야 씨.
이토 씨의 사망은 일본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일본인이 아프간에서 의료 활동을 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라는 성토가 일본 현지 방송과 신문에 연일 오르내렸다. 결국 이 사건은 일본 자위대의 아프간 파병을 저지했다. 당시 일본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고 해군 병력이 미군 주축의 연합군에 연료 보급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아프간 부흥을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를 파견하려 했다.

그러나 이토 씨 피살 사건이 벌어진 지 하루 만에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은 “정부가 (자위대 파병 방침을) 채택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그해 6월 현지에 조사단을 보내 자위대 파병 여부를 타진했던 만큼, 이 발언은 사실상 일본 정부가 아프간 파병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정부가 파병 방침을 바꾼 데는 이토 씨 사망을 계기로 아프간 현지 치안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또 파병에 부정적인 일본 국내 여론도 자위대 파견을 포기하게 된 배경의 하나다.

그동안 야당뿐 아니라 공명당 등 여권 내에서도 치안 악화를 이유로 파병에 반대하는 신중론이 대세를 이뤄왔다. 일본은 과감히 파병을 포기함으로써 이토 씨 피살 사건으로 들끓는 국내 여론을 잠재웠다.
왜 아프간 사람들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하는 사람까지 위험해진 것일까. 그나마 외국 구호 단체 덕에 의료·식량 등의 원조를 받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에 대해 미국 랜드연구소의 세스 존스 연구원은 탈레반이 국제 구호 요원을 공격함으로써 외국 정부가 아프간 사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을 시도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중 삼중으로 경계하는 군부대 대신 소프트 타깃인 외국 민간 구호 단체들을 공격함으로써 외세 개입에 대한 자신들의 의지를 알리는 홍보 효과를 함께 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델 호프만 씨도 “치안이 확립되지 않은 아프간 같은 나라에서 구호 활동을 하는 것은 사실상 순서가 바뀐 것이다. 치안이 어느 정도 확립되어 구호 활동가의 안전이 먼저 보장되어야 인도적인 구호 활동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프간에서 미군 주도 아래 지방재건팀(PRT) 사업이 진행되면서 세계 각국 구호 단체들이 러브콜을 받았었다. 민간과 군인이 함께 재건 사업을 주도하며 연합군은 아프간 사람들에게 이미지 쇄신을 시도했고, 구호 단체들은 미군이 안전을 보장한다는 말에 겁 없이 아프간으로 들어왔지만 그것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즉 탈레반이 아프간 국토의 80% 이상을 장악한 상황에서 구호 활동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기독교의 지원받는 구호·자선 단체 많아

탈레반이 민간 구호 단체를 공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외국 구호 단체를 ‘이슬람을 기독교로 개종하기 위해 온 서방 기독교 무리’로 규정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한국인 납치 사건뿐 아니라 지난해 10월20일에는 수도 카불에서 영국계 기독교 원조 단체인 서브 소속 여성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접근한 무장 대원 2명에게 총격을 당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 피살당한 여성은 아프간에서 의료 활동을 돕고 있었으며 사건 직후 탈레반 대변인 자비울라 무자히드는 로이터와의 전화 통화에서 “숨진 직원이 기독교를 전파했기 때문에 탈레반 지도부의 명령에 의해 죽였다”라며 자신들의 범행을 확인했다. 서브는 지역 개발과 교육, 장애인 훈련에 초점을 맞춰 활동을 벌여온 영국의 기독교 선교 단체였다.

아프간 통신의 샤리프 편집장은 “이 사건에 대한 현지 주민의 반응도 ‘아프간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인도주의자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를 기독교로 개종하기 위해 온 서방 세계의 악에 대한 탈레반의 당연한 응징’이라는 것이다. 이에 앞서 아프간의 영향력 있는 이슬람 성직자와 학자로 구성된 ‘이슬람위원회’는 지난해 1월4일 카르자이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기독교계 구호 단체의 선교 활동을 제재해줄 것과 2001년 탈레반 정권 몰락 이후 집행되지 않았던 공개 처형의 재도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아프간에 들어온 외국 기독교 구호 단체가 지역민을 개종시키고 있음을 지적했다.

아프간 법원은 2006년 기독교 구호 단체에 의해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압둘 라만에게 사형을 선고해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난을 산 바 있다. 이후 국제사회의 비난과 사면 요청이 잇따르자 법원은 결국 라만을 석방했지만, 그가 이탈리아로 망명하는 선에서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많은 수의 구호·자선 단체가 기독교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렇다보니 구호 활동 중에 기독교를 전파하려고 급하게 덤비는 활동가도 있어 아프간 사람들 사이에서 외국인 구호 단체 활동가는 자신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온 자라는 의식이 팽배해졌다.

치안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구호 활동을 벌여 구호 활동가들의 희생이 잇따른다. 그리고 구호 요원의 희생을 감수하며 아프간에서 구호 활동을 진행하기는 힘들다. 아프간에서는 빵 한 조각과 약 한 알보다 치안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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