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20대가 있다. 공사판 일용직에 설거지 아르바이트까지 안 해본 일 없이 몸을 놀렸지만 돈도 경력도 쌓이지 않는 ‘만년 알바생’, 1박2일간 피를 열두 번 뽑는 실험 아르바이트로 대학 등록금 대출 이자를 겨우 갚아내는 ‘예비 신용불량자’, 대출도 잘 되고 가족이 명절 때 친척에게 자랑하기 좋아 그나마 견디지만 언젠가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자칭 ‘쩌는 직장인’…. 이들이 한목소리로 묻는다. “우리, 10년 뒤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20대의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세상에 퍼진 지는 오래됐다. 누군가는 “꿈만 있으면 다 된다”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눈높이를 낮춰라”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토익 책을 덮고 짱돌을 들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무엇을 말하건, 그것은 20대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정작 20대는 부모님 혹은 교수님 혹은 면접관인 윗세대가 세워놓은 20대의 역할 모델에 자신을 맞춰갈 뿐이었다. 윗세대가 내놓는 숱한 ‘20대론’에 이제 20대는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개(開)청춘〉. 이들 영화는 20대 문제에 대해 어떤 주장을 하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자신과 주변 20대의 사례를 또래들에게 전하면서 “너희 이야기도 해보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개별적인 이야기들로, 윗세대가 규정짓는 ‘20대론’에 저항한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개(開)청춘〉(반이다ㆍ2009)은 20대 여성 세 명이 2년동안 ‘길바닥에서’ 만든 20대 영화이다. 서울 반지하방에 겨우 작업실을 마련했지만 그나마 월세가 올라 중간에 이사를 해야 하는 감독 자신들의 이야기부터, 고등학생 때부터 임시직 아르바이트만 뱅뱅 도는 인식과  평생 ‘고졸 막내 여사원’ 딱지를 떼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민희, 일을 아무리 많이 해도 승진하지 못하는 방송사 막내 작가 승희의 이야기까지 평범하지만 고단한 20대의 시시콜콜한 삶의 단면들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영화는 20대의 비극을 고발하거나 정부에 청년실업 대책을 마련할 것을 호소하지 않는다. 다만 카메라를 든 사람과 카메라에 찍히는 20대 청춘의 다양한 일상과 고민을 전해주면서, 관객에게 “너희 이야기도 한번 같이 해보자”라고 재촉한다. 그렇게 윗세대가 규정짓는 ‘20대론’에 저항한다.

또 다른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감독 안창규·2008)은 대학 등록금으로 시름하는 20대를 다뤘다. ‘고려대 출교생’ 중 한 명인 안형우씨는 한 달에 30만원씩 내야 하는 등록금 대출 이자를 갚으려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 아르바이트에 참가했다. 1박2일 동안 30~60분 간격으로 열두 번 피를 뽑으면 30만원을 주는 이 일자리는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출교 사태 이후 안씨는 그나마 이런 아르바이트에도 참가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렸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

안씨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한 학기에 등록금 475만원과 선택과목비 130만원, 도복비 30만원이 찍힌 고지서를 앞에 놓고 체육대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눈물을 흘린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하고 대출정보 상담원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등록금 대출을 한 번만 받게 해달라고 목놓아 우는 얼굴 모를 또래 대학생의 전화를 받고는 대학생 김은희씨도 울컥해버린다.

일본의 한 20대는 아예 카메라를 뒤집어 ‘셀카’로 20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조난 프리타〉(2007)의 감독이자 주인공 이와부치 히로키 씨는 캐논 공장의 파견 사원. “단지 버튼만 눌러 닫기만 하는 거라 머리 좋은 오랑우탄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프린트 잉크에 뚜껑을 붙이는 자신의 직무를 소개한다. 이와부치 씨 주변의 모든 것은 ‘임시’이다. 임시로 파견된 회사, 임시 기숙사와 임시 대여 자전거, 매 끼니를 때우는 일회용 도시락, 달마다 다른 공장으로 떠나 버리는 임시 친구까지. 학자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 동경하던 도쿄 근처에 살기 위해 이와부치는 “피곤해” “재미없어”라는 말을 반복하며 고만고만한 임시?파견 일자리를 뱅뱅 돈다.
 

〈조난 프리타〉의 한 장면

이와부치와 같은 프리타족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진단하는 시도는 일본 내에서 많았다. 하지만 〈조난 프리타〉는 특이하게도 ‘프리타족을 바라보는 사회’를 프리타족 자신이 응시한다. ‘일본 프리타족 대표’로서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를 변조한 채 궁상스럽게 방에서 일회용 도시락 국수를 먹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간 한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 화면을, 이와부치의 카메라가 또 한 번 담아낸다. 그리고 묻는다. “매스컴과 사회는 나를 노예 혹은 패배자라고 부른다. 나는 누구에게 진 것일까, 누구와 싸워야 하는 걸까?”

다큐멘터리 영화 〈개청춘〉에서 ‘알바생’ 청년 인식씨는 감독과 함께 일본 다큐멘터리 〈조난 프리터〉를 보고 인상을 구긴다. “애가 뭐 저래, 발전도 없이.” 그러곤 조심스레 묻는다. “제가 저래요? 아니죠?” 얼마 뒤부터 인식씨는 제작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자신이 다큐멘터리 속에서 〈조난 프리타〉의 주인공처럼 한심한 20대로 비춰질까봐 두려워서 잠적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20대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인식씨는 용기를 내고 다시 카메라 앞에 등장했다.
완성된 〈개청춘〉은 큰 영화관에는 걸리지 못했지만 구석구석 ‘공동체 상영’으로 감독과 주인공 또래 20대를 만났다. 지난 9월29일 연세대에서 열린 공동체 상영회에는 관객 300여 명이 모여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린 만나서 이제 같이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라는 〈개청춘〉 마지막 내레이션처럼, 20대가 스스로 ‘진짜 20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려면
〈개청춘〉과 〈대학을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 독립영화 전용 배급사 ‘시네마달’에서 공동체 상영 신청을 받는다. 문의 cinemadal@cinemadal. com, 02-337-2135.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10월15~16일 전주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할 예정이다.
〈조난 프리타〉: 인디스페이스에서 공동체 상영 신청을 받는다. 문의 indies@kifv.org. 10월11일 인디스페이스에서, 10월24일 ‘카페 빵’에서 상영할 계획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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