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의 포스터. 인물들의 배치가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쇼박스 제공
영화 〈파묘〉의 포스터. 인물들의 배치가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쇼박스 제공

*영화 〈파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2월22일 개봉한 장재현 감독의 〈파묘〉가 3월4일까지 관객 600만명을 넘어, 천만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 공포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장화, 홍련〉(314만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장재현의 데뷔작 〈검은 사제들〉은 관객 544만명, 나홍진의 〈곡성〉은 687만명인데, 왜 〈장화, 홍련〉이 1위일까. 단순한 이유다. 영화 장르를 공포가 아닌 미스터리나 스릴러로 영화진흥위원회 등에 등록했기 때문이다. 공포영화에 거부감을 가진 한국 관객이 많다고 판단해, 언제부터인가 ‘호러’ 영화임을 부인하며 마케팅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렇듯 공포영화에 대한 편견이 심한 한국에서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2014)과 〈사바하〉(2019)에 이어 〈파묘〉까지, 일관되게 호러 혹은 오컬트 영화를 만들고 있다. 장 감독은 〈엑소시스트〉로 잘 알려진 가톨릭 구마 의식을 다룬 〈검은 사제들〉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기이한 신흥종교를 다룬 〈사바하〉는 239만명으로 흥행에서 약간 주춤했지만 ‘오컬트’를 넘어 신과 인간 그리고 구원의 문제를 진지하게 캐묻는 그의 작가적 치열함을 만끽할 수 있는 역작이었다.

상업적 성공을 원하는 데뷔작보다, 아무래도 두 번째 작품에서 작가적 욕심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대중성보다는 예술성이나 개인적 관심과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작품을 원한다. 소포모어 징크스가 많은 이유다. 그러니 세 번째 작품은 감독의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결정짓는 중요한 갈림길이 된다. 〈사바하〉가 아쉬운 흥행을 기록했으니 〈파묘〉는 오로지 상업성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하고 싶은 이야기와 생각을 더욱 정교하게 파고 들어갈 것인가. 〈파묘〉는 대중성에 더욱 무게를 두었지만, 영상의 테크닉과 메시지 측면에서도 빛나는 영화다.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 무당인 화림과 봉길은 가족들이 알 수 없는 유전병에 시달리는 재미교포의 조부 무덤을 이장하는 일을 맡게 된다. 하지만 묘지가 뭔가 수상하다.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 상덕이 이장을 거부하자, 화림은 대살굿을 하면 가능하다고 제안한다. 천신만고 끝에 관을 파내고 마무리를 했지만, 더 기괴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재미교포의 조부는 친일파의 핵심 인물이었고, 묫자리에는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장재현 감독은 ‘과거의 잘못된 무언가를 꺼내 소멸시키는 것’이 ‘파묘’라고 말한다.

〈파묘〉는 6막으로 구성돼 있다. 전반 3막은 무덤을 열고 이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주인공 4명의 캐릭터를 깔끔하게 설명하고, 풍수사와 무당의 ‘일’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대살굿은 전반부의 최고조다. 대살굿은 무덤에서 나오는 나쁜 기운을 일꾼이나 풍수사가 아니라 제물이 대신 받게 한다. 무덤 앞에 돼지 다섯 마리를 놓고, 격렬하게 춤추던 화림이 얼굴을 긋는 장면은 섬세하고 강렬하다. 기존 영화에 등장하는 굿과 차별되는 대살굿 장면만으로도 〈파묘〉는 극장에서 볼 가치가 있다.

돌발적 사건과 강렬한 장면

무사히 끝나야 할 이장은, 사소한 개인의 욕심 때문에 나타난 원령을 물리치며 겨우 해결된다. 일반적인 이야기라면 이렇게 끝난다. 간소한 3막 구성. 하지만 〈파묘〉는 3막으로 마무리된 이야기를 되돌리며, 후반 3막에서 예상하기 힘든 사건들을 이어붙인다. 동티가 난 일꾼이 있고, 이유를 알기 위해 상덕은 다시 묫자리로 돌아가 ‘일본 귀신’을 만난다. 단순한 원령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과 실체를 가진 악의 존재를 물리쳐야 한다. 4인은 다시 힘을 합친다.

〈파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후반의 3막. 전반부에 잘 구축된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후반부에는 돌발적이며 예측 밖의 사건이 휘몰아친다. 황당하다거나 억지로 이어붙였다고 받아들이면 부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는 명확하다. 전반은 전형적인 오컬트물이다. 귀신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있고, 이유를 알기 위해 전문가가 개입한다. 이것만 보여주고 싶었다면 〈파묘〉는 이장을 하고 원한을 풀어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일반적인 공포영화가 되었을 테다.

장재현 감독은 한국의 무속신앙과 풍수 그리고 일본의 괴담과 원령 등을 치밀하게 조사했고,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영화 속에 풀어놓는다. 〈파묘〉에 나오는 의식과 원령 등이 모두 사실과 일치할 필요는 없다. 호러는 현실 배경에서 비현실적·초자연적 사건을 펼치는 장르다. 인물이 존재하는 세계는 사실적이어야 하지만, 전개되는 사건들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으면 된다. 뱀파이어나 좀비 같은 호러 캐릭터의 근원과 특징이 영화와 소설마다 제각각인 것처럼, 현실이나 고전과 ‘사실’이 달라도 작품 자체가 만들어내는 합리성이 더욱 중요하다.

〈파묘〉의 사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라마틱하게 연결되며, 관객이 열광적으로 따라오게 만든다. 그리고 전반부에 깔아놓은 것들이, 후반부에서 하나씩 연결된다. 화림과 봉길, 상덕 등은 실제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같다. 영근의 ‘의열 장의사’는 ‘의열단’이 연상되고, 상덕이 들른 절의 이름은 ‘나라를 지키는’ 보국사다. 그들이 모는 자동차 번호도 독립운동의 숫자들과 관계가 있다. 구세대인 상덕과 영근은, 신세대인 화림·봉길과 힘을 합쳐 한반도의 허리를 끊어놓은 과거의 ‘잘못’을 구체적인 실체로 끄집어내고 싸워서 마침내 파괴해버린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파묘’다.

〈파묘〉의 후반부는 난삽하지 않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충돌하며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관객들은 극장에서 장면 하나만 보는 게 아니라 영화의 어떤 기운을 느낀’다고 장재현 감독은 말한다. “편집으로 여러 장면이 이어지고 교차할 때 느껴지는… 어떤 기운 혹은 에너지, 기세를 담고 싶었다.” 그의 말대로 〈파묘〉의 후반부는 원만하게 흐르는 익숙함보다 돌발적 사건과 강렬한 장면들이 화끈하게 치고받으며 관객을 자극한다. 관객을 사로잡는 에너지가 가득하다는 점에서 〈파묘〉는 성공을 거두었고, 열광적인 관객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

후반부의 이야기가 의도적인 엇박자라는 점을 빼면, 〈파묘〉는 모든 것이 정교하게 잘 짜인 작품이다. 주인공 네 명은 각각의 일과 세대를 대표하며, 다양한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농담처럼 ‘무의식 정서의 공포와 트라우마’를 화끈하게 박살내는 영화의 쾌감은 쉽게 얻어질 수 없다. 초반부터 잘 빌드업된 이야기가 후반에서 강렬하게 충돌하는 이미지로 마구 내달리며 관객으로 하여금 후련한 마음을 갖게 한다. 단순한 ‘반일’이 아니고, 여전히 우리를 억압하는 ‘과거’를 화끈하게 파괴하는 영화다.

기자명 김봉석 (영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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