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전쟁에서 오바마 정부의 대언론 정책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미국 정부가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는 사례가 최근 여러 건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2006년 12월 국방장관 취임 뒤 처음 발표한 성명에서 언론을 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공언했던 로버트 게이츠 장관과 언론 사이에 냉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의 시녀 노릇을 한다는 오명을 썼던 미국 언론계가 최근 태도를 바꾼 계기는 사진 한 장에서 시작했다.

AP 사진기자 줄리 제이콥슨은 8월14일 아프가니스탄 서부 헬만드에서 미국 해병대 조슈아 버나드 병장(21)이 탈레반의 공격으로 다리를 크게 다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이 사진의 배포를 막기 위해 토머스 컬리 AP 사장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게이츠 장관은 편지를 보내 “AP의 결정이 버나드 병장 가족의 반대를 의도적으로 거스르고 있다. 사진 배포 결정을 재고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미국 신문들의 1면을 버나드 병장이 부상한 모습으로 장식하도록 한 당신의 동정심과 상식의 부족은 소름이 끼친다. 이는 법이나 정책, 헌법적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과 예의의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AP는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의 ‘요구’를 뿌리치고 아프간 탈레반에게 공격받아 심하게 다친 버나드 병장의 사진(위)을 공개했다.

AP에 편지를 보내고도 안심이 안 된 게이츠 장관은 컬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버나드 병장의 사진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AP는 결국 사진을 공개했다. 존 다니스제브스키 AP 편집장은 “게이츠 장관의 견해를 존중하지만 때때로 정부와 언론은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다. 우리는 이 사진이 아프간 전쟁 역사의 일부라고 믿기 때문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반박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가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을 벌일 당시 미국 언론은 미국 정부에 상당히 협조적이었다. 미국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뉴욕 한복판에서 벌어진 테러로 미국 언론과 국민을 보수적으로 돌아서게 했다. 1960년대 이후 언론 자유를 만끽하던 미국 언론은 ‘대테러전’이라는 전쟁의 특성 때문에 ‘미국 정부에 대한 그 어떤 보도도 테러리스트를 돕는다면 자제해야 하는’ 국방부 보도방침에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명 ‘특공대 사건’은 보도 통제의 첫 사례였다. 아프간 공습 개시 2주 후인 2001년 10월22일, 당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아프가니스탄 특공대 작전 비밀을 언론에 누설한 국방부 직원은 연방법을 위반한 것이다”라며 화를 냈다. 워싱턴 포스트가 국방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국 특공대가 아프가니스탄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CBS와 NBC 방송은 물론이고 모든 언론이 워싱턴 포스트를 인용해 이 사실을 받아쓰자 국방부의 보도 통제는 전에 없이 강경해졌다. 그러던 중 그해 12월 초 미군 폭격기 오폭으로 미군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건은 일어났으나 아프간에서 종군기자들의 접근은 원천 봉쇄됐다. 특공대 사건에 대한 ‘국방부의 복수’라고 판단한 기자단의 거친 항의가 있었고, 국방부는 사과했지만 오폭 사건은 묻혀버린 뒤였다.

‘제4의 정부’ 언론이 ‘네 번째 부서’가 되다

이후에도 아프간 종군기자 프로그램은 반드시 국방부 안내를 받아야만 아프간 미군기지로 들어갈 수 있고 병사들의 예배와 진급 행사 등 비전투 기사만 보도가 허용되었다. 심지어 작전이 끝난 뒤 국방부 발표가 나오고 나서도 현지 보도가 통제될 정도였다. 종군기자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지만 미군은 아프간에서 기자들을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국방부는 “스포츠 게임을 보는 관중보다 선수가 더 중요하다”라는 논리로 맞섰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형식으로 그 어떤 질문에도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미국의 안보 상황 때문에 대답할 수 없다”라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공정보도 감시단체 ‘페어’가 플로리다 주에 있는 ‘뉴스 헤럴드’의 보도지침을 인용한 글 중에는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피해를 보여주는 사진은 1면에 게재하지 말 것. 민간인 피해를 주제로 한 통신사 기사도 사용하지 말 것. 부득이 사용할 경우에는 기사 중간에 배치하거나, 민간인 피해 상황을 축소 보도할 경우에만 기사 앞에 배치할 것” 따위가 있었다. 정부의 약점을 가려주는 보도 방침이다.

게이츠 국방장관(위)은 버나드 병장의 사진 게재를 막기 위해 AP 사장에게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했다.
폭스뉴스의 브릿 흄은 “민간인 희생은 전쟁의 당연한 한 부분이다. 왜 그것이 그렇게 큰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발언했고, NPR 뉴스 마라 리아손은 한술 더 떠 “전쟁이란 기본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 정부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탈레반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텔레비전이 밝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CNN조차 기자들에게 민간인 피해를 보도할 때는 반드시 국방부의 피해 최소화 노력을 함께 언급하라고 지시했다.

2001년 10월 당시 라이스 국무장관은 ABC ·CBS·NBC·폭스·CNN 중역을 백악관으로 불렀다. 이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오사마 빈 라덴이 발표하는 모든 비디오 메시지에서 정부가 선동적이라고 간주하는 내용을 삭제하는 등 발췌 보도할 것’에 합의했다. 이것은 미국 방송사들이 뉴스 보도 제한에 공동 합의한 첫 번째 사례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 ‘중역회의’는 백악관에서 정례 행사처럼 조직적으로 진행되어왔다.

이런 언론 통제 분위기가 조성된 데는 여론 도 한몫 했다. 9·11 테러의 충격이 강타한 후 미국 국민은 보수적인 정서로 바뀌었다. 충격과 후유증으로 미국인의 무의식 속에는 보복 심리가 넘쳤다. 방송 앵커들은 성조기 배지를 가슴에 달고 나왔으며 화면 귀퉁이에도 성조기가 물결쳤다. 이런 상황이 미국 언론을 공정과 진실에서 멀어지게 했다. 한 언론인은 “언론은 독립성과 공정성이 중요하다. 언론인의 자부심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제4의 정부’라는 언론은 오늘날 정부의 ‘네 번째 부서’가 되어버렸다. 언론인의 자부심은 세계무역센터와 함께 무너져버렸다”라고 말했다.

최근까지도 미국 언론은 ‘탈레반’이 아니라 ‘탈레반 반군’이나 ‘탈레반 게릴라’ 등으로 표기하며 미군에 편향된 기사를 보도한다. 아프간에 기자를 보내지 않는 나라는 대부분 AP나 CNN 같은 큰 언론사 기사를 그대로 받아쓰게 된다. 미국 언론사 보도지침이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미군의 ‘여론 전쟁’에는 홍보 전문회사도 동원된다. 미국 국방부는 처음 아프간에서 공습이 진행되는 동안 국방부의 ‘인간적인’ 이미지를 부각해달라며 홍보 재벌 그룹 렌던과 39만 7000달러짜리 계약을 체결했다. 렌던은 유전자 조작식품으로 악명 높은 몬산토 그룹의 이미지 개선 등 ‘비난에 대처하기 위한 홍보 작업’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CIA를 비롯해 정부기관과의 비밀계약으로도 이름난 렌던은 “돈만 주면 무엇이든 홍보해서 좋은 이미지로 커버한다”라는 것이 사훈이라고 한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서는 이런 홍보회사의 활약으로 여론이 전복되기도 한다. 대부분 특정 사실을 생략하거나 끊임없이 반복 주입하는 방식으로 홍보 작업이 이루어진다. 허위 사실을 조작·유포하는 경우도 많다.

아프간 종군기자의 성향 분석해 등급 매겨

지난 8월24일과 26일 미국 군사 전문지 〈성조〉는 미국 정부가 아프간 종군기자들의 성향을 분석해 등급을 매긴다고 보도해 언론인에게 충격을 줬다. 이 성향 분석은 아프간 종군기자의 기사를 긍정적·중립적·부정적 등급으로 평가했다. 〈성조〉가 단독 입수한 국방부 보고서에 따르면 기자별 등급을 명시한 뒤 해당 기자의 취재에 대응하는 방식과 권고 사항이 기재돼 있었다. 미국 언론단체는 홍보회사를 통해 이런 조사를 벌인 것도 문제이지만, ‘심각한 언론 침해’가 더 문제라며 발끈했다. 국방부가 다시는 기자들의 성향 조사를 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우고 사과하며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얼마 안 돼 벌어진 ‘버나드 병장 사진 배포 저지 로비 사건’은 다시 한번 언론과 국방부 간의 긴장 관계를 보여줬다. AP가 이 사진을 공개하기로 한 것은 미국 언론이 공정성과 진실에 다가간 것을 의미한다. 언론인 보호협회(CPJ)는 “이제야 테러 위협보다는 언론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을 느낀다”라며 AP의 결정을 지지했다.

결국 AP의 사진은 전 세계에 배포되었고 미국 신문사가 거의 다 이 사진을 실었다. 국방부는 게이츠 장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에 KO패당한 셈이다. 9·11 테러 이후 정부에 고분고분하던 언론이 더 이상 정부와 같은 길을 갈 수 없는 것은 최근 아프간 전쟁에 대한 미국 국민의 반대 의견이 절반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와 ABC 방송이 9월2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의 비용과 이득을 고려할 때, 아프간 전쟁이 전투 가치가 있었나?”라는 질문에 51%가 “가치가 없었다”라고 대답했다. 한 달 전보다 부정적 응답이 6% 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이 조사에서 부정적 응답이 절반을 넘기는 처음이다. 이것은 국민 여론이 크게 나빠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분위기는 언론이 더 이상 국민의 눈치를 보며 정부 편을 들어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으로 흘렀다. 그동안 보도지침과 보도 유예, 자체 검열로 신물이 난 미국 저널리즘에 변화하는 국민 정서를 업고 새로운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국민과 언론에는 잘된 일인지 모르지만 오바마 정부로서는 반가운 일이 절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탈레반의 공세와 미군의 계속된 희생으로 열세인 아프간 전쟁에서 언론이 정부 편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홍보회사를 고용하더라도 오바마로서는 상당히 괴로운 상황이 될 것이다. 앞으로 미국 언론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오바마는 아프간에서 언론과의 전쟁까지 치러야 할 상황이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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