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21일 스즈키 이치로가 일본 도쿄돔에서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AP Photo
2019년 3월21일 스즈키 이치로가 일본 도쿄돔에서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AP Photo

메이저리그에서 큰 공로를 세운 선수는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투표 등으로 뉴욕주 쿠퍼스타운에 소재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올해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강타자 토드 헬턴, 통산 477홈런을 날린 3루수 아드리안 벨트레, 미네소타 트윈스의 프랜차이즈 포수 조 마우어가 새 회원이 됐다.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화제가 될 듯하다. 현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독특한 선수로 꼽히는 스즈키 이치로가 ‘은퇴 뒤 5년’ 조건을 채우고 처음으로 후보에 오르기 때문이다. 75% 득표율을 넘기면 회원으로 선출된다. 메이저리그 자체 TV 채널인 MLB 네트워크 분석가 마이크 로웰은 지난 1월에 “이치로는 99.7% 득표율로 헌액될 것”이라고 말했다. 100%가 아닌 이유는 “누군가 한 명은 반대표를 던지기 때문”이다. 곧 이어 2007년 월드시리즈 MVP 출신인 로웰은 “그 사람에게 투표권을 빼앗아야 한다”라고 농담했다.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의 버스터 올니는 “이치로는 만장일치로 헌액될 자격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치로는 현역 시절 안타를 만드는 능력에서는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데뷔 시즌에 242안타로 이 부문 타이틀을 따내며 신인왕과 MVP를 한 손에 거머쥐었다. 2004년엔 262안타로 역대 시즌 최다 기록을 세웠다. 타격뿐 아니라 골드글러브를 무려 열 번이나 수상한 뛰어난 수비력을 보유했다. 그는 2001년 데뷔해 2019년 은퇴할 때까지 19시즌 동안 안타 3089개를 쳤다. 3000안타는 명예의 전당 회원권으로 통하는 대기록이다. 메이저리그에서 3000안타 기록을 세운 선수는 모두 33명. 이 가운데 이치로, 앨버트 푸홀스, 미겔 카브레라는 아직 투표 자격을 얻지 못했다. 남은 30명 중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회원으로 선출됐다.

명예의 전당은 선수의 기량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를 중시한다. 이치로는 동아시아 출신 최초 메이저리그 타자라는 독보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북중미 대륙에 한정됐던 메이저리그 야구를 ‘세계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선수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 우승의 주역이기도 했다. 이 점에서 재키 로빈슨, 로베르토 클레멘테와 비견될 수 있다.

메이저리그는 1945년 로빈슨의 데뷔와 함께 미국 흑인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로빈슨은 인종 장벽 때문에 26세라는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었다. 그래서 통산 11시즌 1563안타로 통산 기록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투표 자격을 얻은 첫해인 1962년에 헌액됐다. 득표율은 77.5%는 당시 여전했던 미국 내 인종차별을 보여준다. 로빈슨 이후에는 라틴아메리카 출신 선수들이 대거 메이저리그로 들어왔다. 라틴계 선수 붐을 대표하는 인물이 클레멘테다. 1955년 데뷔한 클레멘테는 1972년 시즌 통산 3000안타를 달성하며 마쳤다. 그해 12월 비행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니카라과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구호물자를 전세기에 싣고 가다가, 비행기가 추락한 사고였다. BBWAA는 유예 기간 없는 특별 투표를 실시해 득표율 92.7%로 클레멘테에게 회원 자격을 부여했다.

역대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만장일치는 딱 한 번 나왔다. 2019년 헌액된 마리아노 리베라다. 통산 세이브 1위(652개)인 리베라는 구원투수 포지션에서는 역대 최고로 꼽히는 선수다. 하지만 리베라와 달리 이치로가 ‘최고의 타자’ 혹은 ‘최고의 외야수’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뒤따른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19시즌 동안 두 자릿수 홈런을 친 시즌이 세 번뿐인 ‘똑딱이’ 타입이었다. 여기에 볼넷을 잘 고르지 않아 출루율이 낮은 편이다. 이 약점은 안타 생산 능력과 통산 509도루를 기록한 스피드, 그리고 수비로 메울 수 있다. 하지만 전성기와 그 이후의 차이가 크다는 게 진짜 문제다. 이치로는 데뷔 이후 첫 10시즌 모두 올스타에 선정됐고 200안타 이상을 기록했다. 이 기간 타율 0.331에 OPS(출루율+장타율)는 0.806이었다. 하지만 2011년부터 마지막 9시즌에는 타율 0.268에 OPS 0.652로 평범 이하 선수였다.

2000년대 BBWAA 투표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야수는 모두 35명이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중시되는 지표인 WAR(대체선수 대비 추가승수)은 BBWAA 투표에도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치로의 통산 WAR은 60.0승이다. 35명 가운데 이치로보다 WAR이 높은 선수는 28명이다. OPS+라는 수치는 타자 개인 OPS를 리그 평균으로 나눈 뒤 구장 조건으로 다시 조정한 값이다. 이치로는 커리어 후반부 부진으로 통산 OPS+가 107에 불과하다. 평균적인 타자보다 대략 7% 뛰어났을 뿐이라는 의미다. 35명 가운데 이치로보다 OPS+가 낮은 선수는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106)와 유격수 오지 스미스(87) 두 명뿐이다. 두 선수 모두 이치로보다 훨씬 수비가 중요한 포지션에서 역대 최고 수비력을 자랑했다.

‘스테로이드’ 없이 만든 성적의 가치

홈런 파워가 없는 교타자라는 점에서 이치로와 가장 닮은 선수는 토니 그윈과 웨이드 보그스다. 그윈은 통산 타율 0.338에 3141안타, 보그스는 0.328에 3010안타를 기록했다. 이치로(0.311, 3089안타)와 비슷하다. 하지만 OPS+에서는 그윈이 132, 보그스가 131로 이치로를 크게 앞섰다.

이치로의 타격이 실제로 팀에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는 그가 전성기를 누릴 때에도 자주 논란이 됐다. 그는 세이버메트릭스가 본격화된 시기에 메이저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단타와 타율보다는 장타와 출루를 중시하는 새로운 흐름에서 이치로의 타격은 때로 시대착오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치로가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때는 이른바 ‘스테로이드 시대’이기도 했다. 수많은 선수가 경기력 향상용 약물(PED)을 복용했다. 이치로가 엄청난 안타 개수에도 종합적인 타격 성적은 리그 평균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리그 평균’은 약물로 부풀려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3000안타를 치고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뽑히지 못한 선수’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라파엘 팔메이로다. 두 선수 모두 금지약물을 복용한 전과가 있다. 야구 통계 권위자 빌 제임스가 만든 ‘명예의 전당 모니터’ 지표에서 이치로(235점으로 역대 31위)를 앞서고 투표 자격을 얻었는데도 헌액되지 못한 선수는 세 명이다. 로드리게스와 약물 복용으로 악명 높은 배리 본즈, 그리고 도박으로 영구 제명된 피트 로즈다. 하지만 데이비드 오르티스, 제프 배그웰, 마이크 피아자 등은 약물 복용에 연루되고도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됐다. 이들에게 투표 자격을 준다는 점에 항의하며 투표권을 포기한 BBWAA 회원도 있다. 이치로의 만장일치 헌액을 언급한 올니는 10년째 투표를 하지 않고 있다.

이치로는 현역 시절 내내 호리호리한 체구를 유지했다. 웨이트트레이닝도 거의 하지 않았다.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약물로 근육을 키운 이들과 경쟁하면서 통산 3000개가 넘는 안타를 쳤다는 점은 이치로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이치로는 내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만장일치는 몰라도 그윈(97.6%), 보그스(91.9%)와 비슷한 득표율은 얻을 자격이 있다.

기자명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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