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30일 서울의 한 아동병원 대기실에서 어린이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0월30일 서울의 한 아동병원 대기실에서 어린이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올겨울, 독감에 걸렸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체감만 그런 건 아니다. 질병관리청이 2023년 12월22일 발표한 ‘감염병 표본감시 주간소식지’에 따르면, 2023년도 50주 차(12월10일~12월16일) 인플루엔자 의사 환자(의심 환자) 수는 외래환자 1000명당 54.1명이었다. 41주 차에 1000명당 15.5명에서 43주에 32.6명, 47주에 45.8명으로 올라가다 49주 차에 61.3명으로 껑충 뛰었다. 50주 차에 54.1명으로 낮아졌지만 예년에 비춰보면 1월까지 환자 수가 더 증가할 수 있다.

독감이 ‘독한 감기’의 줄임말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많이 알려져 있다. 아데노바이러스, 리노바이러스 등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200여 가지에 이를 만큼 다양하지만, 독감의 원인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특정된다. 감기와 독감을 비교한 질병관리청 안내를 보면 독감은 갑자기 증상이 시작되고, 38℃ 이상 고열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콧물과 인후통은 감기에 비해 적지만 두통·피로감 증상은 더 흔하다. 그러나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은 증상만으로 호흡기 감염병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대개는 신속항원검사(약 3만원)로 독감을 판별한다.

이번 겨울에는 A형에서 두 종류(H1N1, H3N2)와 B형, 이렇게 세 가지 타입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돌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감염병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보통 A형과 B형에서 1~2개의 서브 타입들이 유행한다. 독감 백신을 접종할 때 3가 백신이나 4가 백신을 맞는 건 이 때문이다(예컨대 4가 백신은 그해 유행이 예상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서브 타입 항원 4종류가 들어간 백신이다). 다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여러 타입이 유행하더라도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A형(H1N1), A형(H3N2), B형이 동시에 도는 것이 다소 특이하다고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말했다.

왜 이렇게 독감 바이러스가 활개를 치고 다니는 걸까? ‘면역 부채(immune debt)'가 그 원인으로 거론된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2023년 9월14일 2023~2024절기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를 발령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코로나 대유행 기간 인플루엔자 유행이 없어 지역사회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자연면역이 감소했다. 또 지난 3월 코로나19 방역 정책이 전면 완화되면서 대면 활동 증가, 손씻기·기침예절·마스크 쓰기 등 개인위생 수칙에 대한 긴장감 완화, 환기 부족 등으로 인플루엔자 유행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기간에 독감 의사 환자 수는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2023년 50주 차에는 외래환자 1000명당 54.1명인 데 비해 2020년에는 같은 기간 2.8명, 2021년에는 2.7명에 그쳤다. 2022년에는 30.3명이었다. ‘독감 환자 134배 증가’ 같은 제목을 단 뉴스들이 보도되기도 했는데, 이는 독감 환자가 이례적으로 적었던 2021년과 비교해서 나온 다소 과잉된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유행 이전 시기와 비교해보면 2018년에 50주 차 독감 의사 환자는 1000명당 48.7명으로 2023년과 비교해 약간 적은 수준이었다. 다양한 호흡기 질환이 동시다발로 돌고 있으며 독감 유행세도 매섭기는 하지만 소위 ‘역대급’ 유행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본격적인 독감 유행을 수년 만에 다시 맞은 의료 현장엔 긴장감이 감돈다. 신천연합병원에서 호흡기내과 진료를 하는 백재중 과장은 코로나19 환자들이 있던 병동이 인플루엔자 환자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전했다(〈그림1·2〉 참조). “코로나19 감염도 여전히 있지만 수도 적어지고 증상도 예전에 비해 순해졌다. 독감 환자 중에서는 20~30대 젊은 연령대에서도 심각한 폐렴으로 입원하는 경우가 종종 나오고 있다.”

백재중 과장은 무엇보다 노인 요양시설 집단감염이 걱정스러운 추세라고 말했다. 겨울마다 고령층의 상당수가 독감에 의한 폐렴으로 사망에 이른다. “65세 이상이라면 독감 백신을 꼭 맞고 의심 증세가 나타났을 시 병원에 가서 검사와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다”라고 조언했다.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증상이 나타난 후 48시간 내에 복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마이코플라즈마 폐렴, 대다수는 잘 나아

본래도 겨울철이면 아이들 사이에서 호흡기 질환이 유행하지만, 2023년에는 독감에 마이코플라즈마 폐렴까지 겹쳐 소아청소년과에 환자들이 더욱 몰리고 있다.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은 명칭은 생소하지만 사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앓는 대표적 호흡기 질환 중 하나다. 그동안 3~4년 주기로 유행해왔으며 치료법도 정립돼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의 최용준 과장은 “‘마이코플라즈마’라는 세균이 원인인 세균성 폐렴이다. 상당히 흔하고 별다른 치료 없이 자연스럽게 낫는 경우도 많다”라고 설명했다.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으로 입원하는 환자는 2023년 47주 차(11월19~11월25일)에 288명까지 늘었으나 50주 차에는 253명으로 감소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는 마이코플라즈마 폐렴 환자도 적었다. 2020년 50주 차에는 입원환자가 30명, 2021년에는 18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2018년(246명), 2019년(510명)과 비교하면 2023년 환자 수가 폭발적으로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최용준 소아청소년과 과장은 “마이코플라즈마 폐렴 환자의 대부분은 (대증요법으로도) 잘 낫는다. 문제는 드물긴 하지만 심각해지는 케이스가 일부 있는데 이 질환의 항생제 내성률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마이코플라즈마 폐렴 치료에는 마크로라이드 계열의 항생제가 1차적으로 쓰이는데 약이 잘 듣지 않는 내성 비율이 한국에서는 50~80%로 보고된다. 그렇다고 치료법이 없는 건 아니다. 12월8일 질병관리청의 전문가 브리핑에 참석한 양현종 대한소아알레르기호흡학회 총무이사는 “1차 약제에 대한 내성률이 50% 정도로 보고되지만, 그때는 2차 약제(다른 계열 항생제)를 시도해볼 수 있으며 충분히 치료가 잘 되는 질병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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