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8일 민생토론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2월8일 민생토론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사람마다 입에 잘 붙지 않는 단어가 있다. 나에겐 ‘민생’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별로 어려운 한자(民生)도 아니고, 뜻(일반 국민의 생활과 생계) 자체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민생이라는 단어를 쓸 일이 별로 없다. ‘민생이 도탄에 빠지다’는 국어사전 예문처럼, 너무 옛말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 수도 있겠다. 혹시나 해서 여태 쓴 기사에 ‘민생’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썼나 검색해봤더니, 남의 말을 인용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 토론회’ 같은 경우를 빼놓고는 기사에 그 단어를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일상어 느낌이 적어서 안 쓴 게 제일 큰 이유인 듯하다. “내 민생 문제가 쉽지 않아” 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으니까. 다른 이유를 찾자면 ‘민생’이라는 단어의 쓰임이 구체적이지 않고, 정치권에서 ‘우리가 시민들의 삶에 관심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관용어처럼 사용하거나 혹은 알리바이용으로 이 단어를 쓰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서다.

정치권의 ‘민생’ 사용례를 보자. 지난 1월29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 이후에 윤석열 대통령과 처음 오찬을 했다. ‘윤·한 갈등’이니 뭐니 얼마나 시끄러웠나. 그 자리에 함께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민생 문제만 이야기했다.” 하나 마나 한, 텅 빈 말처럼 들렸다. ‘디오르 백’ 이야기를 안 했다는 뜻인가.

지난해 12월26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민생’을 말했다. 지난해 13차례 해외 방문한 것을 두고 “순방이 곧 일자리 창출이자 민생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순방=민생’이다. 정치권 만능 ‘치트키’, 민생이 뜻하는 바가 더 커졌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16차례 해외 순방을 다녀왔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7월에 리투아니아·폴란드·우크라이나를, 11월에 영국·프랑스를, 12월에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지난해 대통령의 해외 순방 예산만 578억원. 잦은 순방으로 예산을 낭비한다고 야당이 비판했다. ‘순방이 민생이다’라는 말은 그에 대한 답변처럼 들린다. 해외 순방이 그렇게 중요한데, 2월 하순에 잡혀 있던 독일·덴마크 국빈·공식 순방은 출발을 나흘 앞두고 연기했다. 왜 그런지 이유도 설명하지 않는다.

4·10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여기저기에서 ‘민생’을 말한다. 툭하면 민생이다. ‘일반 국민의 생활과 생계’에 대한 걱정을 넘치게 하는데,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 등장하는 카페 사장님들을 비롯한 자영업자의 삶은 왜 이렇게 팍팍한가. ‘민생’이란 말이 여전히 입에 잘 붙지 않는다.

기자명 차형석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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