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라갸르드 씨는 프랑스 공영방송 ‘라디오 프랑스 인터내셔널’ 기자다. 아시아 담당인 그는 직업상 한국 관련 뉴스를 매일 모니터한다. 라갸르드 기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묘하게 닮은 점이 많다는 걸 발견하고 놀랐다”라고 말한다. “사르코지는 역대 프랑스 대통령 가운데 가장 친기업 대통령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명박 대통령도 현대건설 CEO 출신으로 재벌 등 친대기업 정책을 펴왔다. 사르코지는 미디어법을 바꿔 방송 장악에 나서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법 개정과 견줄 수 있다. 미국을 추종하는 모습도 똑같다.” 몇 가지 공통점을 열거하던 라갸르드 기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요즘 중도 이미지를 겉으로 내세우며 포장하는 것도 사르코지와 닮았다고 덧붙였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종종 비교 대상이 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전경련 회장이다. 마찬가지로 니콜라 사르코지의 형 기욤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메데프 부회장이었다. 두 사람 다 불도저식 추진력으로 유명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공공 서비스 민영화나 의료 민영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르코지의 공공 부문 민영화를 연상케 한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왼쪽)은 한때 ‘부시의 닥스훈트’라는 오명까지 받았지만 오바마(오른쪽) 등장 이후에는 경제·외교 철학을 그에 맞게 바꿨다.

이명박 취임 초기에 촛불시위로 국민적 저항이 인 것은, 사르코지 취임 초기에 대학생·노동자들이 전국적 시위와 파업을 일으킨 것과 대응할 수 있다. 사르코지는 미디어법을 바꿔 공영방송 TF1의 사장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할 수 있게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방통위가 KBS· MBC 사장 자리를 놓고 흔드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사르코지는 TF1 간판 앵커를 자기 사람으로 교체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이명박과 사르코지는 이렇게 주로 ‘우파 불도저’로서의 공통점에서 비교됐다. 근데 요즘 사르코지가 다른 이유로 주목된다. 이른바 삼각화 전략이라는 중도 실용주의 본보기가 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원클릭 중도’로 이끈 주역인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우파 정책의 토대 위에서 좌파 정책을 일부 받아들인 것”을 중도주의 삼각화 전략의 예로 들었다.

영·미 중심 자본주의 비판 앞장서

박형준 정무수석비서관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사르코지 모델을 강조한 바 있다. 대선 직후인 2007년 12월23일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던 그는 “담론의 정치에 매몰됐던 프랑스에 실용주의 물결을 전파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유사한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다”라며 새 정부의 방향을 밝혔다. 이때부터 사르코지가 이명박의 롤모델이라는 말이 정권인수위원회 안팎에서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보여준 모습은 중도 실용주의와는 거리가 있었다. 청와대 내 중도 실용주의자들이 힘을 쓰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즘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의 역할이 다시 주목되며 사르코지 롤모델 이야기도 부활하고 있다.

2007년 사르코지가 1기 내각 명단을 발표했을 때 프랑스 국민은 외무부 장관에 베르나르 쿠슈네르가 포함된 것을 보고 놀랐다. 쿠슈네르는 청년 시절 공산당원이었으며 정치가로서의 인생은 줄곧 사회당에서만 보냈다. 전 사회당 정부 때는 보건부 장관을 지낸 사회당 거물이었다.
 

사르코지가 등용한 사회당 인물. 왼쪽부터 베르나르 쿠슈네르, 자크 아탈리, 자크 랑, 프레데릭 미테랑.

1기 내각에 사회당 출신 인물이 6명이나 있었다. 성장위원회 위원장에 과거 미테랑(사회당) 정부 정책참모였던 자크 아탈리가 기용됐고, 미테랑 시절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랑을 정부개혁위원회 위원으로 뽑았다. 전체 내각 각료 중 4분의 1이 좌파 혹은 중도파였다. 이런 좌파 등용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지난 6월23일 개각 때에도 미테랑 전 대통령 조카인 프레데릭 미테랑이 문화부 장관에 발탁됐다.

역사적으로 프랑스 정권은 흔히 좌우 동거 내각을 꾸려왔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미테랑 대통령도 선거 기간에는 좌파 정책을 강조했지만 집권하고 나서는 중도로 돌아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도 내각은 사르코지에게 정치적 이득을 줬다. 지난해 사르코지는 헌법을 50년 만에 바꾸는 개헌안을 밀어붙였다. 이 개헌안은 의회에서 가결 기준(재적 의원 5분의 3)에 단 한 표를 더 얻어 겨우 통과됐다. 자크 랑 사회당 의원이 찬성표를 던진 덕분이었다.

사르코지의 중도 내각 구성을 놓고 야당은 ‘사회당을 분열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며 비판한다. 하지만 사르코지 내각에 들어간 사회당 인사들이 그저 얼굴마담으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좌파 장관들은 신자유주의 정책 중 하나인 기업 규제 완화에 제동을 걸며 불완전한 시장을 감독하는 국가와 사회의 구실을 강조했다.

개헌안의 경우, 야당은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강화한다고 비판했지만, 사회당 인사들이 개헌안 조율 작업에 참여하면서 야당 목소리도 상당히 반영됐다. 의회 권한이 오히려 강화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주요 공직자 임명 때 의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항이 추가됐다.

물론 사르코지의 중도 실용주의를 이명박의 그것과 함부로 비교하기는 힘들다. 청와대가 보여준 중도 인사 기용 사례는 정운찬 총리 후보자 단 한 명밖에 없는데, 그 역시 골수 야당 인사로 보기는 힘들다. 좌파 인물은 더더욱 아니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민주당(열린우리당) 의원 출신 전직 장관이 재발탁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프랑스에서 중도 내각이란, 정치성이 없는 모호한 중도 성향 인물을 발탁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이 반대 성향을 가진 인물을 기용해 정책을 맡기는 것을 뜻한다.

무엇보다 이명박과 사르코지의 차이점은 이념적 유연성에서 드러난다. 한때 신자유주의 전도사였던 사르코지는 맨해튼발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흔들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도를 바꿨다. 지난 4월 G20 회의 때 사르코지는 시장 실패를 공격하고 금융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워싱턴 포스트는 4월3일 “사르코지가 영·미식 자본주의를 상대로 승리를 선언할 수 있었다”라고 썼다. 한때 ‘부시의 차세대 푸들’ ‘부시의 닥스훈트’라는 별명을 얻었던 사르코지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다. ‘기업 규제 강화’라는 메가 트렌드를 빨리 읽었기 때문이다. 사르코지가 G20에서 국제무역기구(WTO)를 개편하고 새 경제질서를 만들자고 목청을 높일 때 이명박 대통령은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태도를 취했다. 실용주의자가 되기엔 이명박은 너무 소신이 강한 것 같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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