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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참여정부 두뇌이자 스승이었다

삼성과 노무현 정부가 부적절한 유착 관계를 맺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삼성은 현 정부와 인재를 공유했고, 정부 정책을 ‘견인’해왔다. 삼성은 여당 정치인과 관료의 ‘교육자’ 노릇도 했다. 삼성과 참여정부의

장영희 전문기자 cool@sisain.co.kr 2007년 11월 26일 월요일 제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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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는 ‘삼성 정부’다. 그렇게 불러도 좋을 만큼 삼성이 현 정부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가 삼성 특검법안 자체를 재검토할 것이며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와 특검법안을 연계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을 사실상 특검 반대 견해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권 후보의) 인식이 일면적이고 편협하고 한심하다’고 몰아붙였지만, 삼성 특검 이전부터 이미 노무현 정부와 삼성 간의 관계를 이렇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권 후보만은 아니다. 이즈음 터져나온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폭로는 청와대마저 삼성에 포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노무현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삼성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지적은 사실 정권 초기부터 나돌았다. 그동안 노무현 정부가 삼성과 가까워지는 데는 이광재 의원이 파이프라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한동안 항간에는 ‘대통령의 최측근인 ㅇ의원이 후보 시절부터 삼성과 다리를 놓았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그가 바로 그 최측근 인사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를 통해 비로소 삼성의 머리를 빌리고 사람을 빌리게 되었을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2만 달러 국가 비전에서 한·미 FTA에 이르기까지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연구보고서(위)는 노무현 정부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쳤다.  
 
추론은 노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 동남지역발전특위 위원장 시절인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재계의 최대 관심사는 삼성자동차 처리 문제였다. 문을 닫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지만, 노 대통령은 부산이 자신의 정치 텃밭이었기 때문인지 삼성차 살리기 운동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이 노력은 무위로 끝났지만, 노 대통령은 2000년 매각 작업을 중재했다. 이때의 상황을 잘 아는 정치권의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은 삼성자동차 관련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부산상고 1년 선배인 이학수 부회장과 친분을 쌓았다. 노 대통령은 이학수 부회장을 존경하는 경영인으로 평했고 ‘학수 선배’라 부르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삼성과 대통령을 이 의원이 매개했다고 하지만, 대통령 자신이 삼성을 적극 활용한 흔적이 적지 않다. 인수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2003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활동을 마치고 11개 분과별로 5년 동안의 국정과제를 제시했는데, 노 대통령은 삼성경제연구소에도 똑같은 작업을 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삼성경제연구소는 70여 명의 연구원을 동원해 인수위의 11개 분과처럼 11개 팀을 짜고 같은 주제로 국정 어젠다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관한 어젠다>라는 400여 쪽 분량의 보고서이다. 이 인사는 당시 인수위원 가운데 “당선자가 인수위와 삼성을 경쟁시킨 꼴이 되었다”라는 비판이 일었으며 재벌정책과 금융정책 등 몇 가지 사안에서는 큰 충돌을 빚을 만큼 기조가 달랐다고 전했다. 이 일은 노 대통령이 균형 감각을 중시해 이루어진 일로 포장되었지만, 삼성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노 대통령, 삼성 적극 활용

2004년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의원은 청와대 비서실에 이 자료를 요청했으나 폐기되었다는 답을 들었다. 보고서를 생산한 삼성경제연구소도 당선자에게 국정 어젠다를 건넨 즉시 70여 명 연구진 모두에게 출력된 보고서와 파일을 모두 파기토록 지시해 연구진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연구소 차원에서 원본을 보관하고 있을 수 있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에서도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그는 구조본 핵심 인사로부터 “팀장 회의에서 ‘이 사람들 참여민주주의 좋아하니까 참여정부라고 부르면 좋겠네’ 하는 의견이 나와 이를 전달했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했다. 이런 작명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인지는 불불명하지만 노 대통령이 ‘참여정부’라고 이름 붙인 것은 사실이다. 삼성에 각료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해 팀장 회의에서 논의하기도 했다고도 한다. 그 첫 사례가 노무현 정부 첫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임명된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처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주미 대사 기용도 ‘인재 공유’ 사례로 꼽힌다. 언론노조와 시민단체가 조세 포탈범을 주미 대사라는 요직 중의 요직에 기용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거세게 비판했지만 노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게다가 홍 대사가 ‘삼성 X파일 사건’에 휘말리자 “정·경·언 유착과 도청 문제 가운데 도청이 훨씬 더 중요하고 본질적”이라며 그를 엄호했다. 하지만 대통령도 홍 대사의 낙마를 끝내 막지는 못했다. 그만큼 여론의 역풍이 거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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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시사포럼이 창립 1주년을 맞아 삼성경제연구소에 발제를 맡긴 ‘매력있는 한국 만들기’ 심포지엄.
 
 
한 삼성 인사에 따르면, 삼성의 각료 추천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 처음 한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때도 비공식으로 삼성과의 사이에 누가 좋겠느냐는 얘기가 오갔다. 이때는 삼성맨을 직접 천거하지 않고, 주로 경제 관료 가운데 삼성에 우호적 인사를 추천했다. 실제로 각료로 입각한 사례가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 때도 시쳇말로 ‘삼성 장학생’으로 불리는 인사가 요직에 등용되었다.”

반면 삼성은 삼성에 불리한 정책을 추진하거나 밉보인 이른바 노무현 정부의 개혁파 인사들을 하나 둘씩 옷을 벗겼다. 가령 삼성생명이 계약자 몫인 3조원 가까운 돈을 주주 몫으로 변칙 회계 처리한 것을 들추어낸 이동걸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은 삼성의 '성감대'를 건드린 삼성으로서는 위험천만한 인물이었다.  이정우 전 정책기획위원장도 국무회의  석상에서 금산법 개정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등 재경부와 금감위, 삼성에게는 매우 껄끄러운 인물이었다. 결국 개혁파의 좌장 격인 이정우 위원장을 끝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개혁파 인사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 '삼성과 관료세력'이 결탁한 개혁파 제거 작전은 삼성의 완승으로 귀결되었다.

   
 
ⓒ연합뉴스
2004년 9월 국회 의정연구센터와 삼성경제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긴급 제언 심포지엄’.
 
 
이 삼성 인사는 이런 말도 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라는 두 정권에 삼성이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했던 것은 맞지만, 무게중심은 많이 달랐다. 김대중 정부 때 ‘사람’에 주력했다면, 노무현 정부 때는 ‘시스템’ 구축에 역점을 두었다.” 다시 말해 단순히 우호적 인사를 정부 요직에 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정 운용과 정책 발굴에 직접 개입하고, 공직 사회를 바꾸는 정부 혁신에도 깊숙이 간여했다는 것이다.

국정 어젠다에서 일종의 팀플레이를 해본 까닭일까.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협력은 그 후로도 계속된다. 노무현 정부는 부인하지만, 삼성이 정책 혹은 국가 경영전략을 제시하면 노무현 정부가 이를 차용한 듯한 인상이 짙다. 좋은 예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국가 비전이다. 삼성 신경영 10주년을 기념하는 사장단 회의가 열렸던 2003년 6월5일 저녁, 회의장인 신라호텔로 들어선 이건희 회장에게 기자들이 ‘한 말씀 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대뜸 “마의 1만 달러가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라고 되물었다. 이 회장은 10년 내에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가야 하며 (그렇게 못하면) 1만 달러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달이 안 된 6월30일 노대통령은 ‘참여정부 경제 비전 국제회의’ 개막 연설에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위한 다섯 가지 성장 전략을 제시했다. 이때부터 한국은 삼성이 ‘저작권’을 가진 2만 달러 비전에 온통 포로가 되어 반론이 허용되지 않은 사회로 변했다.

"삼성과 관료 세력이 개혁파 제거"

그 후로도 삼성경제연구소는 동북아 중심 국가론, 신성장 동력 개발론, 혁신 주도형 성장론, 산업 클러스터론, 그리고 가장 최근 사례인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이르기까지 기업 단위를 넘어선 국가 차원의 과제를 선점하며 노무현 정부에 영향을 미쳐왔다. 국가 정책을 ‘추수’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 정책을 ‘견인’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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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직접 수혈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일반인에게 ‘세리(SERI)’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삼성경제연구소는 1986년 삼성생명 부설 연구기관으로 출범해 1991년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삼성그룹에서 삼성경제연구소는 그들이 원하는 정책 의제를 제기하고 사회 담론을 유포하는 이른바 ‘삼성 이데올로기’를 공식·비공식 경로로 퍼뜨리는 전위부대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100명 가까운 ‘이데올로그’와 ‘테크노크랫’의 활약상은 가히 눈부실 정도라는 평을 듣는다.

그런데 삼성경제연구소는 보수 담론 생산의 핵심 공장이 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국가 운영의 규칙을 짜고 이를 집행하는 공무원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뛰어든다. 지금이야 많이 퇴색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그 어느 정부보다 정부 혁신을 강조했다. 정권이 요청해 삼성이 도움을 준 것인지, 삼성이 유도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삼성경제연구소는 정부 혁신 담당 관료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노하우를 제공했으며 급기야 ‘교육자’로도 나섰다.

‘간부 혁신 워크숍’으로 이름 붙여진 이 일은 2004년 9월 국무총리실 과장급 이상 105명이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같은 해 12월에는 통일부 과장급 이상 간부 88명이, 이듬해 1월에는 기획예산처 4급 이상 간부 70명이, 2월에는 외교통상부 혁신기획관 15명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 삼성경제연구소는 윤순봉 부사장을 비롯한 핵심 인재들이 총출동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영향력, 정부 뺨쳐

2005년 4월 들어서는 삼성과 직접 관련성이 높은 부처가 교육에 참여해 파장을 낳았다. 4월에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위원회 및 금융감독원, 5월에는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재정경제부 간부들이 인력개발원에 입소했다. 이들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연수 매뉴얼에 따라 자기 부처 밖의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들었고,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 자아 비판했으며 이렇게 하면 망한다는 주제로 브레인스토밍을 하기도 했다. 재경부나 기획예산처는 교육에서 도출된 혁신 방안을 구체화하고 적극 도입하겠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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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전 주미 대사는 X파일 사건으로 낙마했다.
 
 
오지랖 넓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정치권을 지나칠 리 없었다. 아니 정치권이 세리를 끌어들였다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2004년 9월 이광재 의원 등 이른바 친노 그룹이 주도하는 의정연구센터는 삼성경제연구소와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긴급 제언’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심포지엄 직후 이광재·서갑원 의원 등은 정책 자료집을 발표하면서 2만 달러 시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 등 거대 선진 경제권과의 FTA를 신속하게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이 먼저 주장한 것을 노 대통령 추종 세력이라는 이들이 받았고,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미국과의 FTA를 밀어붙였다. ‘국내의 취약한 개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FTA라는 외부 충격 혹은 압력을 이용해야 한다’는 따위의 표현도 흡사했다.

2005년 6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주축인 ‘시장경제와 사회 안전망 포럼(시사포럼)’이 주최한 창립 1주년 기념 정책 발표회에서는 소장과 부소장이 발제를 맡았다. ‘매력 있는 한국’이라는 제목 아래 ‘G10 in Y10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달렸다. 이때는 2만 달러를 앞세우지 않고 목표를 10년 안에 세계 10대 선진국에 드는 것으로 바꾸었으며, 시장 친화적 개혁 없이 결코 G10에 들어갈 수 없음을 강조했다.

세리가 내놓은 정책 제언은 정부뿐 아니라 언론을 통해 일반인에게도 빠른 속도로 유포된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분석에 따르면, 10월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 동안 18개 주요 일간지(종합지·경제지)의 삼성경제연구소 인용 보도는 무려 251건에 이른다. 한 신문당 14건,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이 연구소를 인용 보도했다는 이야기다. 정부 부처를 제외한 뉴스원으로는 단연 1위다. 이쯤 되면 삼성경제연구소가 한국 사회의 의제 설정을 주도하고 있다고 봐도 손색이 없다.

민간의 여러 두뇌 집단이 제시하는 정책 아이디어를 정부가 참고하는 것이야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세리 독주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데다 과연 여과 장치가 작동하고 있느냐로 모아진다. 세리가 한국 사회의 현안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이를 세련되게 포장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음을 인정하더라도 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일 때의 위험성은 자못 크다. 정희용 새사연 미디어센터장은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외국 자본에 맞서기 위해 경영권 보호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따위 자기 그룹의 이해를 반영한 주장을 언론이 여과 없이 보도하는 일은 기업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일반인에게 알게 모르게 특정 그룹의 이해가 받아들여지는 것도 문제지만, 삼성 논리가 여과 없이 정부나 정치권에 통용되는 일은 법과 제도의 파괴, 즉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훼손이라는 가공할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검찰보다 한 단위가 큰 뇌물을 경제 관료들에게 제공했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미 삼성에 법 적용이 공정하게 집행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전성인 교수(홍익대·경제학)는 삼성과 노무현 정부 간의 부적절한 밀월 관계가 그동안 이른바 삼성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고 지적했다. 삼성 에버랜드나 삼성생명, 삼성카드가 금융지주회사법이나 금산법을 위반해도 즉각 감독에 나서야 할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는 일이 2004년 빚어졌다.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소신 있게’ 금산 분리를 완화해야 한다고 발언해 거센 반발을 자초했다. 차명 계좌의 발견으로 금융실명제법 위반임이 명백하게 드러나도 금융감독원은 법 위반자인 우리은행의 자체 조사를 보고 판단하겠다며 꼬리를 뺐다.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격이다.

정부의 '삼성 봐주기' 의혹 끊이지 않아

재경부 (금융정책국) 금융정책과가 2004년 10월 작성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 내용’이라는 비공개 문건은 흥미롭다. 재경부는 ‘현행 승인 기준(시행령 6조)이 은행법이나 공정거래법 같은 다른 법령에 비해 과도하게 엄격하다며 승인 기준을 변경해 금융회사의 비금융회사에 대한 지배를 실질적으로 금지한다는 금산법 24조의 입법 취지를 사실상 무력화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현행 승인 기준에 따르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는 금감위의 승인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부칙 신설뿐 아니라 승인 기준 자체를 완화하려고 기도한 것이다. 위법 행위를 합법화해 주는 삼성 봐주기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라고 비난했다.

2004년과 2005년 공정거래법과 금산법 개정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격렬한 공방을 벌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2005년 정부 여당은 이른바 ‘분리 대응안’이라는 꼼수로 금산법 개정 취지를 무위로 돌렸다.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만 5년 내 매각 처분하고 법 제정 이전에 지분을 취득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처분하지 않고 의결권만 제한한 것이다. 이것은 삼성의 현행 지배구조를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은 것으로 삼성의 힘이 작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장집 교수(고려대·정치학)는 이미 X파일 사건이 터지기 전인 2005년 초 “집권 엘리트-경제 관료-삼성그룹 간의 결합이 만들어지면서 개혁적 정책의 공간이 크게 축소되었다. 결국 스타일은 정서적 급진주의라고 부를 수 있지만, 실제 내용에서는 보수적 경제 정책의 기묘한 결합에 불과하다”라고 노무현 정권을 평가한 바 있다.

최근 최장집·박찬표(목포대) 교수와 <어떤 민주주의인가>를 펴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보수 세력의 발언권이 한층 커진 이른바 보수 민주주의의 결정체로 ‘삼성 공화국론’을 제시했다. 제대로 된 정당의 매개 없이 국가를 운영하고자 했을 때 언론의 매개 기능과 재벌의 정책 로비 기능은 극대화할 수밖에 없는데, 그 전형적 사례가 삼성이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박 대표에 따르면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 삼성 이건희 일가와 ‘선출된 권력’ 노무현 정부의 부적절한 유착 관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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