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보급로 전쟁을 먼저 치러야 했다. 미군이 이라크로 진격할 때는 이라크 남쪽의 쿠웨이트, 서쪽의 요르단, 북쪽의 터키로 해서 해상과 육상을 모두 보급로로 연결했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도 9·11 테러 당시 아프간 인접 국가의 적극적인 보급로 협조로 미군의 수많은 병력과 군 수송품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중 파키스탄은 연합군 보급의 75%가량을 책임졌다. 아프간 북쪽에도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적극적인 항로 협조를 받아 미국 ‘보급로 전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미군 보급로에 지난해부터 이상 징후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25일, 파키스탄 카라치 항에서 미군 보급품을 싣고 카이버 고개를 넘어 아프간으로 떠난 운수회사 트럭 두 대가 사라진 것이다. 나중에 파키스탄 경찰에 의해 밝혀진 내용은 “무기를 가지고 있던 20여 명의 탈레반 세력이 트럭에 폭격을 가해 두 대 모두 화염에 휩싸였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파키스탄에서 탈레반이 일으킨 첫 번째 미군 보급로 공격 사건이었다.

파키스탄에서 미군 보급품을 싣고 떠나는 운전사는 탈레반에 의해 참수되기 일쑤이다. 위는 탈레반이 불태운 아프간 연합군 차량들.
9·11 테러 이후 카라치 항에서 아프간 전쟁 특수를 톡톡히 누렸던 파키스탄 민간 운수업자들은 바로 비상이 걸렸다. 이후 미군의 보급품만 싣고 떠나면 운전사는 탈레반에 의해 참수되거나 200여 대가 넘는 미군 보급품 트럭이 강탈당했다. 탈레반은 여러 곳의 물자수송 트럭 터미널을 습격해 아프간 주둔 미군에 갈 연료 등을 실은 트럭 수백 대를 불태웠다. 더구나 아프간을 잇는 중요한 도시인 페샤와르에서 미군의 차량 통과 자체를 반대하는 시위까지  일어났다.

미군, 탈레반에 ‘통행세’ 내고 군수품 보급

지난해 12월18일 페샤와르 주민 1만여 명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연합군에 물자를 수송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동안 미군 무인 항공기의 파키스탄 지역 무차별 공습으로 미군에 대한 원한이 넘치던 주민들이 “이제 미군에 무기와 탄약을 넘겨주지 말라”고 외치며 무인 항공기 폭격을 중단하라고 시위했다.

카라치에서 미군 보급품 수송사업을 하던 ‘베스트 트레이딩’의 대표 아지즈 씨는 아예 사업을 접었다. “주민들까지 나서서 ‘미군 보급로 끊기’에 나서니 파키스탄에서는 감히 누가 미군의 보급품을 나르겠는가. 미군 보급품을 실은 운전사가 떠나면 다음 날 그의 머리만 돌아왔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나서는 운전사가 없어서 자연히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상황 탓에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보급품을 탈레반으로부터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 미군은 간접적으로 탈레반에 ‘통행세’까지 내야 했다. 미군이 다국적군 보급품 수송을 유럽 군수업체에 맡겼는데 이들 기업은 다시 아프간 현지 업체들에 하청을 주었다. 이 업체들이 트럭 한 대당 약 1000달러 또는 운송 수입의 25%를 탈레반 사령관에게 ‘통행세’로 지급하며 수송했다. 한 번 보급품 수송에 동원되는 트럭이 100대에 이르니 적지 않은 돈이 탈레반 수중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현찰이 생기는 일이니 탈레반뿐 아니라 소규모 군벌, 노상강도, 부패한 경찰과 관리들까지 운송업체에 통행료를 요구했다. 이 때문에 남부 가즈니 주 일부 수송회사는 아예 탈레반 무장요원을 고용해 군수물자 수송 경비를 맡기기도 했다.

하지만 ‘미군 보급로 끊기’의 결정판은 2월3일 탈레반이 파키스탄 페샤와르 서쪽 약 24km에 위치한, 아프간 국경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목인 카이버 고개 다리를 지난 폭파한 사건이다. 그나마 탈레반에게 통행세를 내면서까지 간신히 이어가던 아프간 보급로가 사실상 완전 차단된 것이다. 그동안 탈레반의 미군 보급품 공격을 보고도 대항하지 못해온, 무능한 파키스탄 정부는 다리를 보수하는 데만 몇 년이 걸린다며 팔짱을 끼고 있어 미국을 더욱 황당하게 했다. 초강대국 미국이 다리 하나에 무너질 지경이 된 것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지난 5월11일 이명박 대통령이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오른쪽)과 정상회담을 했다. 이때 미군 보급로를 뚫어줄 결정적인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때 오바마 대통령은 막 취임해 아프간 전쟁을 중동정책의 핵심으로 정하며 한창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이 카이버 고개 다리 폭파는  ‘오바마의 아프간 전쟁’을 시작부터 발목 잡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파키스탄 카이버 고개 다리가 무너질 무렵 미국은 키르기스스탄 정부로부터 미국 공군의 중앙아시아 보급로로 이용하던 마나스 기지를 폐쇄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2년 동안 미군 3만명을 증파할 예정이던 오바마 행정부에게는 막대한 타격이었다. 파키스탄 주요 보급로는 이미 탈레반의 공격으로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에 마나스 기지는 그나마 미군이 펼치는 아프간 작전의 생명선이었다. 매달 미군 1만5000여 명과 500t의 물자가 이곳을 통해 아프간으로 들어가고 있고, 공중 급유에 쓰이는 대형 석유 저장탱크 등도 이 기지에 있다. 그동안 미국은 해마다 약 1억5000만 달러를 기지 사용료로 냈다. 사실 이 기지를 사용하던 중에도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종종 기지 폐쇄를 언급해왔는데 그때마다 미국은 임차료를 올려주며 무마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양국 사이에 러시아가 끼어든 것이다. 9·11 테러 직후 미국이 아프간에 극도로 흥분할 당시 러시아나 그 외 아프간 인접 국가는 미국에 적극 협력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난 지 8년이 지나면서 러시아는 미국이 중앙아시아 각국에 자리 잡는 것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에 미국이 개입하자, 미국의 영향력이 중앙아시아에 확대되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그래서 마나스 기지에 주둔한 미군을 축출할 기회를 노리던 러시아는 키르기스스탄 정부에 1억5000만 달러 원조, 1억8000만 달러 부채 탕감, 20억 달러 차관을 약속했다. 공교롭게도 미국이 키르기스스탄에 제공하던 임차료가 1억5000만 달러였다. 즉 러시아는 미국이 제공하던 금액에 덤으로 부채 탕감과 차관까지 얹어주며 마나스 기지 폐쇄를 유도한 것이다. 아프간 전쟁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각국의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서 그 여파가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터져나온다.

전쟁은 시작해야 하는데 그곳으로 가는 파키스탄 보급로와 키르기스스탄의 마나스 기지가 동시에 끊긴 미국으로서는 정말 위기였다. 미국은 세계지도를 펴놓고 보급로로 확보할 수 있는 아프간 인근의 모든 나라를 검토해야 했다. 우선 이전에 미군 기지가 주둔했던 우즈베키스탄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 나라도 만만치 않았다. 9·11 당시 우즈베키스탄 또한 키르기스스탄과 함께 미국을 돕기 위해 자신의 기지를 사용하도록 했지만, 2005년 안디잔에서 벌어진 시위에 대한 우즈베키스탄 군의 무력진압 후 양국 관계가 악화되었다. 당시 미국은 무력진압을 비난하면서 군사 지원을 끊겠다고 위협했고, 우즈베키스탄은 미국이 우즈베키스탄의 정권 교체를 목적으로 내정에 개입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미군 기지를 폐쇄해버렸다.

미국에서 공중으로만 보급하는 것도 고려했지만 비행 거리가 너무 길고 무엇보다도 천문학적 경비 때문에 실현이 어려웠다. 다른 방법은 해상을 통하는 것이다. 내륙국인 아프가니스탄으로 물자를 반입하려면 바다를 끼고 있는 이란이나 파키스탄을 경유할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 보급로는 사실상 폐쇄됐고 이란이 미국을 도울 리도 없다. 그런데도 아프간의 보급로 상황이 얼마나 급했으면 나토(NATO)는 적대 국가인 이란에 외교 채널을 통해 육상 보급로 사용을 요청했고 미국도 비공식 접촉했다.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은 지난 6월1일 “나토는 이란에 차바하르와 반다르아바스 항구를 기점으로 한 육로 3개 루트를 요청했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란은 거절했다. 결국 아프가니스탄과는 거리가 먼 UAE 두바이를 거론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당장 2만명 이상의 병력을 아프간에 보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 미국 정부를 돕고자 혜성처럼 나타난 구세주는 뜻밖에 한국 정부였다. 지난 5월11일 우즈베키스탄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양국 간 맺은 경제협력 양해각서에 따르면 ‘나보이 특구’ 건설 지원 내용이 들어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한진그룹이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인근에 위치한 나보이 공항과 그 주변 지역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한진그룹은 2018년까지 나보이 공항을 ‘중앙아시아의 물류 허브’로 만들 계획인데 한국 정부가 나보이 공항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약속함으로써 이 공항을 아프간 주둔 미군의 물자 수송기지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 우즈벡 공항 확보해 미군 보급길 터

중앙아시아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인 유라시아넷(Eurasia net)은 ‘미국이 우즈벡에서 공군기지를 얻다(US Gets Uzbek Air Base)’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았다. 기사에는 “미국은 한국이 내민 도움의 손길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에서 전략적 시설물을 새로이 구축했다. 한국의 나보이 공항 프로젝트 개입은 미국과 우즈벡이 서로 체면을 세워주는 방법으로 전략적 협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라고 전했다. 사실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미국 정부는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어서 외교적 접근이 서먹한 관계로 양국이 직접 협상할 형편이 아니었다. 이 중간에 나타난 한국 정부가 우즈벡과 미국을 모두 만족시키는 기회를 만들었다.

우즈벡 공항 확보를 계기로 겨우 아프간 보급로에 대한 급한 불을 끄기 시작한 미국은 7월, 오바마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통해 이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미·러 양국 정상은 오바마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7월6~8일) 동안 양국 관계를 과거의 적에서 협력자로 재설정하며 미군 수송기가 러시아 영공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에 병력과 장비를 수송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오바마는 “미국은 더 이상 러시아가 약해짐으로써 이익을 얻지 않는다”라고 강조하며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핵무기 감축, 아프가니스탄 보급로 사용 등에 합의했다. 오바마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러시아의 체면을 살려주자 비로소 아프가니스탄 전쟁 보급로 문제에 숨통이 트였다.

러시아에 이어 카자흐스탄도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아프간 전쟁 물자 보급을 위해 자국 영토를 개방하기로 했고, 아프간 접경국인 타지키스탄도 미군과 연합군에 보급로를 허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마침내 1년에 걸친 보급로 전쟁 끝에 미군은 중앙아시아 지역을 통한 아프간 보급로 개척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됐다. 이로써 오바마의 아프간 전쟁은 시작부터 큰 진통을 치르며 간신히 보급로를 확보했다.

하지만 본게임인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은 수렁에 빠져 있다. 아프간 대선은 선거가 치러진 지 10여 일이 지나도 결과조차 안 나오는 황당한 상황이다. 8월에는 아프간 전쟁 개전 이래 48명이라는 사상 최대 미군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9·11과 라마단이 겹쳐 있는 9월에도 오바마의 아프간 전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자명 김영미·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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