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잡지’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그 정의와 범위도 모호할 뿐만 아니라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대체 무슨 돈으로, 누가 보라고, 왜 만드는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없다. 심지어 다음 호가 언제 나올지, 아니 다음 호가 나오기나 할지, 잡지를 구한 그곳에서 다음 호도 구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 잡지는 신기하게도 사람들과 ‘소통’한다.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이 돈 벌 궁리 없이 소일거리처럼 기꺼이 시간을 내 잡지를 만들고 퍼뜨리면,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던 사람들이 어디선가 하나 둘 나타나 대열에 합류한다. 100부 정도 찍어 작은 카페에 몇 번 비치해뒀을 뿐인데 “다음 호 언제 나와요?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독자 편지까지 날아오면, 나와도 되고 안 나와도 되는 ‘독립’ 잡지를 만드는 이들은 “몸이 짜릿짜릿해져” 다음 호를 바삐 준비한다. 그렇게 독립 잡지는 ‘굴러간다’.

독립 잡지(왼쪽)가 다루는 세계는 꽤 넓다. 동네 매거진부터 패션·디자인, 인터뷰와 문학 등 다룰 수 있는 범위에 제한이 없다.
■ 동네 이야기는 동네 사람들이:쇼핑과 데이트 명소로 이름난 서울 압구정동 ‘가로수길’, 놀랍지만 당연하게도 ‘주민’이 산다. 가로수길 동네 주민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만드는 비영리 타블로이드판 매거진 〈Hello, 가로수길〉(www.hellostreet.net)에는 ‘놀러 오는 사람들은 모르는’ 가로수길 이야기가 빼곡하다. 동네 인맥 분석에서부터 개·고양이 지도, 배달 음식 품평기까지 동네 사람이라면 알아야 하고 또 알 수밖에 없는 정보들이 지면을 채운다.

〈Hello, 가로수길〉 발행인 배정현(36·쇼핑 칼럼니스트)·박수진(34·북디자이너)씨는 지난 가을 동네 주민들을 모아 ‘가벼운 마음으로’ 첫 호를 냈다. 50만원씩 내면 1년에 네 번 매거진을 찍어낼 수 있다는 계산에 “친구들과 먹고 노는 대신, 그 돈으로 동네 사람들 새로 사귀고 정보를 나누는 데 쓰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일을 벌인 것이다. 생각보다 일은 만만치 않았다. 두 달 혹은 두 달 반 만에 마감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피드백이 마구 쏟아져 어깨가 무거워지고, 하고 싶은 것이 늘어나 외부의 기부금이 늘 아쉽다.

하지만 “만드는 사람이 즐거우니까” 〈Hello, 가로수길〉은 계속 낼 예정이다. 끼 넘치는 예술가들이 바글바글 모여 사는 가로수길의 특성상, 〈Hello, 가로수길〉은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지 않아도 ‘지속 가능’하다. 마음 느긋한 발행인 배씨는 이렇게 말한다. “번져서 커져야 발전하는 게 있는가 하면, 좁혀지고 작아져서 알콩달콩해야 재미있는 게 있잖아요. 우리는 후자예요.”  

■ 개봉 박두, 자전거 잡지:9월2일, 소극장 기획팀에서 일하는 하은혜씨와 디자인을 전공하는 정선아·나혜진씨가 홍대 근처 작은 카페에서 머리를 맞댔다. 하씨는 편집장, 정씨와 나씨는 아트디렉터가 돼 만들고 있는 것은 〈클〉(cle)의 창간호. 자전거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담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새로 펴내는 독립 잡지이다.

〈클〉은 복합 문화공간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개설한 강좌 ‘진(Zine)메이킹 워크숍’에서 태어났다. 열 살이 넘은 독립 잡지의 맏형 〈싱클레어〉를 펴내는 김용진씨가 강사를 맡은 이 수업에서, 수강생들은 직접 잡지를 하나씩 만들어보는 실습 과정을 밟았다. 〈클〉도 실습용으로 나온 아이템 중 하나였다. 자전거로 여행을 즐기는 마니아와 자전거를 어렵게 배워 애증이 가득한 사람, 자전거를 전혀 탈 줄 모르지만 자전거가 가진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 등 팀원 7명이 책을 만들다가, “내친김에 창간하고 꾸준히 발행해버리기로” 뜻을 모았다.

〈클〉은 정부 국책 사업을 홍보하거나 자전거 단가와 부속품을 소개하는 잡지가 아니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느낌’을 다루는 잡지이다. 그래서 ‘공정한 두 발’로 달리면서 스치는 일상과 사람, 여행과 환경을 모두 포괄할 수 있다. ‘자전거’에서 연상되는 모든 것도 잡지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배우는 과정은 어떤 이에게 성장통과도 같으니, 비주류 일을 시작하면서 성장통을 겪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고정 꼭지를 넣는 식이다.  
 
〈클〉 창간호는 9월 중순 〈싱클레어〉 42호에 ‘북앤북’ 형식으로 얹어 배포할 예정이다. 홀로 서야 할 2호부터, 〈클〉 팀원들은 자전거에 ‘클’을 실어 곳곳의 자전거 가게와 수리점에 나를 계획이다.
 
■ 예술의 영감을 찾아서:〈ㅤㅇㅏㄾ〉(www.a-r-t.ti story.com)은 잡담과 낙서로 이뤄지는 인터뷰 잡지이다. 수다스럽고 산만하게 진행되는 인터뷰 기사와 낙서 같은 그림들이 군데군데 늘어진 〈ㅤㅇㅏㄾ〉 지면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끼와 열정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ㅤㅇㅏㄾ〉을 만드는 사람은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 한지현씨(25)와 황선형씨(24). ‘예술의 영감이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지’를 늘 궁금해하던 이들은 인터뷰를 통해 답을 찾기로 했다. 인터뷰 대상자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는데 그림을 그리는 경영학도, 클럽에서 DJ를 하는 사람, 물리학을 배웠는데 레게 음악에 심취한 사람, 직장을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는 아가씨, 군대에서 ‘눈이 맞아’ 힙합 그룹을 결정하게 된 두 남자 등 예술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다.

ⓒ임병식,전문수10년째 꾸준히 발행하는 독립 잡지계의 원로 〈싱클레어〉 편집국 식구들(왼쪽)과 9월 중순 창간을 앞둔 자전거 잡지 〈클〉을 만드는 사람들(오른쪽).
지난해 1월 창간호를 낼 때만 해도 한두 번 재미삼아 책을 낸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예상하지 못한 시너지 효과를 얻는 재미에 〈ㅤㅇㅏㄾ〉은 벌써 8호 발행을 앞두고 있다.

발행인이 가난한 학생들이라, 잡지는 A4 용지에 출력·복사한 상태에서 가운데에 호치키스를 찍어 완성된다. 복사실은 한씨 아버지의 사무실이다. ‘조잡하게’ 만들었을 것 같지만, 〈ㅤㅇㅏㄾ〉은 100부에서 125부로 발행 부수를 늘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찾는 이들이 늘었다.    

■ 혼자서 만드는 ‘수상한 이야기’:〈수상한m〉은 기획·텍스트·인터뷰·사진·편집·레이아웃·제작·배포까지 한 사람이 도맡아 하는 1인 독립 잡지이다. ‘작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회사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로씨(필명·29)는 2008년 여름부터 비정기적으로 〈수상한m〉 0·1· 2·3권을 펴냈다. 각 호의 판형도 제각각이고 일관된 디자인 정책도 없는 ‘수상한 잡지’에, 이로씨는 자신만의 콩트·사진·소설·인터뷰 기사를 싣는다.

이로씨는 기존 책과 잡지에서 영감을 얻었다. ‘독서는 온전히 혼자 하는데, 책은 왜 여럿이 만들까? 다수가 참여하는 출판은 질은 높지만 그만큼 틀이 꽉 짜였다는 뜻이 아닐까?’ 책 만드는 사람과 독자가 일대일로 만나는 느낌은 어떨지 궁금해, 이로씨는 1인 잡지 〈수상한m〉을 만들었다.

혼자 만드니 아무도 시비를 안 걸어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내부 회의가 없으니 번잡하지 않아서 좋지만 누군가는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혼자 일주일간 끙끙대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잡지는 혼자 만들었지만 소통은 여럿과 함께한다. 한 호당 100부씩 찍어 홍대와 삼청동 등지의 카페에 두면 금세 동이 난다.

〈수상한m〉이 아무리 잘나가도 이로씨는 적자를 본다. “〈수상한m〉을 만들기 위해 살도록” 이로씨가 애초 수익 구조를 그렇게 짜놨다. “돈벌이가 되거나 혹은 본전을 차리게 되면 더 이상 잡지를 내지 않을 것 같아요.”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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