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8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AI 디지털 교과서 추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8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AI 디지털 교과서 추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1월7일 취임사에서 이주호 신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세 차례 ‘혁명’을 입에 올렸다. “코로나19로 가속화된 디지털 대전환”과 “반토막 난 학생 인구”를 이야기하며, “우리 교육의 틀을 과감하게 바꾸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 부총리가 지난해 “혁명적 변화의 촉발제”라며 소개한 정책이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다. 천문학적 예산과 막대한 인력이 들어간다. 도입 시기는 내년이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교육용 소프트웨어다. 단순히 종이 교과서를 스캔해 디지털 기기로 옮긴 것을 넘어, 학생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AI는 학생 분석을 맡는다. 학생들이 자주 틀린 문항을 기반으로 주요 개념을 다시 설명하거나 비슷한 문제를 제시한다. 학습목표를 어느 정도 완수했는지 점검하는 역할도 한다. 학생의 강점과 약점, 학습 태도와 이해도 등 여러 데이터를 모아 ‘대시보드’ 형태로 보여준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이 자료를 활용한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수학·영어·정보·국어(특수교육) 과목에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 뒤 2028년 전 과목으로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국회는 지난해 디지털 교육혁신 명목 특별교부금 5333억원을 교육부에 배정했다.

일각에서는 교육과 디지털의 조합에 의구심을 품는다. 2022년 서울시교육청이 시작한 ‘디벗’ 사업이 일례다. 디벗은 서울 시내 중학생에게 태블릿 PC를 무상 지급한 정책이다. 소득과 무관하게 비대면 학습 기회를 보장하자는 취지였다. 문제는 오용이었다. 교육청은 2025년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맞춰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에게도 디벗을 지급할 예정인데, 일찌감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육아·교육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이가 디벗으로 공부가 아니라 게임을 한다” “주말 내내 디벗을 끼고 있는데 뭘 하는지 모르겠다” 따위 푸념이 속출했다. 지난해 10월 서울시교육청은 유해사이트 차단 프로그램 강화, 초등학생은 학교에서만 사용 등 운영 개선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학부모들은 근본적 의문을 드러낸다. 대면 교육이 가능한 지금 “왜 기계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것이다.

“디지털 교과서는 학생 수만큼의 ‘조교’”

교육부의 답은 ‘맞춤형 학습’이다. AI 디지털 교과서가 개별 학생의 수준에 맞춰 학습을 돕는다는 것. 교사 한 명이 똑같은 교과서로 가르치면 필연적으로 낙오자가 생긴다. ‘에듀테크’에 주목하는 이들은 매우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한다. 누군가 학급 학생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서 개별 지도할 수 있다면 뒤처지는 이들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누군가’가 AI다. 학생의 강점과 약점, 학습 태도, 이해도를 측정하고 알맞은 학습 자료를 제공한다. 두 자릿수 곱셈, 현대시, 과거분사형 등으로 학습 목표를 세분화하고, 개념과 문제풀이를 개별적으로 수행한다. 학습 속도가 느린 학생은 보충학습을 하고 빠른 학생은 심화 자료를 받는다. 지난해 11월 교육부가 발표한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 가이드라인’의 부제는 ‘500만 학생을 위한 500만 개의 교과서’이다.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태블릿 PC 등을 이용한 스마트 교육 공개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태블릿 PC 등을 이용한 스마트 교육 공개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이주호 장관과 함께 책 〈AI 교육 혁명〉을 쓴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교육학)는 AI 디지털 교과서의 효과를 낙관했다. 정 교수의 말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고등학생 절반 이상이 수학 시간에 멍하게 시간을 보낸다. AI 디지털 교과서로 맞춤형 교육을 하면 학습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의 시간이 의미 있게 쓰인다.” 이것은 그간 완수하기 어려웠던 ‘전통적 교육’의 목표다. 여기에 더해 정 교수는 창의력이나 비판적 사고 등 미래 사회에 어울리는 덕목을 기르는 데에도 AI 디지털 교과서가 직간접으로 기여한다고 말했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선생님에게 학생 수만큼의 ‘조교’다. 교사가 같은 시간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팀 프로젝트 등 창의적 활동을 주도할 수 있게 된다.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한 개별화 학습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함께하는 경험으로 창의적 역량을 키운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지식 학습, 교사가 주도하는 창의적·인성적 활동을 묶어 교육부는 ‘하이테크-하이터치’라고 부른다. 〈AI 교육 혁명〉에서도 쓰인 용어다.

핵심 논제는 이 지점에 있다. 맞춤형 교육이 강의식 교육보다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맞춤형 교육’도 그럴까? 이주호 부총리는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시절인 2021년, 〈나라경제〉 4월호에 ‘AI 교육혁명’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여기서 그는 ‘AI 개인 교사’를 도입한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를 언급했다. 내용은 AI 디지털 교과서 정책과 다르지 않다. AI가 모든 대학생에게 수준별 학습을 제공했고 강의 부담이 줄어든 교수는 프로젝트 학습을 늘려 성공했다는 것. 그런데 다소 힘 빠지게도, 이주호 교수의 기고 후반부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AI 교육은 아직 많은 한계도 있다. 무엇보다 AI 교육의 효과에 대해 보다 많은 엄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물론 최근 AI 교육의 놀랄 만한 긍정적 효과에 대한 연구들이 나오고 있지만 결코 충분한 실증적 근거가 확보됐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불과 3년 전 기고에서 이주호 부총리 자신도 AI를 통한 학습효과를 확신하지 못한 셈이다.

권정민 교수는 “AI 디지털 교과서가 학업성취도를 올린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권정민 교수는 “AI 디지털 교과서가 학업성취도를 올린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권정민 서울교육대학교 교수(유아·특수교육과, 인공지능인문융합전공)는 AI 디지털 교과서에 회의적이다. 그는 “AI 디지털 교과서가 학업성취도를 올린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이주호 부총리가 성공 예시로 든) 애리조나 주립대는 대학이다. 초·중·고 교육은 완전히 다르다”라고 말했다. 권 교수가 지적하는 바는 ‘디벗’에 대한 일부 학부모의 불만과 맞닿아 있다. 미성년자는 통제가 안 된다. 디지털 기기는 개인별 학습을 가능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학습은 집중력을 떨어트린다. 권 교수에게는 ‘실증적 근거’가 있다.

2020년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에듀테크 멘토링’ 사업을 수행했다. 기초학력이 부족하거나 취약계층인 학생 4만여 명에게 멘토 2000여 명과 학습 지원 소프트웨어를 지원한 것이다. 권정민 교수가 속한 서울교대 연구팀은 그중 일부 사례를 분석해 2021년 ‘에듀테크 멘토링 사업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보고서’를 펴냈다. 연구보고서에는 학습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가 각각 담겼다. 관건은 사람의 개입 양상이었다. 성공 사례로 꼽힌 멘토링 강사들은 공통적으로 ‘학생과의 상호 신뢰 관계 형성’을 비결로 꼽았다. 기기에 진도를 의존하지 않고 전문성 있는 멘토가 능동적으로 가르쳤다. 이들은 팬데믹으로 잠시 본업을 떠난 학원 강사, 출국길이 막힌 유학생이었다. 반면 멘토가 ‘기기 관리자’가 되면 학습은 실패했다. 학교나 에듀테크 회사에서 ‘학생이 알아서 학습하게 하고, 멘토는 관여를 최소화하라’고 요구한 경우였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학습하지 않았다. 수개월간 기기를 켜지 않은 학생들도 나왔다. 권 교수는 이것이 AI 디지털 교과서의 난제라고 말했다. “AI 디지털 교과서의 작동은 정확한 학습자 분석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학습자를 분석하려면 외부 간섭이 없어야 한다. 인간 교사가 (학생의 학습 과정에) 관여하면 AI 분석 알고리즘이 혼탁해진다. 그러나 정작 사람의 개입이 줄면 학생은 학습 의지를 잃는다.”

AI 디지털 교과서의 효능을 의심케 하는 사례는 또 있다. 2010년대 후반 미국에서 몇몇 지자체와 공립학교가 디지털 개인화 학습을 시도한 적이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개발 자금을 지원한 ‘서밋(Summit)’ 학습 프로그램이 대표적 도구였다. 서밋의 방식은 한국 교육부가 AI 디지털 교과서로 시도하려는 ‘하이테크-하이터치’와 그리 다르지 않다. 학생은 노트북으로 수준별 퀴즈를 풀고 교사는 강의보다 특별 프로젝트와 상담에 집중했다. 그런데 2019년 1월, 서밋을 채택한 캔자스주 웰링턴의 한 공립학교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디지털 학습 도구를 거부하며 휴업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해 4월21일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이 학교 일부 학생들은 두통과 손 경련, 불안감을 호소했다. 교사는 자신이 “방관자가 되었다”라고 느꼈고, 부모는 자녀의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우려했다. 서밋을 사용한 학교 여러 군데에서 비슷한 파열음이 나왔다. 지난해 10월5일 미국 교육 전문 매체 〈초크비트〉는 서밋의 직원 감축 소식을 전하며 “(디지털 맞춤형 학습이) 학습에 큰 이득을 가져다주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라고 썼다.

2019년 미국 캔자스주 웰링턴의 한 건물. 서밋 학습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The New York Times
2019년 미국 캔자스주 웰링턴의 한 건물. 서밋 학습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The New York Times

왜 ‘디지털 맞춤 학습’은 예상만큼 성공하기 어려운가?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비교미디어학 교수이자 티칭시스템연구소 소장인 저스틴 라이시는 2020년 저서 〈언택트 교육의 미래〉에서 에듀테크가 처한 근원적 딜레마를 지적했다. 에듀테크는 저학력·저소득 가정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개선하려고 도입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정작 이들에게 큰 효과를 보이지 못한다. 라이시 교수는 축적된 연구를 토대로 오히려 “새로운 자원, 심지어 무료 온라인 자원까지도 부유한 학습자에게 혜택을 안길 가능성이 크다”라고 썼다.

격차는 ‘기기’ 아니라 ‘사용’에서 발생

공교육이 신기술을 무료로 제공하면 취약계층도 가정과 사교육의 개별 지도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게 에듀테크 옹호론의 기치다. 미국에서 서밋을 채택한 곳 역시 시골 공립학교가 다수였다. 그런데 라이시 교수는 우등생과 열등생, 부유층과 소외계층이 경험하는 교육의 질이 디지털 학습에서 나뉘는 경향이 있다고 적었다. 그가 보기에 디지털 교육 격차는 첨단 기기나 초고속 인터넷을 무료로 보급한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격차는 ‘사용의 격차’다. “부유한 학생들은 교사나 부모 등 성인의 멘토링을 받아 더 창의적 활동에 기술을 쓴다. 저소득 가정이나 소외된 배경 학생들은 성인의 지원이 제한된 상태에서 일상적 반복연습과 훈련을 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것은 ‘교사 주도 활동’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격차가 아니다. 신기술을 활용하는 미국 학교들을 연구한 라이시 교수는, 부유한 지역 학교에서는 “교사가 가정의 자원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으므로 온라인 과제를 해야 하는 복잡한 프로젝트를 학생에게 더 쉽게 배정할 수 있었다”라고 썼다. 반대로 저소득층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교사 중심 콘텐츠를 전달하는 용도에 머물렀다.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로 발전했기에 배경에 따른 격차를 줄일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공개된 AI 디지털 교과서 시제품(시안)은 최신 AI 기술에 기대하는 바와 거리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한 교육학자는 “시안을 본 이들은 ‘AI가 어디에 들어가나’ ‘뭐가 AI의 역할인가’라는 이야기를 한다. 익히 보던 사교육 문제풀이 교재와 별로 다른 게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 시안이 고도화된 AI 디지털 교과서로 발전해 ‘인간을 통한 학습’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게다가 AI 발전 과정에는 치명적 부작용도 있다. 개인정보 보호 문제다.

AI가 학생을 정확히 분석하고 그에 맞는 학습 코스를 제공하려면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지난해 11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 가이드라인’에서 개발사 자체의 서비스 고도화와 국가 수준의 학습분석 수행, AI 트레이닝 등을 위해 학생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고 썼다.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따라 학생(학부모)의 명시적 동의를 얻고, 비식별(익명)화를 거치며, 서비스 고도화를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하겠다고 적었다. 정현선 경인교육대학교 교수는 ‘아동·학생 데이터’의 특성을 고려해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은 자기 경험과 사생활을 쉽게 드러내고 성인만큼 비판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미성년자의 민감한 데이터를 어떤 방법으로 얻어서 AI의 무엇을 훈련하는 데에 쓸 것인가? (의무) 공교육인 학교에 다니면 자동적으로 모든 데이터를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아동 관련 데이터에 이렇게 포괄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게 국제사회의 권고다.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충분히 숙의되지 않은 채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2023년을 교육개혁 원년으로 선포한 정부는 AI 디지털 교과서 속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6월 이주호 부총리가 AI 디지털 교과서 추진 방안을 발표하고, 10월에는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개정해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11월 개발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12월에는 시제품을 시연하고 올해 1월에는 ‘디지털 교육포럼’을 열었다. 시제품을 사용해본 몇몇 교사가 발표자로 나섰다. 3월11일 교육부는 ‘현장의 자율적 수업 혁신 지원으로 교사가 이끄는 교실 혁명을 시작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디지털 기반 수업·평가 혁신과 수업 나눔에 앞장서는 교사” 100명을 뽑아 수업·평가 연구비와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주호 부총리는 “디지털 교육 격변기에 (중략) 수업 혁신의 성공은 교사의 자발적 참여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AI 디지털 교과서가 성공할 수도 있다. 앞선 책에서 라이시 교수는 에듀테크의 성공 요건으로 “개발자·교육자·학습자가 공동 목표로 단결하고 가정·학교·커뮤니티와 연합해 학생과 부모, 멘토의 역량을 키우는 것” 등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공동체의 역량을 올리는 것은 에듀테크의 효과를 늘릴 뿐만 아니라 교육 전반에 이로운 효과를 낸다. 그래서 라이시 교수는 “미래에 대비한 최선책은 기존 정규교육 시스템이 사회질서에 미치는 엄청난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존중하며 여기에 적절한 자금과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적는다. 어차피 에듀테크의 성패가 인간에게 달려 있다면, 에듀테크가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하는 또 다른 교육정책도 모색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2021년 학자 이주호 교수는 AI 학습의 ‘한계’에도 주목했다. 그랬던 그가 부총리가 된 지금, 교육부는 확신에 차서 수천억 원짜리 혁명을 추동하고 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