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는 대국민 연설에서 “이 나라 정치인들은 돈으로 모든 것을 얻었다. 알라마저 두 손 다 들었다. 세계 은행 금고는 아프가니스탄 정치인 돈으로 가득 찼다”라고 말했다. 이 연설처럼 아프간 부패 정도는 역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다. 각국의 부패지수를 측정하는 독일 NGO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에 따르면 2008년 아프간의 부패지수 순위는 176위로 세계 최하위이다.

우선 이 연설을 한 현직 대통령 카르자이 가족도 부패 정국에 한몫 한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동생 ‘아마드 왈리’는 칸다하르 주 의회 의장이다. 그는 대통령의 동생이지만 아프간 부패의 상징이다. 아프간에서 ‘마약왕’ ‘작은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그는 칸다하르 주 안에서 마약을 불법 밀매한 혐의로 여러 번 기소됐지만 형의 비호 아래 그의 사업은 불황을 모른다. 2007년 파키스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카르자이가 국경의 마약 밀수를 막지 못하는 파키스탄의 무능력을 불평했는데, 파키스탄 대통령 무샤라프가 그에게 “당신 가족이나 단속하라”고 비꼬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난 8월 아프간을 방문한 미국의 홀브룩 아프간·파키스탄 특사(왼쪽 세 번째)는 카르자이 대통령에게 정부의 선거 부정과 부패 문제를 따졌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형 마무드 카르자이는 아프간 최대 은행인 카불은행의 이사이며 도요타자동차의 독점 수입·판매상이자, 석탄 탄광을 네 곳이나 보유한 거부다. 이런 직책과 사업을 가지게 된 배경은 역시 동생 덕이다. 마무드 카르자이의 별명은 ‘장관셀러’다. 지난해 갑자기 해임된 하디 칼리드 전 내무장관은 자신이 마무드의 동업자가 연루된 거래에 반대했기 때문에 괘씸죄로 걸린 것이라 주장했다.

부장 자리는 5만 달러, 국장 자리는 8만 달러

뉴욕 타임스는 지난 3월5일자 보도에서 “아프간 최대 사업가로 꼽히는 마무드는 권력형 비리로 축재한 인물이다”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그는 아프간에서 하나밖에 없는 시멘트 공장의 대주주로 공장 인수 공개 입찰에서 애초에 없던 ‘현금 제시’ 조항을 내밀어 막판에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쳤다. 또 칸다하르 대지 1만 에이커(4047만㎡)를 사실상 공짜로 넘겨받아 개발을 맡았고,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각종 공사 이권 개입과 인사 청탁을 통해 전후 재건기금 상당 부분을 유용해 부자가 됐다. 카르자이 사촌까지 포함해서 이름에 ‘카르자이’만 들어가면 대통령의 위세를 업고 돈을 모으고 있다.

정부 관리가 되려면 말단직부터 고위직까지 모두 가격이 매겨져 있다. 남부 가즈니 주에서 보건국 부장급 자리에 있었던 사미 라크바니 씨(39)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슈퍼마켓에 가면 물건 값이 적혀 있지 않으냐. 아프간 공무원과 경찰, 군대는 진열장에 전시된 물건처럼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 나는 5만 달러를 내고 부장 자리를 샀고 내 위 국장급 자리는 8만 달러 정도였다. 집안에서 돈을 모아 내가 이 자리를 샀지만 나는 이 돈의 본전을 뽑고 8만 달러짜리 국장급으로 옮기는 것이 꿈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아프간 전체가 거의 다 그렇다. 중앙정부 쪽은 5만 달러 이하 자리는 없을 정도다. 말하자면 브랜드 자리다”라고 답했다. 

가즈니 주 사르만의 한 경찰서. 이곳 경찰서장은 지난해 10만 달러를 내고 자리를 샀다. 그의 부하 경찰 30여 명 모두 돈을 주고 직장을 얻었다. 그들의 주요 업무는 카불에서 칸다하르에 이르는 ‘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고속도로’를 지키는 일이다. 이 도로는 2007년 한국인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되었던 곳이다. 이런 위험한 업무를 맡는 데 웃돈까지 얹어주고 경찰이 된다는 게 의아스럽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고속도로 ‘통행세’를 받아 챙기는 것이다.

파지왁 뉴스의 사자르 기자는 “이 경찰들은 도로가 위험하니 에스코트를 해준다는 둥, 아는 탈레반에게 청탁을 넣어준다는 둥 갖가지 이유로 돈을 뜯어낸다. 슬프게도 이제 그런 풍경이 아프간 사람들에게 당연한 상황이 되어버렸다”라고 전했다. 받은 뇌물은 단속 경찰 혼자서 차지하는 게 아니다. 상사에게 바친다. 경찰이 되고 싶은 지원자는 얼마든지 있기에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러니 고속도로 경찰은 혈안이 되어 먹잇감을 찾는다. 부패한 경찰은 탈레반과 연관돼 있다. 탈레반과 경찰이 서로 한 가족 한 가문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과 짜고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차를 위협한 뒤 경찰이 나타나 호위 비용을 받아 이 돈을 다시 탈레반에게 나눠준다. 공생 관계다.

칸다하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트럭 운전사 무하마드 씨는 “뇌물 액수는 많으면 몇 천 달러에서 적게는 300달러 정도로 천차만별이다. 카불에서 출발할 때부터 현금을 조수석에 싣고 뿌리고 다닌다. 뇌물 경찰이 한 군데만 있으면 괜찮은데 많으면 검문소가 10km마다 하나씩 있다. 한 군데도 그냥 통과시켜주는 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The New York Times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뒷줄 왼쪽 세 번째) 가족 사진. 뒷줄 왼쪽 두 번째가 ‘마약왕’ 아마드 왈리.
세계 각국에서 아프간에 보내온 전후 재건기금이 유용되는 것은 ‘기본’이다. 이러한 착복에는 갖가지 아이디어가 동원된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름을 올려 월급을 타내서 가로채는 경우는 흔하다. 필요한 수량보다 훨씬 많은 전투장비를 신청한 다음 가격을 몇 배나 부풀려 탈레반에게 팔아먹는 일도 있다.
미국 의회 회계조사국(GAO)은 “일부 경찰은 지급받은 새 장비를 강제로 상관에게 제공해야 했고 상급 사령관으로부터 트럭 운전사나 여행자들에게서 돈을 뺏으라는 압력을 받는다”라고 밝혔다. 미국은 아프간 내무부와 경찰에 훈련 지원 프로그램으로 100억 달러를 지원해왔는데, 이 가운데 지난 3월까지 총 6억5300만  달러가 경찰 봉급으로 지불됐다. GAO는 이 비용 가운데 일부가 여러 방법으로 착복되고 있다고 본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무하마드 바르키 씨(32)는 승률 100%를 자랑하는 변호사다. 그가 재판에서 이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현금이 든 서류 가방만 들고 법원에 간다. 재판장과 법원 직원을 돌아다니며 돈을 뿌리고 나면 피의자는 무죄가 된다”라고 말했다. 절도죄 정도는 몇 백 달러에서 해결이 가능하고 살인죄는 5만 달러에서 10만 달러까지 가격이 매겨져 있다. 중죄를 지으면 더 많은 뇌물을 주면 된다. 그래서 아프간 법원은 “중죄를 지은 죄인이 많아지는 것을 좋아하는, 지구상에 하나뿐인 법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후 출범한 ‘아프간 재건 및 개발계획’은 각종 국제기금을 바탕으로 아프간을 부흥시킴으로써 테러리즘을 종식하고 민주주의 국가로 유도한다는 포부를 가졌다. 당시 백악관은 이 계획을 2차 세계대전 후 서유럽 재건 계획인 ‘마셜 플랜’에 비유했다. 그러나 현재 아프간 재건기금은 아프간 뇌물 공화국의 밥줄이 되고 있다.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간 재무장관은 “경제 전체가 범죄화됐다”라며 온갖 부정부패로 국정 운영이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재건을 위한 국제 원조기금은 현지 관리들의 초호화 주택을 짓는 데 들어갔다. 카르자이의 가족과 정부 관료들은 빈민가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연합군의 보호를 받는 대형 저택을 지었다. 카불 세푸르 지역은 미군 침공 이전에는 황무지였다. 지금은 집주인 대부분이 정부 관리로, 수십만 달러를 호가하는 호화 대형 주택촌이 됐다. 이 부유촌의 다른 이름은 ‘도둑들의 도시’다.

세푸르 옆 동네에서 사는 교사 자만 씨(45)는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해외로 돈을 빼돌려 외국 은행에 비축한다. 그들은 아프간을 떠나도 최소한 3대는 펑펑 쓰고 남을 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다. 아프간 국민 중에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 누구도 정부를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부패한 아프간 정부보다 최소한 검소하기는 했던 옛날 탈레반 쪽으로 민심이 기우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미군, 탈레반보다 위험한 ‘부패와의 전쟁’ 치러

아프간 부패의 늪은 미국 오바마 행정부를 고민스럽게 만든다. 칸다하르에서 작전을 전개 중인 베이트 선임하사는 “지금 미군은 탈레반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프간의 부패와 싸우는 일이 더 급하다. 아프간 군인들과 공동 작전을 펼 때 주민은 우리를 똑같이 뇌물 받고 다니는 부류로 취급한다. 신뢰를 얻기 힘들다”라고 말한다. 카불에서 경찰 훈련을 맡은 민간 경호회사 직원 데이비드 레텔 씨는 “나는 여기서 아프간 경찰들을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도둑들을 교육하는 기분이다. 이들은 훈련에는 관심이 없고 경찰이 되면 받을 수 있는 뇌물에만 관심을 보인다”라고 한탄했다. 그만큼 아프간 경찰과 정부 관리 이미지는 뇌물과 직결된다.

이 와중에 아프간 정부는 지난해 8월 파리 지원국 회의에서 통 크게 5개년 개발계획에 필요한 500억 달러를 원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100억 달러만 약속했고 나머지는 다른 동맹국이 메워야 한다. 일본은 아프간 재건을 위해 배정한 기금 20억 달러를 낸다. 한국 정부도 지난 5월 국무회의를 열어 253억원(약 1950만 달러) 규모의 아프간 추가 지원을 의결했는데, 아프간 경찰 치안업무 보조 차원에서 경찰 소속 태권도 사범을 포함해 구급차 100대, 경찰 순찰용 오토바이 300대 등 500만 달러 상당의 장비를 지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부터 3년간 3000만 달러를 도와주는 기존 계획에 추가 지원까지 이뤄지면, 2011년까지 모두 7410만 달러가 한국에서 아프간으로 간다.

최근 카르자이 대통령의 선거 부정과 재검표 논란으로 아프간 정세가 더욱 불안하다. 선거가 끝난 지 약 20일이 지났지만 결과는 확실히 나오지 않고 있다. 부패가 만연한 아프가니스탄 사정을 안다면 부정선거 의혹을 품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미국도 카르자이 정부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프간 대선 직후인 지난 8월27일 아프간을 방문한 홀브룩 아프간·파키스탄 특사와 미국 상원의원들은 카르자이 대통령을 만나 정부의 선거 부정과 부패를 따지고 들었다. 로이터나 BBC는 이번 만남을 ‘극적인 파열’ ‘폭발’로 묘사하며 미국과 카르자이 정부의 신경전 및 양국 정부 간의 불화를 예고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홀브룩 특사는 특히 미국 정부가 아프간 대선 이후 아프간 정부의 부패와의 전쟁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혀, 양국 간 긴장의 수위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오바마의 미군은 탈레반보다 더 위험한 ‘부패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기자명 김영미·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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