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 후계설이 "현 시점에서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라고 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발언(9월10일 일본 교도통신 인터뷰)은 국내외 언론이나 북한 전문가들을 공황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일부에서는 북한 권력 서열 2위이자, 대외적으로 국가수반이기도 한 김영남 위원장의 이 같은 말조차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여, 그동안의 ‘잘못된 확신’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에게 이 얘기는 특별히 새로운 게 아닙니다. 김정일 위원장을 정점으로 한 북한 최고 수뇌부는 이미 지난 6월 초부터 ‘김정운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한 바 없다’는 입장을 비공개리에 자신의 주변국에 설명해왔습니다. 지난 4월28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평양 방문이 그 직접적인 계기였습니다. 당시 그의 방문은 특별한 현안보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및 후계 문제를 간접적으로 체크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김 위원장이 면담에 응하지 않자 러시아와 중국에서 의구심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은 김 위원장이 2주 만에 업무에 정상 복귀해 자신의 건재를 과시함으로써 의구심을 불식시키게 됩니다. 

남문희 편집국장
그런데 바로 이때부터 북한 내부에서 많은 변화가 일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북한을 좌지우지하던 장성택과 그 주변의 군부 세력이 노동당에 권좌를 물려주고 뒤로 물러나게 됐고, 이와 함께 강경 일변도로 치닫던 대남·대미 정책이 변하고, 김정운 후계설의 진상도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즉 그동안의 김정운 후계설은 장성택 계열의 군부가 이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북한 내부 절차가 전혀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외적으로 무단 유포한 것이었습니다. 북한 수뇌부는 지난 6월 초 군 고위 관계자를 러시아에 보내 이런 사실을 해명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김 위원장이 장성택을 이 문제 때문에 강하게 문책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지난 8월5일 있었던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방북 역시 내면으로는 김 위원장의 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해 이를 확인한 오바마 대통령은 ‘김정일 없는 북한’에 초점을 맞췄던 그동안의 급변사태 중심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북·미 직접 대화 및 관계개선 정책으로 얼마 전 크게 선회했고, 이제 그 시점만 남겨둔 상황입니다. 북한의 외교 스케줄상 미국 다음에는 일본입니다. 마침 그 일본에서는 대북 유화노선을 표방한 민주당이 대세를 장악했습니다. 김영남 위원장이 비록 언론사이긴 하지만 일본 측에 후계구도를 부인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건재를 과시한 것은 바로 미국 다음에 이어질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포석인 것입니다.

기자명 남문희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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