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고등학교(외고) 폐지론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대통령까지 한마디 거든 판이다. 그러나 정작 외고 재학생이나 졸업생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에 〈시사IN〉은 백영씨가 최근 보내온 기고문을 싣기로 했다. 대원외고를 1990년대 초 졸업한 백씨는 자신의 경험과 사회적 정의에 비추어 외고를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독자는 〈시사IN〉 편집국(editor@sisain.co.kr)으로 연락주시기 바란다.

‘왜 외고에 입학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답하기가 참 어렵다. 외국어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시 외고의 전망이 분명했던 것도, 시설이 탁월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경우를 보자면 아마 사춘기를 맞이해 거칠어지는 학우들의 모습과 그것을 다잡기 위한 선생님들의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외고를 택하게 한 원인이었던 것 같다. ‘좀 괜찮은 친구들’과 맘 편히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별다른 준비도 없이 연합고사 이후 그냥 가볍게 시험을 보고 입학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그렇게 입학한 외고 생활은 처음부터 숨이 턱턱 막혔다. 좀 괜찮은 친구들과 같이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 오전 국·영·수 시험을 보고 이것을 중간·기말 고사에 반영했다. 월요일 시험 탓에 주말은 주말이 아니었다. 영어와 제2외국어 회화 시간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선택 과목은 선택이 아닌 확정 과목이 되었다. 이과의 경우 무조건 화학·생물, 문과의 경우 사회·지리를 선택하게 했다. 물리·지구과학·세계사 교과서는 아예 지급되지 않았다.

상위 1% 독점하고 사회적 책임은 외면

친구들은 경쟁자였지만 그래도 서로 잘 지냈다. 공부하다 막히면 주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곤 했는데 3명을 넘어가기 전에 답과 친절한 해설이 따라왔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가고 몇 차례 시험이 반복되면서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각자의 한계를 실감하게 되었다. 평생 처음 보는 석차를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고, 그 와중에 몇몇 친구는 엇나가기도 했다. 고3 원서 작성 때가 다가오자 다들 “내가 왜 외고를 왔을까” 하는 한탄을 달고 살았다. 내신에서 4점, 6점씩 손해를 본 것 때문에 원하는 학과·학교를 포기하고 씁쓸해하던 친구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20여 년이 지난 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외고가 ‘각종 학교’에서 정식 ‘특수목적고등학교’로 바뀌었고, 무슨 학교인지 한참을 설명해야 하던 과거와 달리 외고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러움 섞인 눈총을 받게 되었다. 이과가 없어지면서 국제반이 생겼고, 전공반이 몇 차례 바뀌었다. 정원도 줄고, 입시경쟁은 치열해졌다. 바뀌지 않은 것은 학교 건물, 선생님, 가파른 언덕, 학교 앞에 늘어선 스쿨버스, 그리고 서울대 입학 순위 기사에서 항상 첫머리에 보이는 학교 이름 등이다.

외고를 둘러싼 입시 경쟁은 갈수록 가열되고 있다. 위는 서울 지역 6개 외고가 참가한 합동 입시 설명회.

사람들이 왜 외고에 관심을 기울이고,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왜 외고 입학에 목을 맬까? 대부분이 외고의 높은 상위권 대학 진학률을 그 이유로 꼽는다.  입학생 대부분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입학하거나 미국의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다는 기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은 놀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성취는 놀라워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하면 졸업 때 나타나는 성과는 사실 별것 아니다. 오히려 외고에 와서 내신 등으로 인해 손해를 봤다고 느끼는 졸업생이 대다수이다. 그러한 상실감과 박탈감을 만회하기 위해 상당수가 대학 입학 후 각종 고시에 몰두하게 되며, 그 결과가 사법고시 최다 합격자 배출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외적으로 공표되는 성과 자체는 대단하지만 거기에 투입되는 자원을 생각해보면 결코 효율적이라 볼 수 없다. 어찌 보면 모두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는 상위 1% 수준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그중 30%도 서울대에 진학시키지 못하는 것이 외고의 현실이다.

외고 폐지에 반대하는 측 주장 중 하나가 경쟁을 통해 인재 양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논리이다. 경쟁은 분명 동기를 부여하며 잠재력을 이끌어낼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이다. 그러나 경쟁도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그러한 효과를 상실하게 된다. 외고 설립 초기에는 이러한 경쟁의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 입학 과정에서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교 3년 동안 경쟁을 거치면서 잠재력을 꽃피웠다. 그러나 지금처럼 외고에 입학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온갖 사교육에 노출되면서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낸 입학생에게는 무의미한 경쟁일 따름이다.

폐지에 반대하는 주장 중 하나인 글로벌 인재육성 역시 매우 모호한 개념이다. 도대체 글로벌 인재가 무엇인가? 우리나라가 국력에 비해 국제기구 진출, 국제적 지위 등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원인이 외국어 구사 인력의 부족에 있지는 않다. 한국이라는 좁은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국제적 관계를 바라볼 수 있고 각국의 역사·문화·지리 등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고 국제적 이해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한 것이다. 진정한 글로벌 인재 양성을 논하려면 고사 직전인 대학의 지역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먼저다. 미국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이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듣노라면 그 논리의 저열함에 부끄러워질 따름이다. 외고의 성공 요인은 분명하다. 평준화된 시스템 속에서 독점적으로 우수한 학생 선발권을 갖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학교 및 교사의 역량 등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런 권리를 외고라는 존재만 독점적으로 누리는 것일까? 평준화 체계 속에서 이러한 독점적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름의 사회적 공헌과 명분이 필요했다. 그러나 외고는 20여 년 전 이러한 권리를 슬쩍 부여받고서 지금까지 이를 향유하기만 했지 이에 걸맞은 책임은 지고 있지 않다. 외고가 현재의 학생선발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자립형 사립고로의 전환마저도 거부하는 모습은 기득권에 연연하는 것으로 비칠 뿐이다.

글로벌 인재 키우려면 대학에 먼저 투자해야

그러나 외고가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공교육의 정상화, 평준화 체계의 존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평준화 체계는 자율형 사립고를 비롯한 영재고·국제고 등 다양한 대체재에 의해 의미를 상실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우리 사회가 균형 잡힌 대안을 마련하는 데 노력해야만 지금의 외고 존폐론과 같은 논의가 반복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학생 선발권인데 이를 사회적 책임의 이행과 병행시키는 방안을 추진해볼 수 있다. 현재의 자율형 사립고 제도는 최소한의 기준만 충족할 경우 모두 똑같은 학생 선발권을 적용받는데 이를 차등화하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즉 재단전입금 비율,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정도 등을 고려해 추첨으로 뽑는 기준을 상향시키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가령 모든 학교 운영이 학생부담 없이 재단의 재원에 의해 이루어질 경우 학생 지원 기준을 상위 50%가 아닌 상위 10%까지 인정해주는 방식이다. 이런 방안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다양한 대안을 논의하고 방안을 열어놓는 편이 상황에 밀려 극단적 결과를 초래하는 것보다는 바람직할 듯하다.

기자명 백영 (필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