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나처럼 살지 않으려면 네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이가 들수록 부담감이 컸던 거 같아요. 장학금 이런 거 남들은 다 받는데 나는 게으르고 나태해서 그것도 못 받고 자책감이 컸고, 스트레스성 폭식을 반복했고 그러면서 악순환이 시작된 거 같습니다(〈씨리얼〉, ‘1인분의 삶을 살고 있나요?’ 인터뷰 중).”
2021년 즈음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 계속 언급되는 ‘요즘 20대의 일생’이란 짧은 웹툰이 있다(원작은 가바나 작가가 2014년 그린 단편 〈완벽한 백수의 일생〉이지만 누군가가 ‘불펌’하며 퍼져 나갔다. 작가는, 당시에는 주인공의 행태에 긍정하는 의견이 많지 않았는데 7년 만에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 놀랍다며 후일담을 전한다). 주인공은 막연히 어른이 되면 뭔가 되겠지,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적당한 대학에 진학하지만 학업에 큰 열의는 없다. 학자금 대출을 떠안고 대학을 졸업했는데 취업에 자꾸만 실패하고, 그렇다고 너무 힘든 노동은 하기가 싫다. 주변인과의 연락이 점차 끊긴다. 점점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살이 찐다. 백수 생활이 5년을 넘어간다. 결국 죽을 준비를 한다.
고립·은둔 청년이 한국 전체 청년 인구의 5%인 54만명이다. 근래 일본 정부 조사에서 파악한 15~39세 청년 히키코모리가 67만명이라고 하니, 청년으로 한정하면 인구가 절반도 안 되는 한국이 훨씬 심각한 셈이다. 이 54만명의 청년은 2020년 겨우 제정된 청년기본법에 근거한 실태조사로 비로소 세상에 드러났다. 이 수치가 나오고 나서야 정부는 고립·은둔 청년에 대해 심층 조사를 진행했고, 지난해 말에 처음으로 결과와 대책을 내놓았다.
기사나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는 건 언제나 ‘성숙한 시민’
〈씨리얼〉은 몇 년 전부터 은둔형 외톨이를 다뤄왔는데, 최근에는 ‘장기 미취업’, 즉 돈을 벌지 않고 있는 상태를 초점에 두고 다시 인터뷰를 진행했다. 모두가 5년에서 길게는 11년까지 취업 공백기를 지낸 청년들이다. 대학원에 갔다가 지도교수와 심한 갈등을 겪고 방 안에 자신을 가둔 사람, 대학 동기들과 달리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도전을 회피한 사람, 직장에서 받은 부정적 평가가 트라우마로 남은 사람, 20대에 성범죄 피해를 당한 뒤 지난한 법적 분쟁을 겪으면서 고립된 여성까지, 은둔 계기는 모두 제각각이다. 한때 은둔 당사자이자, 지금은 은둔 청년을 위한 사회적기업 ‘안무서운회사’를 운영하는 유승규 대표는 말한다. 은둔의 이유는 취업이나 대인관계 따위로 많이 잡히지만, 실제로는 ‘세상에 존재하는 방의 수만큼 고립의 이유는 다양하다’고.
잔잔하게 올라가고 있는 조회수(2024년 3월8일 기준 약 40만)보다 더 고무적인 건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물론 용기를 내서 인터뷰에 임한 청년들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많다. ‘게으르다’ ‘눈이 높아서 그렇다’와 같은, 악순환으로 내모는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상단을 차지하는 건 같은 처지에 놓였던 당사자들, 그리고 이들을 진실한 마음으로 위로하는 따뜻한 시선이다.
“학업이 맞지 않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데 본인이 뭘 잘할 수 있고 뭘 하고 싶은지 찾을 기회가 너무 적다(@user-zq1om3te8s)” “행복은 진짜 가까이 있음. 삶은 당신의 의미 부여로 천국이 되기도 지옥이 되기도 함. 우리는 부드러운 바람 한 줌으로도 즐거워질 수 있는데 (사회는) 그걸 자꾸 잊게 만드는 거(@hohomon).” 이런 댓글을 보며 다시 깨닫는다. 기사나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는 건 언제나 성숙한 시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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