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무언가 뒤바뀌는 세상에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의미 없는 옛말일 뿐이다. 하물며 시시각각 눈이 휘둥그레지는 인터넷 세상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한 인터넷 사이트가 10년째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은 ‘리얼 스페이스’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평지풍파를 견뎌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1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이트가 왁자지껄하게 얼굴을 내밀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가.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가 10주년을 맞는다. 1999년 10월에 문을 열었으니, 10월이면 꼭 10년이다. 현재 하루 방문자는 60만명, 페이지뷰는 3000만 건을 자랑한다. 얼마 전 Ddos 공격으로 타격을 입어서 그렇지, 전에는 하루 페이지뷰만 1억 건이 넘었다. 웬만한 대형 포털 사이트 뺨치는 수치다. ‘손발이 오그라든다’라는 유행어며 2PM 가수 박재범의 ‘한국 비하’ 발언 등이 확산된 진원지도 이곳이었다.

중소 포털 사이트로 10년 견뎌

서울 신도림역 테크노마트 3층에 있는 디시인사이드 사무실은 짐작보다 크고 깔끔했다. 족히 661m²(200평)는 되어 보이는 사무실에서 디시인사이드 및 관계사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10년 전 ‘디지털 카메라와 노트북 컴퓨터 이용 후기 사이트’로 출발한 이 작은 사이트는 이제 직원 48명에 자본금 30억원인 중견 기업이 되었다. 조현경 디시인사이드 기획본부장은 “중소 포털 사이트로 10년을 견딘 건 한국에서 디시인사이드가 유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21세기 벽두 디시인사이드는 대한민국 청년 인터넷 문화의 용광로였다. 최신 디카를 손에 든 ‘얼리어답터’들은 하루에도 수만 건씩 재미난 사진과 게시물을 올리면서 이곳을 재기발랄한 놀이터로 만들었

디시인사이드는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콘텐츠를 양산했다. 왼쪽부터 인기를 끌었던 빠삐놈·장승업·개죽이·개벽이.
다. 개죽이·싱하형·아같이 몰라도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알면 알수록 빠져들고 마는 중독 콘텐츠를 양산했다. 포토숍 잘하는 자는 합성으로, 시간 많은 자는 ‘수뉘권 놀이’(댓글 빨리 달기 놀이) 따위로…. 이들을 일컬어 사람들은 ‘디시 폐인’이라 불렀다. 그중에는 ‘메가쇼킹’이나 ‘김풍’처럼 디시인사이드 활동을 통해 유명 만화가로 거듭난 이들도 있다.

디시인사이드가 청년 인터넷 문화의 중심에 선 것은 ‘유저(사용자) 중심주의’ 덕분이다. 운영진은 도배 댓글을 삭제하는 정도의 개입만 할 뿐, 사이트 운영 권한을 사실상 유저에게 넘겼다. 디시인사이드의 핵심인 갤러리를 개설하는 것도 전적으로 유저의 요청에 따른다. 김유식 대표가 만두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알려지자 갤러리 신설을 요구하는 유저들이 날마다 사무실로 만두를 배달했던 일도 있다.

이러다보니 디시인사이드 운영진은 사용자의 동향 파악에 집중할 뿐, 다른 사이트처럼 회사 차원의 장기 비전을 면밀히 세워두지 않았다. 조현경 본부장 설명대로 “유저들이 어떻게 변화해갈지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가올 10주년을 기해서도 ‘1세대 디시 폐인 찾기’나 ‘대규모 출사대회’ 정도 이벤트만 계획하고 있을 뿐, 거창한 사업 비전을 발표할 계획은 없다. 월급 받아 먹고사는 운영진 처지에서는 불안할 법도 한데 이들은 별로 걱정하는 기색이 없다. 디시인사이드 초창기 멤버인 박유진 뉴스팀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디시 활동이 재미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국형 인터넷 문화’ 선도

디시인사이드가 젊은 누리꾼의 말초적인 놀이터인 것만은 아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운동이 벌어졌을 때 유저들은 ‘개죽이’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석했다.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 때 젊은 과학자들의 모임 ‘브릭’(Bric)과 더불어 황 박사 논문의 데이터 조작을 밝혀낸 이도 과학 갤러리 유저였다. 

물론 여전히 디시인사이드를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이곳이 인터넷 악플과, 요즘 유행하는 루저(패배자) 문화의 진원지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김유식 대표 말마따나 과연 디시인사이드 때문에 그런 풍습이 생겼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익명의 자유로움과 청년의 재기발랄함이 결합하면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형 인터넷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10년 전, 디시인사이드의 ‘DC’는 본래 ‘Digital Camera’의 약자였다. 그런데 이제는 ‘Digital Community’의 약자다. 디시인사이드가 앞으로 어떤 공간으로 발전해나갈지 지켜보는 것도 팍팍한 일상에 꽤 ‘므흣한’ 재미를 안겨줄 것이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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