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3일 프랑스 파리에서 트랙터를 탄 농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EPA
2월23일 프랑스 파리에서 트랙터를 탄 농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EPA

프랑스 농민 시위의 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프랑스 농민들은 지난 1월부터 전국 주요 도로를 트랙터로 점령하는 등 시위를 벌여왔다. 가브리엘 아탈 신임 총리는 농민 대표 단체인 프랑스 전국농민연맹(FNSEA), 청년농부단체, 농촌연합과 10시간 넘게 협상을 벌였다. 협상 이후 2월1일 여러 대책안을 내놓았다.

식량주권법 도입, 축산 농가에 1억5000만 유로(약 2167억원) 지원, 국산 농산물 표기 감독, 에코피토(Ecophyto, 살충제 사용 축소) 계획 중단, 농업 상속 면세 기준 완화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런 정책을 발표한 이후 과격했던 시위 양상이 약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2월2일 전국농민연맹의 아르노 루소 대표는 “정부가 법안 제출 등 몇 가지 대책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라면서 도로 차단 시위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2월3일 좌파 성향 단체 ‘농민동맹’의 시위 중단을 마지막으로 농민 시위는 마무리되어 가는 듯했다. 하지만 3월 초 일부 농민 시위가 재개되었다.

프랑스 농민의 열악한 상황은 고질적 문제였다. 2월3일 라디오 프랑스앵포의 보도에 따르면, 2022년의 경우 하루 평균 농민 1.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해 프랑스통계청(INSEE)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9년을 기준으로 농민 중 26%가 빈곤선 이하의 소득(월 1102유로, 약 159만원)을 얻고 있다. 또한 프랑스 농업부 발표에 따르면, 한 주에 농장 약 192개가 폐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정책 중 일부는 이미 이전 정부에서 내놓은 것이었다. 에코피토 계획이 대표적이다. 2009년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 때 이미 이 정책을 채택했다. 농민은 살충제 대체재를 찾지 못해 농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반대했다. 반면 환경단체는 농민과 환경을 생각해 살충제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둘 사이에서 조율점을 찾지 못했다.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 개정을 거쳐 마크롱 정부는 2030년까지 살충제 사용을 50%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6월29일 파리 행정법원은 “살충제와 같이 생물다양성을 침해할 수 있는 물질로 인해 해양과 토양이 오염될 위험이 존재한다. 정부가 환경피해를 복구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환경보호를 위한 살충제 금지) 의무를 다해야 한다”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6월30일까지 새 정책을 발표해야 했다.

지난 2월1일 아탈 총리가 “새로운 측정 지표를 만들기 위해 에코피토 계획을 잠시 중단한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농업장관 마르크 페스노는 “에코피토 계획을 재정립하고 간소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월11일 아르노 루소 전국농민연맹 대표는 “독한 살충제는 적게 사용하고, 그보다 효과가 적지만 약한 살충제는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동안의 측정 지표는 이런 위험도와 상관없이 사용한 양만 재는 수준이었다”라고 비판했다. 2월21일 아탈 총리는 살충제의 위험도와 사용량을 모두 고려하는 새 지표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지표로 계산하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살충제 사용률이 33% 감소한 것으로 수치가 조정된다.

주춤하던 농민 시위는 2월24일부터 3월3일까지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최대 박람회인 농업박람회를 앞두고 재점화됐다. 2월20일 아르노 루소 전국농민연맹 대표는 방송 인터뷰에서 “농업계는 아주 구체적인 결단을 원한다”라고 말했다. 실질적인 소득 증가를 원하는 농민들의 요구에 정부의 정책이 아직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자 2월21일 아탈 총리는 농산물 납품가 결정에 농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농가소득을 보장하는 ‘에갈림법(Lois EGalim, 프랑스 식량법)’ 개정을 언급했다.

이 법은 2018년부터 시행되었다. 식품기업·유통업체와 거래할 때 농민이 원가를 낮게 책정해야 했던 불공정성을 개선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2021년과 2023년, 두 차례 법이 개정되었으나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에 정부는 법안 시행 여부 감독을 더 늘리고 거래계약서도 관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후 올봄까지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2월1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의회에 참석해 ‘유럽 에갈림법’을 제안하고, 2월14일에는 ‘농촌연합’ 관계자들을 엘리제궁에 초대했다. 이 자리에서 농민 긴급자금 지원, 생산 규제 완화 및 수입 상품 규제 등을 약속했다.

2월24일 마크롱 대통령은 “당장 다음 주부터 은행을 통해 농민 긴급자금을 지원하고, 최저가격 보장제를 시행하겠다”라고 말했다. 생산비 지표에 따라 품목별로 하한가를 정하고, 식품기업·유통업체가 그 하한가 아래로는 농산물을 구매할 수 없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2월24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에서 열린 농업박람회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EPA
2월24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에서 열린 농업박람회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EPA

농민 시위 ‘지지한다’는 여론 91%

마크롱 대통령이 제안한 최저가격 보장제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프랑스 공산당(PCF)의 이앙 브로사 대표는 “2011년 공산당 의원인 앙드레 샤세뉴가 제출한 법안이 13년 만에 다시 협상대에 올랐다. 그동안 잃어버린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가!”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공화당(LR)의 셀린 이마르 의원은 “최저가격 보장제라는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장기적으로 시행될 실제 정책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농업계에서도 찬성 일색만은 아니다. 전국농민연맹(FNSEA)의 제롬 데스페 부대표는 “최저가격을 보장하는 게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최저가격 보장제에서 정한 하한가로만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농민소득을 제한하는 상한가로 적용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유럽연합(EU)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국가로 꼽힌다. 하지만 농민들의 소득수준은 높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들의 분노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3월1일 파리 샹젤리제에서 ‘농촌연합’이 기습적으로 트랙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농민단체 대표들은 정치적으로 분명하게 마무리되기 전까지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농민들의 움직임에 대해 시민들은 호의적인 편이다. 2월21일 일간지 〈르피가로〉에 실린 여론조사에 따르면, 농민 시위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91%에 달했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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