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의 ‘밤양갱’ 뮤직비디오 한 장면. ⓒ밤양갱 뮤직비디오 갈무리
비비의 ‘밤양갱’ 뮤직비디오 한 장면. ⓒ밤양갱 뮤직비디오 갈무리

장기하가 만들고 비비가 부른 ‘밤양갱’이 이렇게까지 히트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그래서인지 여러 가지 분석과 설명이 곁들여진다. 일단 왈츠곡에 쌉싸름한 가사가 충돌하며 매력을 배가시킨다는 풀이가 있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음악이 아닌 데다가 비비가 불렀다는 사실에 더 관심이 쏠린다. 아닌 게 아니라 비비는 ‘어둠의 아이유’로 불릴 만큼 음악적 역량이 뛰어난 ‘쎈캐(센 캐릭터)’로도 유명하다. ‘나쁜 X’ ‘위켄드(Weekend)’ ‘슈가 러시(Sugar Rush)’처럼 거침없이 섹시하고 ‘쎈’ 가사의 노래를 부르던 비비가 ‘밤양갱’처럼 단순하고 감성적인 노래를 부른다는 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얘기다.

유튜브나 음원 서비스의 댓글도 대부분 이런 분위기다. “청순한 이미지로 시작했다가 쎈캐가 되는 경우는 많지만, 비비처럼 쎈캐였다가 청순해지는 건 드물다”라는 반응부터 “실력에 비해 저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침내 비비가 1위를 찍어서 너무 감격스럽다” “4세대 케이팝 덕후인데 이런 노래가 너무 그리웠다” “요즘 이런 노래가 드물어서 더 좋다” 같은 반응이 많다.

요즘엔 신곡이 얼마나 많이 나올까? 다시 말해 매일 신곡 몇 곡이 업로드될까? 엔터테인먼트 시장 모니터를 전문으로 하는 루미네이트(Luminate)는 매일 신곡 12만 개가 업로드된다고 밝혔다. 2023년 5월 기준 데이터이므로 지금은 더 늘어났을 게 분명하다. 한국 통계는 없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매일 1000곡 이상의 규모라고 짐작한다. 감각적으로도 우리 모두 매일 새로운 무언가가 등장하는 시대라는 걸 알고 있다. 지금은 모든 영역이 초과생산, 공급과잉인 시대다.

미국 철학자 매슈 크로퍼드는 “주의력은 오직 인간이 가진 자원이다”라고 말했다. 이 ‘주의력’이란 개념을 경제학으로 확장한 것이 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이고, ‘주의력 경제’란 용어가 대중화된 것은 2006년, 존 벡과 토머스 H. 대븐포트가 쓴 〈관심의 경제학〉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이야말로 관심의 경제가 지배하는 영역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선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밤양갱’이 처음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히트곡과 다르고, 비비의 이미지와 다르고, 장기하와 비비의 만남도 남달랐다. 차별화야말로 콘텐츠의 가장 큰 특징이고, 바로 이러한 특징 때문에 콘텐츠 시장에서 성공모델에 대한 예측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밤양갱’이 히트한 데에는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 바로 인공지능 음원의 유행이다.

유튜브에서 ‘밤양갱’을 검색하면 자동 추천으로 박명수, 잔나비, 오혁, 이수현 버전이 뜬다. 이들은 모두 인공지능 딥보이스 기능으로 만든 커버 버전이다. 이 밖에 안예은, 백예린, 성시경, 10센치, 장기하 버전이 있고, 아이유, 로제, 미연, 온유, 태연, 태양, 디오, 지드래곤, 이효리 버전도 있다. 양희은, 김광석, 송가인, 심지어 프레디 머큐리 버전까지 존재한다.

인공지능 버전은 아니지만, 황정민 버전도 있다. 사실 이 버전이 가장 유명하다. 유튜브 ‘밤양갱’ 공식 뮤직비디오의 댓글 중 “황정민 버전 듣고 오리지널 들으러 왔습니다”라는 댓글의 추천 수도 매우 높다. 배우 황정민이 출연한 영화 예고편의 대사를 짜깁기해서 만든 ‘밤양갱-황정민 버전’은 인공지능 커버 버전은 아니지만, 밈으로 유행 중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대부분의 미디어는 저작권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현상은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바로 하이 테크놀로지와 사용자 참여형 콘텐츠(UGC:User Generated Contents)의 관계다.

유튜브가 대중화된 2005년 무렵, 유튜브에서는 ‘매시업(mash-up)’이란 콘텐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비슷한 여러 음악을 편집해서 하나로 만드는 콘텐츠다. 주로 뮤직비디오를 편집한 이 매시업은 당연히 저작권 침해 사례였다. 하지만 매시업 콘텐츠가 유행하면서 원곡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는 경우도 많았다. 케이팝의 글로벌 히트가 가시화된 2018년 무렵에도 이런 매시업은 크게 유행했다. 이런 게 가능했던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유튜브가 주로 뮤직비디오를 유통하고 소비하는 채널이 되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인터넷 동영상 편집 툴이 저렴해졌다는 점이다.

황정민 버전(왼쪽) 등 ‘밤양갱’ 원곡을 기반으로 만든 사용자 참여형 콘텐츠들(오른쪽). 인공지능 딥보이스 기능으로 만든 것이 많다. ⓒ밤양갱-유튜브 숏폼 갈무리
황정민 버전(왼쪽) 등 ‘밤양갱’ 원곡을 기반으로 만든 사용자 참여형 콘텐츠들(오른쪽). 인공지능 딥보이스 기능으로 만든 것이 많다. ⓒ밤양갱-유튜브 숏폼 갈무리

인공지능 커버 버전의 유행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은 2023년부터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텍스트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서비스가 대거 등장하면서 ‘텍스트 투 에브리싱’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몇 개 문장을 쓰는 것만으로도 고품질의 이미지, 비디오, 음원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사람들은 구글 같은 거대 기업의 도구뿐 아니라 스타트업, 심지어 개인이 제작한 툴을 활용해 ‘밤양갱’의 인공지능 커버곡을 만든다. 생각보다 인공지능 음악 제작이 보편화되었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아직도 더 다양한 음악을 원한다

중요한 건 이들의 심리다. 그들은 ‘저작권을 침해해서 원작자에게 피해를 주겠어!’라는 악의를 가진 게 아니다. 단지 재미있어서, 혹은 듣고 싶어서 만든다. 마침 편리한 방법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결과물도 나쁘지 않다. 다른 사람들도 좋아한다. 매시업처럼 인공지능 음악도 이렇게 유행이 된다.

‘밤양갱’의 황정민, 박명수 버전은 재미있어서 만들었을 것이다. 혁오나 양희은 버전은 가수의 분위기와 어울려서 만들었을 것이다. 로제와 태양, 지드래곤 버전은 그 가수의 목소리로 ‘밤양갱’을 듣고 싶어서 만들었을 것이다. 각자 다른 이유로, 그러나 비슷한 방향으로 인공지능 커버곡이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더 많은 음악을, 더 다양한 음악을 원한다. 하루에 12만 곡 넘는 노래가 쏟아져나오는 시절인데 말이다.

핵심은 ‘참여’에 있다. 인터넷 환경에서 콘텐츠 소비자는 레거시 미디어 시절처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위치에 놓이지 않는다. 기사를 공유하고 댓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참여’, 다시 말해 ‘재생산’에 기여하게 된다. 이 욕망은 예전에는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심지어 라디오나 TV가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참여하고 재생산하면서 유행을 확산시켰다. 얼마 전만 해도 히트곡과 유튜브 커버곡의 양은 비례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이러한 특이점의 시대에 실제 아티스트는 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어떻게 관심을 끌고, 그걸 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앞으로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다.

기자명 차우진 (음악산업 평론가․‘TMI.FM’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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