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5일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가 홍콩ELS 사태에 대한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2월15일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가 홍콩ELS 사태에 대한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3월11일, 금융감독원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에 관련한 대책을 발표했다. ‘홍콩 H지수 ELS’는 2024년 3월 현재 대규모 손실이 이미 발생했거나,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융상품이다. 지난 1~2월에 손실이 확정된 금액만 1조2000억원 규모다. 이번 발표에서 금감원은 금융사와 투자자 사이 분쟁조정 기준안을 내놓았다. 올해 1월8일부터 두 달간 실시한 은행·증권사 조사에 따른 결과다. 이 기준안에 따라 금융사들은 자체적으로 투자자들에 대한 배상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홍콩 H지수 ELS(이하 홍콩ELS)는 오랜 기간 인기를 누려온 파생상품이다. 2003년 처음으로 판매돼 20년 넘게 거래됐고, 지난해 말 기준 판매잔액이 18조80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대중적 인기에 비해 금융상품의 구조 자체는 상당히 복잡하다. 상당한 금융 지식을 쌓지 않은 사람이라면 상품의 손익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이 간극에서 홍콩ELS 사태가 발생했다. 상당수 투자자들이 홍콩ELS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투자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 등 판매사들은 투자자들에게 홍콩ELS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한 충분한 노력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결국 손실이 발생하자 은행은 투자자의 책임을, 투자자는 은행의 책임을 따지며 상대방에게 과오를 묻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홍콩ELS의 복잡한 구조는 일차적으로 ‘파생상품’이라는 성격에서 기인한다. 파생상품은 주식·채권 등 기초자산을 갖는다. 해당 기초자산의 가격변동에 따라 상품가격이 ‘파생’돼 결정되기 때문에 파생상품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가령 A라는 회사의 주식 가격(주가)은 해당 기업의 여건에 따라 변동한다. A사가 성장하면 주가는 상승하고, A사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주가도 떨어진다. 반면 A사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삼는 B라는 파생상품의 가격은 좀 다르게 움직인다. 일정한 규칙을 정해두고, 이 규칙을 A사 주식의 가격변동에 적용해 B의 가격이 결정된다. 기초자산과 더불어 가격결정 규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파생상품은 전통적인 금융상품에 비해 이해하기 까다롭다고 여겨진다.

‘기초자산’과 ‘가격결정 규칙’이라는 두 기준을 가지고 홍콩ELS를 이해해보자. 먼저 홍콩ELS는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다. 홍콩 H지수는 중국 본토와 홍콩에 동시 상장된 50개 우량기업 주가 변동을 종합적으로 나타낸 지수다. ELS는 주가지수 2~3가지를 기초자산으로 삼는데, 기초자산 중 홍콩 H지수가 포함된 상품을 통칭해 홍콩 H지수 ELS라고 부른다.

다음으로 가격결정 규칙을 살펴보자. 판매사는 투자자에게 일정한 ‘기준선’을 제시한다. 만기 시점의 홍콩 H지수가 이 기준선 이상이라면 투자자는 약정한 수익과 원금을 판매사로부터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홍콩 H지수가 기준선 이하로 떨어진 상태라면 원금 손실이 투자자에게 발생한다. 어떻게 보면 미래의 홍콩 H지수가 ‘기준선 이상이냐, 이하냐’를 두고 투자자와 판매사 사이 내기가 벌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기준선’ 둘러싼 투자자와 금융사의 내기

ELS의 만기는 통상 3년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반드시 3년 동안 대기할 필요는 없다. 3년을 채우기 전에 원금과 약정 수익을 회수하는 조기상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투자자 처지에선 조기상환으로 원금과 수익을 빨리 돌려받고 이를 재투자하면 수익률을 더 높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조기상환을 선호한다.

조기상환에 적용되는 규칙은 만기상환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일단 조기상환 시점의 홍콩 H지수가 기준선 이상이면 원금과 수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만기상환과 유사하다. 그러나 조기상환 시점의 기준선은 만기 시점의 기준선보다 높게 설정돼 있다. 투자자가 투자금 및 수익을 당초 약정된 만기보다 빨리 돌려받는 혜택을 누리는 대가로 기준선 상향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만기상환 기준선이 최초 가격(매입 시점의 홍콩 H지수)의 70%라면, 6개월 차 조기상환 기준선은 95%다. 가입 6개월 후 H지수가 ELS 매입 시점에 비해 95% 이상이라면 조기상환을 할 수 있다. 만약 95% 이하로 떨어진다면, 다음 상환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수익이 나는 경우와 손실이 나는 경우를 나눠보자. 〈그림 1〉부터 〈그림 3〉은 홍콩ELS 투자자가 겪을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나눠놓은 그래프다. 이 ELS는 3년 만기이지만 6개월마다 상환이 가능하다고 가정하자. 6개월마다 한 번씩 주어지는 상환 기준선은 95%에서 시작해 5%씩 낮아진다. 12개월(1년) 후는 90%, 18개월 뒤는 85%, 그리고 만기인 36개월(3년)째는 70%다. 여기서 검은색 선은 홍콩 H지수 변동을, 노란색 선은 각 시기에 따른 상환 조건을 보여준다.

먼저 〈그림 1〉의 경우다. 이 투자자는 6개월 차와 1년 차에 조기상환을 하지 못했다. 기준이 각각 95%, 90%인데 해당 시점 홍콩 H지수가 기준선을 하회했기 때문이다. 가입하고 1년6개월 후에야 이 가입자는 조기상환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홍콩 H지수가 기준인 85%를 넘긴 덕분이다. 따라서 투자자는 이때 원금과 수익을 받고 홍콩ELS를 조기상환한다.

〈그림 2〉의 경우는 다르다. 6개월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조기상환 기회를 한 번도 잡지 못했다. 약 1년8개월 차에 홍콩 H지수가 한 차례 반등하긴 했지만, 기준 시점인 24개월(2년) 차엔 다시 기준선 아래로 내려와 조기상환이 불가능해졌다. 그럼에도 이 투자자는 다행히 만기 때 원금과 수익을 지급받았다. 만기 시점인 3년 차에 홍콩 H지수가 기준선 위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비록 조기상환엔 실패했지만 약정한 수익과 원금을 전부 돌려받을 수 있다.

〈그림 3〉의 경우엔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6개월마다 찾아오는 조기상환에 모두 실패했으며, 만기 시에도 홍콩 H지수가 기준선을 넘기지 못했다. 이때 투자자가 입는 손실은 기초자산의 최종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그림 3〉과 같이 만기 시점 홍콩 H지수가 계약 시점 대비 65%를 기록하고 있다면, 원금의 65%만 돌려받을 수 있다. 지수 하락은 한계가 없기 때문에 100%까지 원금 손실이 가능하다.

현재 문제되고 있는 홍콩ELS가 판매됐던 시기는 2021년이다. 한 해 동안 홍콩ELS가 19조원어치 발행됐다. 유독 2021년에만 많이 발행됐던 것은 아니다. 2년 전인 2019년에 발행된 홍콩ELS는 50조원 규모에 달한다. 진짜 문제는 2021년 2월께를 기점으로 홍콩 H지수가 급격히 하락했다는 점이다. 2021년 1월 약 1만1300포인트였던 홍콩 H지수는 그해 7월 약 9800포인트로 떨어졌다. 고작 6개월 만에 주가지수가 13%가량 하락한 것이다. 결국 상당수 홍콩ELS 투자자들은 조기상환에 실패했다. 홍콩 H지수가 기준선 이상으로 회복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홍콩 H지수는 이후에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일정 주기마다 돌아오는 홍콩ELS 조기상환 시점의 기준선을 거의 넘지 못했다. 결국 2024년이 도래하자 2021년에 판매된 홍콩ELS의 3년 만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홍콩ELS 손실이 현실화한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홍콩 H지수가 2월 말 수준(5678포인트)으로 유지될 경우 남은 2024년 한 해 동안 예상되는 투자자들의 추가 손실은 모두 4조6000억원에 달한다.

손실이 가시화되자, 투자자들은 은행들이 ‘불완전판매’를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은행이 홍콩ELS를 판매할 때 상품의 구조와 투자 위험성 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은행 직원들은 금융상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투자자를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안전하다”라는 말로 안심시켰다. 심지어 은행 직원이 관련 서류를 조작하는 등 불법을 저질렀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들의 주장처럼 은행이 불완전 판매를 자행했다면 투자자들은 손실에 대한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지난 2월5일 홍콩ELS 피해자 모임이 “관련 법을 준수하지 않아 발생한 손실에 대한 배상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한 이유다.

금감원 조사 결과, 홍콩ELS 판매 과정에서 실제로 불완전판매가 있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일례로 한 은행은 의도적으로 원금 손실 가능성을 축소했다. 증권사가 발행한 ELS 증권신고서에는 지난 20년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원금 손실 비율이 7.22%라고 설명돼 있었지만, 은행이 발행한 투자 권유 자료에는 0%로 기재돼 있었다. 은행이 임의적으로 지난 10년간의 데이터만을 활용해 ELS 손실이 발생했던 2007~2008년 데이터를 제외한 결과였다. 또 다른 경우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상 설명서 맨 앞에 배치해야 하는 ‘위험등급 유의사항’을 누락하기도 했다. 예컨대 ‘매우 높은 위험등급’으로 기입되어야 할 사항을 의도적으로 누락해 투자자가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반면 투자자들에게 불리한 정황도 발견됐다. 홍콩ELS 투자자들은 대부분 과거에 ELS에 투자한 경험이 있었다. 현재 보유한 상품이 ELS 첫 투자인 사람은 6.7%에 불과했다. 특히 조기상환이 유리한 ELS 특성상 대부분의 투자자는 매우 많은 투자 횟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반복적으로 ELS에 가입한 사람이라면, 투자자 책임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ELS에 대한 경험이 많다는 것은 곧 ELS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3월11일 발표한 분쟁조정기준에서 금감원은 금융기관의 책임을 높게 보지 않았다. 불완전판매가 인정되더라도, 금융기관별로 적용되는 ‘기본 배상 비율’과 ‘공통 가중 비율’의 합은 최대 손실의 50%로 한정됐다.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등 과거 유사 사례에 비해 비교적 낮은 수준이다.

금감원은 크게 두 가지로 그 배경을 설명했다. 우선 ELS는 20여 년 동안 팔린 정형화된 공모 상품이다. 오랜 기간 대중을 상대로 판매된 상품인 만큼, 주의를 기울였다면 홍콩ELS의 구조와 위험성에 대해 투자자가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은행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더라도 홍콩ELS의 구조를 이해할 기회가 있었다는 의미다.

또한 DLF 사태 이후 제정된 금소법에 따라 판매사들이 최소한 형식적 절차는 대체로 이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소법을 명시적으로 어긴 불완전판매 사례는 일부에 한정됐다. 판매사가 금소법의 취지를 어기고 고객 보호를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상할 필요는 있지만, 과거에 비해 기본 배상 수준을 낮출 수밖에 없다고 금감원은 판단했다.

물론 기본 배상 비율을 넘어선 배상도 가능하다. 개인별 사례에 따라 추가적으로 배상 비율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금융 취약계층에 해당하거나, 은행을 방문한 목적이 원금 보장상품 가입이었다면 배상 비율을 더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투자자에게 불리한 정황이 발견된다면 배상 비율을 낮출 수도 있다. 과거에 ELS 투자 경험이 다수 있었거나, 투자액이 크다면 배상 비율이 차감된다. 금감원은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적용받을 배상 비율이 20%에서 60% 사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피해자 의견은 한 차례도 안 들었다”

금감원의 분쟁 조정안에 대한 은행과 투자자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은행들은 비교적 신중한 모양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검토 중이라는 말밖에 드릴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어차피 금융회사가 당국 입장을 거스르긴 어렵다. 다만 분쟁 조정안에 정성적 평가 요소도 있기 때문에, 모든 고객에 대해서 배상안을 내놓는 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홍콩ELS 투자자들은 분쟁 조정안이 노골적인 은행 편들기라고 비판한다. 길성주 홍콩ELS 피해자모임 위원장은 “은행의 불완전판매를 인정하면서도 기본 배상 비율을 지나치게 낮게 설정했다. 조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피해자들의 의견은 한 차례도 듣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은행의 설명에 속아 홍콩ELS에 가입했을 뿐이다. 기본 배상 비율이 60~70%는 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3월11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홍콩ELS 관련 분쟁조정 기준안 발표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3월11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홍콩ELS 관련 분쟁조정 기준안 발표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감원은 금융사의 자율배상을 고려해 추후 제재 수준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마련한 기준을 준용해 ‘자율적으로’ 배상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노골적인 압박이다. 그러나 홍콩ELS 사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은 금감원 등 금융 당국도 마찬가지다. DLF 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2019년 11월 금융 당국은 ELS를 포함한 고난도 금융상품을 은행에서 판매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은행은 안전한 상품을 취급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란 이유에서다. 그러나 한 달 뒤 금융 당국은 ELS를 포함한 일부 파생상품을 은행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대책을 수정했다. 수익 악화를 우려한 은행의 건의를 수용한 결과였다. 대신 금융 당국은 은행에 대한 감시·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 당국은 당시 약속한 감시·감독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다. ‘고위험상품 투자자 리스크 점검회의’를 정례화하겠다고 밝혔지만 문제가 된 2021년에는 해당 회의가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시적으로 암행 점검을 나서 파생상품 판매 실태를 파악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2021년에는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금감원은 분쟁조정 기준안을 발표하며 금융사들이 “H지수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시기에 오히려 영업목표를 상향하는 등 금융소비자 보호에는 소홀”했다고 비판했지만, 같은 시기에 금융소비자 보호에 소홀했던 것은 금융 당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융 당국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결국 이복현 금감원장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다. 3월13일 이 원장은 “홍콩 H지수 연계 ELS 등 고난도 상품 판매에 관련해 당국이 보다 면밀히 감독하지 못했다. 반성에 기초해 앞으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제도 개선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반면 투자자들의 반발에 대해서는 “이것을 수용하지 못하면 법원에 가서 다툴 텐데 금감원은 법원에 가지 않아도 사법적 결론에 준하게” 기준안을 마련했다고 일축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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