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6일. 의거 100주년을 기해 안중근 의사 다시 보기가 한창이다. 그중 주목을 끄는 사업이 안 의사 유해 발굴과 기념관 건립이다.  지난해 3월 진행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사업은 성과 없이 중단됐다. 국가보훈처는 전문가와 첨단 장비를 동원해 뤼순감옥 터 인근 2000여 평(6600여㎡)을 발굴했으나, 인골은 발견하지 못했다. 발굴에 참여한 국가보훈처의 한 관계자는 “개뼈다귀와 도자기 파편 외에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유해 발굴 사업은 애초에 무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발굴 지점은 당시 뤼순감옥 소장의 딸인 이마이 후사코 씨의 증언에서 비롯됐다. 1982년 팔순 노인이 8~9세 때 경험한 기억을 동아일보와 인터뷰했는데 정부가 갑자기 이 내용이 ‘맞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료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정부는 정확한 위치까지 지목했다. GPS 북위 38도 49분 3초, 동경 121도 15분 43초. 당시 전문가들은 유해 발굴을 보훈처의 안중근기념관 추진과 연관지어 생각했다.
 

 
2005년 남북한이 체결한 안 의사 유해 발굴 합의도 쇼에 가까웠다. 2008년 평양에서 만난 북한의 한 고위 관계자는 “유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그냥 합의서만 써달라고 했다. 남측이 없는 유해를 만들어 선전하려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안 의사 유해를 찾는 작업은 중국과 북한에 의해 먼저 진행되었다. 중국은 1971년부터 1986년까지 뤼순감옥을 복원하면서 다섯 차례에 걸쳐 안 의사 유해를 찾아보려고 했다. 북한은 1970년대 뤼순으로 유해 발굴팀을 보냈고, 1986년에는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대대적인 발굴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안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는 데는 실패했다.

안중근 의사는 뤼순감옥의 동쪽 언덕에 있는 감옥묘지에 묻혔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일본 정부의 안중근 사형 집행 보고서와 안중근의사숭모회(숭모회·이사장 안응모) 자료집 등 여러 문서에 의해 뒷받침된다. 1918년 일본 참모본부육지측량부가 만든 〈여순비밀군사지도〉에 표시된 지역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이곳에는 이미 아파트가 들어서 더 이상 발굴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다시 안 의사의 유해를 말한다. 지난 9월21일 조선일보는 “이번이 안중근 의사 무덤 찾을 마지막 기회”라는 제목으로 유해 매장지로 뤼순감옥 500m 밖 야산을 지목했다. “이곳이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을 마지막 희망입니다”라는 숭모회 김영광 부이사장의 증언을 크게 보도했다. 보훈처의 한 관계자는 “내년 봄 안 의사 유해 발굴을 고려하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유해 발굴 1%에 목숨 거는 까닭은?

왜 갑자기 숭모회는 유해 매장지를 번복한 것일까? 왜 지금껏 침묵해오다 유해 발굴을 주장하는 것일까? 왜 이렇게 조선일보는 크게 보도하는 것일까?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윤원일 사무총장은 “정부와 언론이 안중근기념관을 짓는 데 이용하기 위해 유해 발굴을 써먹는다. 국민 여론을 움직여 기념관 내부를 갖추는 데 필요한 45억원가량을 모으려는 속셈이다”라고 말했다. 윤 사무총장은 “조사단 파견, 발굴 조사, DNA 검사 등 안 의사를 띄우기에 유해 발굴보다 더 좋은 흥행 카드는 없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안중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신운용씨는 “안 의사 유해는 일본의 도움 없이 발굴될 가능성이 1%도 안 된다. 계속해서 유해 발굴을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행위다”라고 말했다.

안중근기념관은 순국 100주년이자 의거 101주년인 내년 10월26일 개관할 예정이다. 공식적인 안 의사 숭모단체인 안중근의사숭모회가 주도적으로 나서 현재 남산에 건립 중이다. ‘안중근의사기념관 건립위원회’ 위원장은 박유철 전 보훈처장관이 맡았다. 기념관 건립에 뉴라이트전국연합이 힘을 보태고 나섰고, 조선일보는 기사를 쓰고 모금을 하는 등 지원에 나섰다. 총사업비는 150억원 이상 들어가는데130억원이 국고에서 지원되고, 나머지는 국민 성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현재 안 의사 유해 발굴 사업 등 안 의사 추모 열기가 뜨거워 15억원가량 성금이 모였다고 한다.
 

서울 남산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 뒤편에 새 기념관을 짓고 있다.
지금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70년 정부는 서울 남산 중턱에 있는 일본 신사를 해체하고 기념관을 세워 숭모회에서 관리·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전시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기념관을 찾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기념관에 문의전화를 해도 받지 않을 때가 많다. 홈페이지 관리도 엉망이다. 안중근의사기념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기념관 건립 기금 모금과 안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 글짓기 공모전 팝업창이 뜬다. 숭모회에서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조선일보사에서 후원하는 글짓기 공모 기간은 9월30일로 끝이 났다.

하지만 10월23일 현재도 홈페이지를 지키고 있다. 언론은 100주년을 기념해 기사를 쏟아내는데 홈페이지 보도자료 코너는 2008년 5월28일 올라온 자료가 가장 최근 것이다. 아래에는 2년 전인 순국 98주년 기념식 사진이 전시돼 있고, 오른편 e-Book 코너에는 순국 98주년 추모 소식지(봄호)가 걸려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열리지 않는다. 숭모회는 최근까지 동해를 일본해로 기록한 안중근 도록을 판매하기도 했다.

 

기념관 설립은 밥그릇 챙기기?

지난 10월22일 오후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에는 관람객만이 서너 명 서성이고 있었다. 한 일본인 여성 관광객은 “안중근은 위대한 정치인을 사살한 테러리스트라고 학교에서 배웠다”라고 말했다. 남성 일본인 관광객은 “안중근에게 사무라이 정신이 엿보여서 찾아왔다. 권총으로 다섯 번 연속 명중시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없는 일인데 여기에 그런 설명이 없어 시시했다”라고 말했다. 일본인 관광객에게 안 의사의 정신을 알리는 데에 한계가 있다. 숭모회 한 관계자는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 기념관을 새로 건립하기 위해 기존 기념관은 폐쇄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새 기념관이 건립되면 본격적으로 관람객을 유치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0월22일 서울광장에서 안 의사를 기리는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시민음악회를 열었다.

2006년 5월 민족문제연구소 회원과 교수 등 300명은 새 ‘안중근기념관’이 문제가 있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 바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현 안중근의사기념관이 낡고 좁아서 방문객이 없는 게 아니다. 기획 전시 하나 없고 큐레이터도 없어 기념관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부실 운영되어서이다”라고 말했다. 윤원일 사무총장은 “1992년 세계일보에서 안 의사 순국 장소를 성역화한다며 안중근 시리즈를 연재하고 모금운동에 나섰다. 성과는 없고 성금만 날아가버렸다. 지금의 기념관조차 의미있는 공간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또 다른 기념관을 짓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안 의사 팔아먹기다”라고 말했다. 안중근전집 발간위원장인 고려대 조광 교수는 “기념관도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지금 기념관은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 효창동에는 백범기념관이 있다. 국가보훈처 소유로 백범김구기념사업회가 위탁 관리한다. 그런데 기념관은 주로 정치단체의 대관 업무를 하고 별다른 추모 사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획·전시 등 백범을 추모하는 기념관의 기본적인 구실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한 국립대 교수는 “민족지사의 숭모 사업이 기념식과 기념관 등 형식적인 행사에 집중돼 있다. 안 의사가 추구한 독립과 평화의 가치를 공동체에 남기는 노력은 적다. 유해 발굴과 기념관 신축은 숭모 사업을 통한 이권 사업이다. 친일파가 만든 단체와 친일 신문이 나서서 안 의사를 기리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 역사의 비극이다”라고 말했다.

 

 “안 의사, 체 게바라보다 멋있다”

의거 100주년을 맞아 젊은이들 사이에 안 의사의 정신을 배우자는 움직임이 이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10월22일 고려대에서 열린 ‘안중근의사 하얼빈의거 100주년 기념 국제 학술대회’에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었다. 한 운영진은 “10년 동안 20대가 이렇게 많이 온 것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의식변화 운동 단체에서 일한다는 김희정씨(24)는 “어려운 환경에서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비전을 이끌어낸 안 의사의 정신이 놀랍다”라고 말했다. 장선아씨(21)는 “안 의사의 대범함과 당당함이 존경스럽다”라고 말했다.

안 의사를 기리는 젊은이들은 10월22일 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안중근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 기념 시민음악회를 열었다. 자발적 모금운동을 통해 마련된 행사에서는 센트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이 참여해 ‘안중근 유언곡’ 등을 연주했다. 행사에 참가한 김현주씨(40)는 “안 의사의 사상이 멋있어서 공부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재희씨(28)는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큰 용기를 보였다. 그 용기를 배우고 싶다”라고 말했다. 신소연씨(29)는 “정의가 바닥에 떨어진 세상에 안중근 의사 같은 영웅이 나타나 우리를 이끌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덕기씨(21)는 “안 의사가 체 게바라보다 외모나 사상이 더 멋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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