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자기검열은 모순적인 말이다. 외부의 힘이 두려워 기자가 자기검열을 한다면 언론에 부여된 주요 규범적 역할인 '권력 감시'를 수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 역시 자기검열 없이 권력을 비판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유명한 ‘펜타곤 페이퍼 사건’ 판결문(New York Times vs. United States, 1971)은 “언론은 정부의 비밀을 드러내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보호된다. 오직 자유롭고, 속박받지 않는 언론만이 정부 안에 있는 속임수를 폭로할 수 있다”라고 명시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전국 기자 2011명을 설문조사하고 응답자 중 18명을 심층 인터뷰해 발표한 '제16회 언론인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특별히 기자들의 자기검열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띈다.
자기검열의 요인으로 우선 생각해볼 지점은 기자 대상 괴롭힘이다.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한 기자는 여성 관련 범죄에 대해 보도했다가 기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소위 ‘박제 사이트’에 기사가 올라가 공개 모욕을 당한 것은 물론이고, 본인에 대한 비방 참여를 부추기는 온라인 게시물로 인한 이른바 온라인 조리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여성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꾸준히 관련 보도를 해온 해당 기자는 괴롭힘이 두려워 이제 관련 정책 보도를 자제한다고 털어놓았다. 기자를 대상으로 한 악의적 고소·고발의 증가는 특히 관심 가질 만한 자기검열 요소다.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29.7%) 중 실제로 고소·고발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이는 23.7%로 결코 무시할 수치가 아니다. 언론의 잘못으로 인한 고소·고발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기자들이 경험하는 고소·고발의 상당수는 권력이 기자의 입을 닫게 하려는 목적을 띠고 있다. 정책 비판 기사를 썼다가 부처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등 오랜 시달림 끝에 결국 승소했다는 한 기자는 소송 이후 정부 비판적 기사를 쓰면 피곤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리 ‘톤다운’을 한다고 말했다.
괴롭힘 당한 언론인 중 23.7%, 고소·고발 경험
정부 부처로부터 소송당한 경험이 있는 위 기자의 사례와 연결해 살펴볼 자기검열 요소는 정부나 정치권의 영향력 증가다. 언론 자유를 직간접으로 제한하는 요인을 물으니(복수 응답) 50.0%가 정부나 정치권을 꼽아 광고주(62.4%)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격년에 한 번 실시하는 기존 조사에서 보통 4~5위권에 머물렀던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언급이 갑자기 많아진 것이다. 2023년 8월 〈기자협회보〉가 한국기자협회 회원 9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3.2%가 지난 정부에 비해 이번 정부에서 언론 활동이 자유롭지 않다고 답한 결과와 연결해 해석할 여지도 있다. 즉 기자들이 정부에 반하는 기사로 불편한 일을 겪기 싫어 자기검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외부 압력에 의한 기자들의 자기검열이 일상화할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은 ‘정부를 비롯한 이 사회의 다양한 권력을 감시할 주체가 사라진 민주주의’를 겪어야 하는 시민들이다. 권력의 속임수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최근 누군가 ‘군사정권 때는 기자들이 감옥 갈 각오로 기사를 썼는데 요즘 기자들은 용기가 없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권력 감시를 위해 기자들이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면 그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 필자는 ‘제16회 언론인 조사’에 참여했으며 이 칼럼에 인용된 심층 인터뷰 내용에는 보고서에 실리지 않은 부분도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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