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강댐 방류 사건은 묘한 데가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북한과 물리적으로 대치하는 국방부가 강경하고, 대화 부서인 통일부나 부처를 총괄하는 청와대는 온건 또는 중도적 태도를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9월6일 댐 방류 후 전개된 일련의 과정은 그 반대입니다. 국방부는 사태 초기부터 북한의 댐 방류를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실수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반면 통일부는 초기에는 비교적 차분한 입장이었으나, 점차 의도적 방류에 방점을 찍고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통일부의 배경에 청와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따라서 관건은 청와대가 왜 강경으로 방향을 틀었는가 하는 점인데, 북한의 무단 방류로 애꿎은 우리 국민이 희생된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뭔가 깊은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많이 퍼져 있습니다. 특히 청와대가 지난 7월 이후 북한이 보여온 일련의 대남 유화책을 우리 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 성과로 보면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북한을 확실하게 무릎 꿇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는 요즘 언론의 분석 기사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가 10월 재·보선을 유리하게 치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북 강경 방침을 유지하려 한다는 의구심도 제기됩니다.

남문희 편집국장
만약 사실이 그러하다면, 이는 정부가 그동안 견지해온 한·미 공조나 북한 내부 정세 그리고 최근의 중도 실용 노선과도 맞지 않는 태도라 할 것입니다. 정부가 북한을 밀어붙이고자 해도 이미 북한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바뀌었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이미 북한과의 대화 의사를 공식으로 밝힌 상황이고, 중국은 중국대로 고위급 특사를 보내서 북한이 6자회담 테이블에 나올 수 있도록 명분을 놓아주었습니다.

또 북한 내부적으로도 지난 5월 중순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 집무에 복귀한 이후 강경 군부가 물러나고 노동당이 전면에 등장해 대외유화 노선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의 대북정책과 상관없이 이미 큰 물줄기가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의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기 시작한 중도 실용 노선과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중도 실용이 단순한 서민 생계대책 차원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면 그것은 대북정책을 비롯해 인권과 민주주의 등 광범위한 문제에서 그동안 한쪽으로 치우쳤던 정부 정책의 균형을 잡는 데에까지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칼자루를 쥐려다 칼날을 잡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지만, 그런 각오 없이 중도 실용 운운했다면 그것은 단기간의 반짝 효과에 그칠 뿐 곧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기자명 남문희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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