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9일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침상에 누운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2월19일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침상에 누운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환자와 보호자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3월11일 빅5 대학병원 중 한 곳에서 만난 정선화씨(64)는 4기 암환자다. 2011년 수술을 받았던 암이 2021년 재발했다. 유방에서 시작된 종양이 몸 여기저기로 퍼졌다. 지금은 자궁, 골반, 간에도 암 덩어리가 있다. 이 병원으로 외래 진료를 다니며 몇 년째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토요일이던 3월9일 새벽, 정씨는 급하게 응급실을 찾았다. 웬만한 통증에는 이골이 났고, 오랜 투병 생활을 통해 응급실에 가도 고생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만 “까무러치게 아픈 복통”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새벽 5시에 도착해 의사를 만나기까지 4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직원에게 물어봐도 대기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전공의가 출근하지 않아 당직 의사가 두 명밖에 없는데 사고를 당한 심정지 환자에게 다들 붙어 있는 상황이라는 설명만 돌아올 뿐이었다. “내 옆에 죽어 자빠지는 여자 환자가 한 명 있었다. 그 여자는 너무 아프니까 다른 병원으로 가자고 하고, 남편은 거기 가도 이렇지 않으라는 법이 어디 있냐고 막 싸우더라. 속으로 ‘전쟁이 따로 없다. 이런 시국에는 안 죽을 사람도 죽겠구나’ 그랬다.”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진찰을 받고 검사를 했는데, CT 영상을 본 의사가 응급실로 뛰어 내려왔다. 알고 보니 신장에 있는 암이 요관을 눌러서 요관이 터진 상태였다. 복통이 극심한 걸 보면 며칠 전에 터졌을 거라며 균이 있는 소변이 복부로 들어가면 패혈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정씨는 급하게 소변을 바깥으로 빼내는 시술을 받고, 경과를 보기 위해 입원을 한 지 사흘째였다. “그 의사 선생님이 빨리 알아차려서 불행 중 감사한 일이었다. 병원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또 이번처럼 위급한 일이 벌어질까 봐 그게 제일 걱정스럽다”

교수들까지 이탈하면 정말 심각해져

의대 증원에 반발해 2월20일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뒤 한 달 가까이 병원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2월19일부터 3월11일까지 신고된 환자 피해 건수는 472건이다. 수술 지연 329건, 진료 취소 79건, 진료 거절 43건 등이었다. 병원마다 차이가 있지만, 전공의들이 수련을 받던 대학병원의 입원·수술 건수는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3월14일 기준, 전반적인 의료 이용은 줄어들었지만 중증·응급 환자 비상진료체계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정부는 발표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언론에 의료 현장의 혼란이 과장되게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근심을 감추지 못했다. “3월 둘째 주까지 파악한 바로 중증 환자들에게 아주 치명적인 피해가 가는 케이스가 아직까지 생기지는 않고 있는 것 같다. 병원에 남은 교수, 전임의(펠로), PA 간호사들이 중환자에 한해서는 전공의 자리를 어떻게든 메우는 걸로 보인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되는 데다, 요즘 얘기가 나오는 것처럼 교수들까지 사직서를 내고 이탈한다면 그때는 정말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2월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의대 증원 반대 궐기대회’의 한 참석자.ⓒ시사IN 조남진
2월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의대 증원 반대 궐기대회’의 한 참석자.ⓒ시사IN 조남진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병동에서 스태프로 근무해 사정을 잘 아는 한 의료인은 “지금도 아슬아슬하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급성 림프 모구성 백혈병’을 예로 들었다. 소아 혈액 종양 가운데 하나로, 이 병이 생긴 어린이는 2~3년간 정해진 일정에 따라 항암 치료를 마치면 5년 생존율이 80% 이상이다.

“대략 일주일에 2~3회 항암 치료를 받는다. 교수가 오더(지시)를 내고 전임의와 전공의들이 같이 처치를 했는데 지금은 병원에 남은 소수의 전임의들이 PA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막고 있다. 교수들도 전공의 없이 진료를 하다 보니 전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 지금이야 단기적으로 바짝 소화하지만 항암 일정이 점점 더 밀릴 가능성이 높다.”

오미애씨(45)의 어머니는 뇌종양으로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하곤란(삼킴 장애)이 생겨 재활의학과와 협진해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진료를 잡지 못하고 있다.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말만 있었을 뿐이다. 우리 어머니도 증상이 가볍진 않은데, 전혀 씹지를 못해서 콧줄 다는 분들부터 진료 차례가 오는 거라 많이 밀리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항암 치료는 예정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오씨 어머니에게 항암은 마지막 남은 치료법이다. 뇌종양의 위치가 소뇌 사이라 개두술이 불가하다. 수술 시에는 식물인간이 되거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 앞선 방사선 치료는 실패해 경과가 더 악화되었다. 오씨는 “중환자 보호자로서 요즘 너무나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교수들까지 파업(사직서 제출)을 하면 항암제 먹는 사람들은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뇌종양 환자들은 갑자기 경련이나 의식불명에 빠지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빠르게 응급실에 가서 처치를 하고 오더를 받지 못하면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의사들도 그렇지만 정부에 대한 원망이 앞선다. 오씨는 “환자 보호자로서 이것저것 찾아보다 보면 의대 정원만 늘린다고 소아과처럼 힘든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정책에 우선순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밀어붙이니 (전공의들도) 죽자고 달려들 수밖에 없지 않나. 답이 안 보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의료 공백이 실질적 위협으로 닥쳐온 사례도 생기고 있다. 3월12일, 서울 소재 주요 대학병원에서 만난 김규호씨(63)는 여기저기로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혈액암 환자인 그는 3년 전 골수 이식을 한 뒤 주기적으로 수혈을 받아야 한다. 적혈구는 한 달에 한 번, 혈소판은 열흘에 한 번 수혈을 받는다. 이날까지는 수혈 예약이 되었지만 열흘 뒤 돌아오는 혈소판 수혈은 전공의가 빠져서 더 이상 예약을 잡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모르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죽든지, 살든지 환자가 알아서 하라’는 얘기처럼 들렸다.”

혈소판 수치가 2만 이하로 내려가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날 검사에서 혈소판 수치는 2만5000이었는데 며칠 전부터 온몸에 멍이 생겨났다. 혈소판이 부족하면 안에서 출혈이 된다. 살짝만 부딪혀도 시퍼렇게 멍이 든다. 가장 최악은 뇌 안에서 출혈이 생기는 뇌출혈이다.

김씨는 의사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의학도는 아니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뭔지는 안다. 의대에서 당장 밥그릇이 줄어드는 경우는 환자를 버리고 병원을 나가서 시위를 하라고 교육받았는지 묻고 싶다. 환자 없는 의사가 어디 있나. 환자를 내팽개치는 건 결국 본인들을 내팽개치는 것과 똑같다.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 것이다.”

‘투병 의지’마저 꺾이면 어쩌나

상대적으로 중증도는 떨어지지만 수술·시술·입원 등이 미뤄진 환자들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날짜에 맞춰 회사에 병가를 내고, 간병해줄 가족·친지도 휴가를 잡았는데 일정이 모두 뒤틀려버리기 때문이다.

김유미씨(40)는 8개월 동안 기다린 시술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김씨는 ‘발작성 상심실성 빈맥(PSVT)'으로 지난해부터 고생하고 있다. 심장에 문제가 생겨 조금만 움직여도 심하게 숨이 차고 발작적으로 심박수가 치솟는 증상이다. 지난해 7월 빅5 병원 중 한 곳에서 진료를 받았다. ‘전극도자 절제술’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대기 환자가 밀려 있어서 올해 3월 중순에야 예약이 잡혔다. 그러나 예정일을 4일 앞두고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시술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다.

2월19일 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가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의료 현장의 대응을 점검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2월19일 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가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의료 현장의 대응을 점검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숨이 너무 차서 계단 2층도 올라가기 어려운 상태라 시술할 날만 기다렸다. 이 사태가 언제 끝난다는 보장이 없으니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 하는 건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 환자 입장에서는 너무 큰 스트레스다.” 현재 일을 쉬고 있는 김씨는 시술을 마친 뒤 직장을 새로 구할 생각이었지만 그 계획도 모두 어그러져버렸다. “나라를 욕해야 할지, 의사를 욕해야 할지. 누구를 탓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픈 사람만 불쌍한 것 같다.”

취재 도중 만난 한 환자는 “하여튼 아프면 지옥”이라고 말했다. 환자들은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병든 몸을 다독이며, 힘겨운 치료 과정을 견딘다. 이런 투병 의지가 꺾이는 것이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말했다. “중증 환자는 치료 못지않게 투병 의지가 중요하다.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는 굉장히 힘들다. 그런데 지금처럼 일정이 불안정해지고 막 뒤바뀌어버리면 당사자나 가족들의 의지가 그 순간 뚝 꺾여버린다.” 국민의 생명을 가장 앞서 보호해야 할 두 집단의 대치가 길어지는 사이, 환자들의 한숨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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