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부국 중 하나인 카타르가 하마스의 가자지구에 수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놀라운 일은 이 자금 지원이 이스라엘 정부의 ‘적극적 용인’하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카타르는 이른바 ‘걸프 국가(페르시아만 주변의 비교적 부유하고 안정적이며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춘 나라들)’의 일원이지만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공감해온 나라다. 하마스(지난 10월7일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공격해서 1400여 명을 학살한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와도 친하다. 그러나 카타르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CNN(12월12일)은 이스라엘 현지 매체인 '숌림'(Shomrim)과 공동 진행한 이 나라 주요 인사들과의 인터뷰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정부 내 인사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하마스에 대한 카타르의 현금 지원을 계속 허용해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CNN 취재에 따르면, 카타르 측은 지난 2018년부터 매달 1500만 달러 정도의 현금을 가방에 넣어 가자지구에 전달했다. 이 가방을 든 카타르 사람들은 이스라엘 영토를 경유해 가자지구로 들어갔다. 이 같은 현금 흐름 경로는, 카타르 정부와 이스라엘 정부 사이의 수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가능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정부가 카타르의 사실상 하마스 지원을 허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2023년 12월12일, 이스라엘 포병 부대가 가자지구 국경 근처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다. ⓒREUTERS
2023년 12월12일, 이스라엘 포병 부대가 가자지구 국경 근처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다. ⓒREUTERS

네타냐후 총리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

〈뉴욕타임스〉, CNN 등 해외 언론들은 대체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분열을 심화시키기 위해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을 사용한 것으로 본다.

팔레스타인의 정치 세력은 PA(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하마스로 갈라져 있다. PA는 서안지구(이스라엘의 합법적 영토의 동쪽에 있지만, 이스라엘군에게 점령당한 상태), 하마스는 가자지구(이스라엘 영토의 서남쪽과 접경)를 각각 통치하고 있다.

그동안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의 합법적 영토인 서안지구 곳곳에 자국 시민들과 군대를 침투시켜 수많은 ‘정착촌’을 건설해왔다. 서안지구를 이스라엘 영토로 합병하기 위한 수순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정부엔 골칫거리가 있다. 지난 1993년 미국 백악관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체결된 오슬로 협정이다. 이 협정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자국 시민들을 서안지구에서 철수시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건설하도록 협조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승인해야 한다. 이른바 ‘두 국가(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법’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오슬로 협정을 이행하기는커녕 서안지구에 불법적인 정착촌 건설을 강행했다. 이에 따라 ‘협정을 이행하라(=정착촌의 이스라엘인들을 본국으로 철수시키라)’는 전 세계적 압박을 받아왔다.

이스라엘 정부가 이런 압박에 맞서 당초의 야욕(서안지구 합병)을 실현시키려면 ‘팔레스타인 측에 대화 파트너가 없다’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PA의 라이벌인 하마스가 적당히(!) 강해지는 것이 필요했다. PA가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유일 세력’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정도만큼만.

적당히 강력한 하마스를 원했건만

형식상으론 PA가 팔레스타인 지역 전체(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책임자였다. 이런 PA가 지난 2017년 가자지구(하마스가 운영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임금 지급을 끊었다. 이를 계기로 카타르가 가자지구에 자금을 지원하게 되었다. 카타르로선 가자지구 공무원 임금, 상하수도나 발전소 같은 인프라를 보전해 이곳 주민들이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돕기 위한 조치였을 터이다. 하마스의 약화를 노리는 PA는 카타르의 자금 지원에 반대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이스라엘 총리였던 네타냐후는 이를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적극 지지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P Photo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P Photo

하마스가 PA에 맞설 정도로 강해야 팔레스타인의 분열이 유지될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이 분열되어야 이스라엘 정부는 ‘오슬로 협정’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대의명분을 쌓을 수 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두 국가 해법)’ 건설을 차단해서 서안지구를 이스라엘로 합병할 수 있다. 어쩌면 하마스를 돈으로 길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뉴욕타임스〉(12월10일)는 이를 ‘네타냐후의 도박’으로 평가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강력한 하마스(이스라엘을 위협할 정도로 강해지면 안되지만)가 (가자 지구의) 평온을 유지하는 한편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에 대한 압박도 줄일 수 있다는 쪽에 베팅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공격에 관심과 능력이 없다고 오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보 당국자들은 하마스가 카타르 지원금의 일부를 군사적 목적에 전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에선 ‘국가 안보의 수호자’로 자처했던 네타냐후 총리가 오히려 하마스를 지원해 10·7 참사를 자초했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고, 여러 언론들은 전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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