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이명박 후보(위)의 해명은 하나하나는 설득력이 있지만 전체를 연결해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기꾼에 의지해서 이명박 후보의 사기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 BBK 주가조작 사건의 이명박 후보 연루 의혹을 대선 최대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대통합민주신당의 딜레마다. 김경준씨나 에리카 김이 여권이나 공문서 위조로 이미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증거가 나올 때마다 한나라당은 “위조되었다” 혹은 “조작되었다”라며 그 신뢰성을 문제 삼는다.

‘사기의 공범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명박 후보가 바보가 되어야 하는 상황.’ 대통합민주신당의 공세에 맞서는 한나라당의 딜레마다. 이 후보가 김경준의 횡령이나 주가조작과 무관하다는 것을 해명하기 위해 겨우 삼십대 중반이었던 김씨에게 ‘샐러리맨의 신화’라는, ‘경제를 살릴 유일한 후보’라는 이명박 후보가 깨끗이 사기당한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분명 둘 중 한 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어느 쪽 말을 믿어야 할까? 액면으로 보면 여권 위조범 보다는 아무래도 이명박 후보의 말을 더 믿어야 할 듯하다. 현대건설 회장과 국회의원, 그리고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 후보로까지 출마한 그의 공적 이력을 보았을 때 그의 말이 더 무게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 후보는 BBK 주가조작 사건과 자신이 무관하다는 것을 호소하면서 김경준 대표와 LKe뱅크를 함께 경영하다 투자한 자본금을 날린 것은 “검사 집에 도둑이 든 것과 같다”라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전문 경영인이었던 자신을 사기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김씨를 ‘간 큰 도둑’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간 큰 도둑’이 펼친 사기행각을 이 후보의 설명을 바탕으로 재구성해보았다.

처음 만난 시점이 왜 중요한가

먼저 김경준을 만나서 동업을 하기까지 과정에 대한 부분이다. 김경준 측에서는 1999년 2월에 처음 만나서 이 후보의 사업 제안을 받아들여 LKe뱅크를 함께 설립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 측에서는 2000년 1월에 처음 만나 사업을 시작했다고 해명했다. 처음 만난 시점이 중요한 것은 BBK 설립 시점이 1999년 4월이기 때문인데, 이 후보 측에서는 당시 국내에 있지도 않았다며 관련 가능성을 부인했다(이 후보 측은 나중에 국내 방문 사실이 있다고 말을 바꾸며 처음 만난 시점이 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 측의 주장에 따르면 둘은 만난 지 1개월여 만에 전격적으로 LKe뱅크 설립(2000년 2월18일)을 단행했다. 그리고 공동대표인 이 후보는 30억원을 출자했다. 살로먼스미스바니 증권사에서 ‘실적 과다 계상’과 ‘타사 펀드 설립 관여’ 혐의로 면직된 김씨를 이 후보는 ‘아비트리지(차익거래) 귀재’라며 기꺼이 동업자로 삼았다. 이 후보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지극히 경솔하게 사업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 후보 측의 주장에 따르면 이 후보는 함께 사업을 시작하고 난 후에도 계속 허점을 보였다. 김씨가 LKe뱅크 회사 인감을 보관하고 임의로 LKe뱅크 회사 계좌를 개설한 뒤 금융계좌를 통해 자금 거래를 한 사실을 몰랐다고 이 후보 측은 주장하고 있다. 알게 된 뒤 몇 달 되지도 않은 동업자에게 회사 인감의 관리를 전적으로 맡겼다는 것이다.

이 후보 친지들은 왜 김경준과 얽혔을까

문제가 되는 부분은 LKe뱅크가 마프펀드의 전환사채(CB) 1250만 달러(2001년 당시 시세로 약 150억원)를 구입하던 상황이다. 마프 펀드 전환사채 구입은 LKe뱅크가 BBK의 실질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과 관련해 중요한 문제인데, 이 후보 측은 이를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LKe뱅크 자본금(60억원)의 두 배가 넘는 투자가 이뤄졌는데도 대표이사였던 이 후보가 몰랐다는 것이다.

ⓒ시사IN 윤무영김경준씨(위)는 이명박 후보는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에게 지시를 내린 ‘주역’이라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은 ‘간 큰 도둑’ 김경준이 ‘검사(이명박)’ 친구들의 곳간까지 털었던 사실이다. BBK는 이명박 후보의 친형 이상은씨가 소유한 다스로부터 190억원(50억원밖에 돌려받지 못했다)을, 이 후보의 지인이 대표로 있는 심텍으로부터 50억원을(소송을 통해 돌려받음), 동문인 김승유씨가 행장으로 있던 하나은행으로부터 5억원(나중에 이 후보가 5억원을 변제해주었다)을 투자받았다.

그런데도 이 후보는 이런 투자유치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잘 알려져 있지도 않은 고작 35세 교포 사업가를 보고 거액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 후보 측의 주장에 따르면 김경준씨에게서 문제를 파악한 것은 2001년 9월이다. 하나은행이 투자금 회수와 관련해 이 후보에게 가압류 소송을 진행하면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청산 이후에 뒷마무리도 김경준씨가 하고, 피해 사실 알고도 2년 뒤에 고소

2001년 4월18일 이 후보는 LKe뱅크 대표이사 직에서 사임함으로써 김경준씨와 동업 관계를 청산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30억원이나 투자한 회사의 청산 절차에 제대로 관여하지 않는다. 김경준씨는 이 후보가 사임한 이후에도 LKe뱅크 이사직을 유지하며 사실상 청산절차를 마무리한다. 문제를 일으킨 동업자에게 청산까지 맡겼다는 것이다.

가장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은 ‘검사’가 ‘도둑’이 들었는데도 신고하려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2001년 말 BBK의 후신 격인 옵셔널벤처스에서 횡령과 주가조작이 발생하고 나자 곧바로 일반 투자자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2004년 2월에 들어서야 소송을 제기했다(다스는 2003년에 소송 제기). 거액의 사기를 당했는데 몇 년 동안 그냥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소송이 늦어진 부분에 대해서 대통합민주신당 측에서는 이 후보가 BBK 벤처사기 사건과 관련해 ‘나도 피해자다’라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후 이 후보 측과 김경준 측이 벌인 격렬한 소송 과정을 보면 이를 단순히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소송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상이 검사(이명박) 측이 직접 밝힌 자신의 집을 턴 ‘간 큰 도둑(김경준)’에 관한 이야기다. 검사의 해명을 요약하면, ‘도둑인 줄 모르고 손님인 줄 알고 집에 들였다’ ‘안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믿고 곳간 열쇠(회사 인감)를 맡겼다’ ‘도둑이 돈과 패물을 들고 갔지만 신고하지 않고 되돌려줄 때까지 기다렸다’라는 것이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김경준과의 창업과 운영 그리고 청산과정에서 이명박 후보는 전혀 경제 전문가답지 않은 어수룩한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이 해명을 믿을 수 있을까?

이명박 후보 측에서는 이 후보가 김경준과 동업해서 돈을 잃은 것에 대해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라고 간단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어디에서 떨어졌느냐가 문제다. 원숭이가 떨어진 곳이 나무인지, 아니면 낭떠러지인지 아직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이 후보의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난다면 대선 후보로서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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