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실리카겔이 지난해 10월8일 ‘부산 국제 록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치고 있다. ⓒYouTube 갈무리
밴드 실리카겔이 지난해 10월8일 ‘부산 국제 록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치고 있다. ⓒYouTube 갈무리

지난해부터 한국 음악계에 유행처럼 도는 말이 있다. ‘밴드 붐은 온다.’ ‘왔다’도 ‘올 것이다’도 아닌, ‘온다’는 시제 사용이 제법 재미있다. 현재형이면서도 어쩐지 아직 발바닥이 채 땅에 닿지는 않은 미묘한 상태. ‘서동요 기법’이라고도 불리는 문장 속성에는 사실 마침표나 느낌표보다는 물음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밴드 붐이, 왔나? 오고 있나? 온 건가?’ 조짐은 있으나 아직 완전히 오지는 않은 것 같은 느낌, 동시에 꼭 와주었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 같은 것들이 포함된 말이다.

듣다 보니 어쩐지 더 애가 타는 ‘밴드 붐은 왔다’를 본격적으로 유행시킨 건 누가 뭐래도 최근 가장 주목 받는 4인조 밴드 실리카겔이다. 멤버 대다수가 서울예대에 재학 중이던 2013년, ‘평창국제비엔날레’ 참가를 계기로 결성된 밴드는, 특유의 화려하고 독창적인 음악으로 10여 년을 활동하는 동안 꾸준히 주목받았다. 데뷔와 동시에 당시 대표적 신인 밴드 등용문으로 불리던 EBS 〈스페이스 공감〉 ‘올해의 헬로루키’와 한국콘텐츠진흥원 ‘케이루키즈’ 모두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였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싶다.

다만 10년 사이 실리카겔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데뷔 초, 실리카겔에 주목한 건 업계 관계자들과 새로운 음악에 열려 있는 일부 마니아들이었다. 심지어 이들 음악에 달린 “귀 썩는 음악”이라는 댓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반전은 멤버 전원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2021년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 공백기가 있었는데도 전혀 빛바래지 않은 실리카겔만의 다채로운 음악적 빛깔이 싱글 〈디저트 이글(Desert Eagle)〉 〈임모탈(I'MMORTAL(feat. sogumm))〉로 이어졌고, 이듬해인 2022년 〈노 페인(NO PAIN)〉이 제대로 터졌다. ‘내가 만든 집에서/ 소외됐던 사람들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이 곡은 2022년과 2023년, 한국에서 열린 거의 모든 음악 페스티벌을 뜨겁게 물들였다.

그렇다. 밴드 붐의 조짐은 공연으로부터 왔다. 실리카겔 역시 엔데믹과 함께 다시 조심스레 열리기 시작한 공연 시장을 바탕으로 인기를 끈 밴드다. 한국 최대의 록 페스티벌로 자리 잡은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의 경우 2022년과 2023년, 공연이 열린 사흘 동안 각각 13만명과 15만명이라는 호쾌한 관객 동원력을 자랑했다. 코로나19 이후 해마다 역대 최다 관객 수를 경신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에는 ‘페스티벌에 매진이 없다’는 불문율 아닌 불문율을 깨고 토요일 1일권을 매진시키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비단 페스티벌만이 아니다. 밴드 단독 공연에 대한 열기도 놀랍다. 특히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밴드 내한 공연에 대한 수요가 높다. 지난해 12월 한국을 방문한 밴드 ‘요아소비’와 ‘원 오크 록’의 경우 예매 오픈과 동시에 공연 전석이 매진됐다. ‘이 팀들은 세계적 히트곡과 탄탄한 팬덤을 가진 특수사례가 아니냐’고 의심한다면, 올 상반기 내한을 알린 ‘킹 누’와 ‘히쓰지분가쿠’의 매진 열풍도 언급하고 싶다. 킹 누의 경우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닌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을 공연장으로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티켓을 매진시키며 추가 공연을 확정했다. 여성 3인조 밴드로 지난해 펜타포트에서 한국 관객을 처음 만나기도 했던 히쓰지분가쿠의 경우 애초 스탠딩으로 최대 4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KT&G 상상마당 라이브 홀을 택했다가 뜨거운 티케팅 열기가 너무 뜨거워 그곳의 3배 규모에 가까운 노들섬 라이브하우스로 부랴부랴 공연장을 변경했다. 공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해당 공연 날짜에 빈 공연장이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찾은 아쉬운 선택이었다.

새로운 세대의 필터 통해 재탄생한 록

밴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록 음악이라는 걸 생각하면 밴드 붐은 결국 록 음악 붐과도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오랜 시간 대중음악계의 왕좌와 진정성 파이를 장악하며 어느새 ‘고루한 음악’의 상징이 된 록 음악은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필터를 통해 즐겁고 유쾌한 방식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국적이나 장르를 불문하고 나타나는 뚜렷한 흐름이다. ‘록 리바이벌’과 함께 2022년 그래미 ‘베스트 뉴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한 올리비아 로드리고를 언급하는 이가 가장 많을 것이다. 틱톡이나 쇼츠 같은 숏폼 플랫폼을 통해 유행한 수십 년 전 록 음악이 차트를 역주행하기도 하고, 국내의 경우 김뜻돌, 한로로, 조승연(WOODZ) 등 인디와 케이팝을 아우르는 음악가들이 록을 자기 고유의 색깔에 녹여 흥미로운 음악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기도 하다. 데이식스, 엔플라잉,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등 밴드형 아이돌이 탄탄히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기도 하다. 하나같이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진지하게 물을 수밖에 없겠다. 그래서 밴드 붐은, 올까? 솔직히 말하자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밴드를 대표하는 록 음악은 확실히 이미 지난 시대의 장르다. 지금 막 음악을 시작하는 이들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힙합을 비롯한 흑인음악과 전자음악을 곁에 두고 자랐다. 록 음악을 하는 신인 음악가는 있어도 예전처럼 장르의 무게에 짓눌리는 이가 드문 것도, 밴드를 하고 있지만 그게 록 음악은 아니라는 말을 하는 이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심지어 효율도 떨어진다. 랩톱 컴퓨터면 되는 요즘 음악에 비해 여러 사람이 모여 연습실을 빌리고 스케줄과 악기 합을 맞춰야 하는 밴드 음악은 요즘 말로 ‘가성비’가 맞지 않는다. 지금 활동하는 대다수 밴드는 최소한의 유지비도 충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밴드 붐은 온다’고 서동요를 부르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 것, 멋진 인물을 여전히 ‘록 스타 같다’고 표현하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굳이 붐이 오지 않아도 좋다. 밴드 그리고 록이라는 단어가 가진 에너지 그대로 음악 신에서 오래 살아남아 주길 바랄 뿐이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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