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버스를 타면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여성을 자주 보게 된다. 좁은 버스에서 유모차가 오르고 내릴 때면 번거롭지만 버스 기사나 승객은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에 대해서 인내심을 발휘한다. 지하철에서도 마찬가지다. 거리 곳곳의 유모차는 오늘날 파리에서 익숙한 풍경이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결혼을 한 커플이거나 안 한 커플이거나 자녀를 한 명에서 두 명, 심지어는 세 명을 낳기도 한다.

프랑스의 출산율이 낮다는 말은 옛말이 된 듯하다. 얼마 전 프랑스 국가 조사기관인 INSEE 자료에 따르면, 유럽에서 프랑스는 아일랜드와 함께 출산율이 높은 나라다(여성 1명당 2명 출산). 주변국인 이탈리아·스페인·독일이 여성 1명당 1.4명을 출산한 것에 비하면 훨씬 높은 수치다. 산모의 연령 역시 많아졌다. 2008년 출산 여성의 평균 연령은 30대로 지난 20년 동안 두 살이 더 많아졌다. 또 신생아 21.5%의 엄마 연령이 35세 이상이라고 한다. 결혼이 아닌 동거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 수도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베이비 붐 시대와도 무관하게 출산율이 낮은 나라였다. 1994년에는 출산율이 가장 저조해 여성 1명당 1.65명을 출산했다. 이유는 경제위기와 더불어 아이를 3세까지 키우는 데 어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출산여성 일자리 지키기에 민·관 협력

프랑스 정부는 이때부터 출산 장려 정책을 적극 폈다. 출산을 권장하기 위해서는 경제·사회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것이다. 재정 지원과 관련해 프랑스 정부가 지출하는 돈은 830억 유로(약 114조원)로 국내총생산(GDP)의 5%를 차지한다. 이 돈은 가족수당 기금(Caisse d’allocation familial) 및 학교 입학 보조금(Allocation de Rentree Scolaire)을 통해 자녀를 출산한 가정에 지원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태어나면 탄생 축하금으로 889유로(약 150만원)를 지급한다.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매달 177유로(약 30만원)가 지원되고 여섯 살 때까지 보육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분배된다. 자녀가 세 명이면 600~800유로(100만~140만원)가 지급된다. 또 자녀가 있는 가족의 경우 세금 역시 감세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를 방과 후 수업에 보내면 이를 감안해 세금을 할인해준다. 프랑스의 높은 세금 규모를 생각해볼 때 감세는 자녀가 있는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된다.

정부의 강력한 재정지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한 것이 프랑스 출산율을 높였다. 위는 부모와 함께 등교하는 프랑스 어린이들.
그런데 프랑스의 출산율 증가는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프랑스 인구연구기관(Inde) 디렉터인 프랑스 프리우 씨에 따르면 ‘여성의 직장과 출산 지원의 일치’가 바로 출산율 증가의 동력이라고 설명한다. 즉 일하는 엄마의 육아 부담을 분담해 여성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녀를 둔 여성의 파트타임 근무, 출산 이후 아내 및 남편의 육아휴직 등이 이에 해당된다. 또 각 자치구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놀이방을 운영해 여성이 자녀를 양육하는 어려움을 덜어준다. 프랑스 회사의 경우 의무적으로 임금 총액의 5.4%를 육아 분담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 금액은 GDP의 1%에 해당한다.

출산율 증가의 또 다른 원인은 변화된 가족 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제 결혼이 가족을 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가 아니다. 혼외 관계에서 탄생한 아이들도 결혼한 부모에서 태어난 아이와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는다.

동거 인정하면서 출산율 급증

프랑스의 커플 형태로는 결혼·동거 그리고 합법적 동거(팍스·PACTES)가 있다. 팍스라고 불리는 이 제도는 1999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만들었는데, 결혼을 하지 않은 커플도 간단한 신고만으로 결혼과 같은 사회적 권리를 부여받는다. 결혼한 커플과 마찬가지로 의료보험, 자녀 양육, 집 계약, 사망 시 재산 상속 등 사회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 제도가 실시되면서 30만명에 이르는 커플이 결혼이 아닌 팍스를 신청하게 됐다. 이 제도는 이제 일반 커플에서 동성애 커플에게까지 적용되는 추세다. 이처럼 동거를 법적으로 인정한 가족제도 변화가 아이러니하게도 출산율을 높였다. 1970년대만 해도 혼외 출산이 10%였는데 2008년에는 52%에 이른다. 결혼과 비결혼에서 탄생한 아기 사이의 불평등이 없어지면서 혼외 출산이 사회적 관습에 어긋난다는 인식에서 일상화한 풍경으로 바뀐 것이다.

출산율 증가의 또 다른 원인은 이민이다. 프랑스에 이민 온 외국인들의 출산율은 높은 편이다. 1998년 국제결혼을 통해 태어난 신생아가 8%였다면 지금은 12.7%에 이른다. 또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기 수는 6.9%다. 즉 신생아 가운데 대략 20%가 외국인 커플이거나 국제결혼 커플의 자녀인 셈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정부가 출산 정책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사회의 고령화 문제 때문이다. 현재 출산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프랑스 사회의 고령화 추세는 여전히 심각하다. 75세 이상 노인층이 전체 인구의 7.5%에 달한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노인층의 증가 속도는 전체 인구 증가 속도보다 5배나 빠르다. 문제는 사회의 고령화 추세가 세대 간 분배로 이뤄지는 은퇴 시스템의 존속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결국 젊은 세대가 늘어나 사회·경제 활동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출산율 증가세가 다시 주춤해질 만한 상황이 발생했다. 바로 경제위기 때문이다. 실업률 증가와 수입 감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족 늘리기 계획에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경제적 후퇴가 출산율 저하로 이어진 과거 사례는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1930년대 경제대공황 때 낮은 출산율을 기록한 적이 있다. 또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1993년 경제 후퇴 때 출산율이 가장 떨어졌다.

기자명 파리·최현아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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