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3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햄프셔주 런던데리의 유세 현장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FP PHOTO
1월23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햄프셔주 런던데리의 유세 현장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FP PHOTO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독주로 늦어도 3월 중에 끝날 전망이다. 한때 그의 대항마였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유세를 중단하고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가 ‘트럼프 대세론’을 잠재우긴 역부족이다. 그녀는 1월22일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서 온건파 친공화당 유권자의 지지 덕분에 득표율 43.6%를 끌어냈지만 54.4%를 확보한 트럼프의 아성을 허물진 못했다. 2월24일에 열리는 다음 경선 지역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자신이 주지사를 지낸 정치적 고향이지만 30% 이상 트럼프에게 밀리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16개 주에서 예비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 3월5일 슈퍼 화요일을 전후로 트럼프가 공화당 대권 후보 자리를 차지할 게 확실하다.

문제는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다. 2020년 11월 대선에서 패한 트럼프는 이듬해 1월6일 대선 결과를 추인 중이던 의사당에 열성 지지자들이 난입하는 것을 부추긴 혐의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91가지 혐의로 네 건이나 형사 기소를 당했다. 현재 트럼프는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선동 및 대통령 퇴임 후 기밀문건 유출 등 연방법 위반 혐의로 두 건이 특검에 의해 기소되어 있다. 지난 대선 때 조지아주에서는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 뉴욕주에선 과거 성관계를 맺은 포르노 여배우의 입막음용 지급액과 관련해 회계장부를 조작한 혐의 등 두 건이 주검찰에 의해 기소된 상태다.

지금 예상대로라면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돼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과 재대결할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기소된 신분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설 수 있는지, 그리고 당선되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1776년 건국 이후 미국에서는 선례가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 딜레마’가 워싱턴 정가의 중대 관심사로 급부상했다. 〈뉴욕타임스〉는 “만일 트럼프가 유죄 신분으로 당선되면 미국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결국 연방 대법원이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라고 전망했다. 트럼프에 대한 형사재판은 3월4일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트럼프가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도 대선후보로 출마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법학자들의 중론이다. 실제 미국 헌법은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요건을 35세 이상, 미국 내 출생 시민권자, 최소 14년 이상 미국 거주 등 세 가지로 규정한다. 후보의 인성이나 전과 등은 출마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일부 주에선 전과자의 공직 출마를 금하고 있지만 그것도 주 공직에 해당하지 대통령직 같은 연방 공직은 해당하지 않는다.

출마 자격과 관련해 트럼프의 법적 장애물로 거론되는 건 수정헌법 제14조 3항이다. 1868년 발효한 이 조항은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선서한 뒤 모반이나 내란에 가담한 사람은 연방 공직과 주 공직, 사법부 공직을 금한다”. 지지자 의사당 난입 사건을 수사 중인 잭 스미스 특별검사는 지난해 8월 트럼프를 대선 결과 전복 혐의 등으로 기소한 바 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트럼프가 지지자들을 선동해 의사당에 난입하도록 한 것이 ‘반란’ 가담 행위이고, 따라서 수정헌법 제14조를 위반한 만큼 주 경선 투표용지에서 그의 이름을 빼라고 지난해 12월에 판결했다. 비슷한 이유로 메인주 국무장관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다른 주에서도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결국 연방 대법원이 이 문제에 개입하기로 했다. 트럼프 측의 상소를 받아들여 연방 대법원이 2월8일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에 대한 심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트럼프 측 변호인단은 변론 문건에서 해당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면 공화당 유력 후보에 대한 유권자 투표권이 침해된다며 연방 대법원이 기각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현재 연방 대법관 9명 가운데 6명이 보수계 판사다. 그중 3명은 트럼프 대통령 재직 시에 지명·인준되었다. 이런 점 때문에 트럼프 측은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이 뒤집힐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최근 공화당 의원 179명이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을 뒤집어달라는 의견서를 연방 대법원에 제출했다. 연방 대법원은 3월5일 슈퍼 화요일 이전에 결론을 내릴 전망이다.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재대결을 할 것으로 보이는 바이든 대통령 ⓒAP Photo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재대결을 할 것으로 보이는 바이든 대통령 ⓒAP Photo

“트럼프는 ‘셀프 사면’ 하려 할 것”

트럼프는 재판을 받으며 대선을 치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일 그가 기소된 신분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당선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법률 전문가들은 ‘주법 기소 두 건은 어쩔 수 없어도 연방죄 기소 두 건은 트럼프가 임명한 법무장관이 기소를 철회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현직 대통령은 재임 중 소추하지 않는다는 전례를 들어 법무장관이 임기 중 그의 기소를 유예할 가능성도 있다.

만일 재판이 빠르게 진행돼 대선 이전에 트럼프가 유죄판결을 받고 투옥된다면? 그리고 그 상황에서 대선에 승리한다면? 이에 대해선 헌법학자들조차 난감해한다. 미국 건국 역사상 이런 상황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당선 시점에 옥중에 있을 경우, 사상 초유의 헌법적 위기에 대법원이 개입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옥중 집무를 할 순 없으니 수정헌법 제25조에 따라 권한을 부통령에게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당선자’ 트럼프가 옥중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부통령에게 그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는 결정은 그가 임명한 부통령과 대다수 내각이 찬성해야 가결되는데, 과연 이들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옥중 당선자 트럼프가 수감 해제를 위한 소송을 벌일 수도 있다.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를 감옥에 가두는 것은 사법부가 행정부 활동을 침해하는 행위이고, 이는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리라 보인다. 트럼프가 당선자 신분으로 ‘셀프 사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연방죄’는 대통령의 사면권에 포함된다. 캘리포니아 법대의 리처드 헤이슨 교수는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유죄 신분으로 당선되면 자기 사면에 나설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그도 연방 대법원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미국 역사상 유죄판결을 받은 후보가 대선에 승리한 선례가 없기 때문에 결국 연방 대법원이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2000년 대선 당시 플로리다주에서 공화·민주 대선후보 간의 표 차이가 불과 537표로 나타난 적이 있다. 재검표 소송이 벌어지자 연방 대법원이 개입해 결국 재검표를 중단시킨 바 있다. 트럼프의 공화당 경선 독주로 별별 ‘경우의 수’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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