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쯤 들었던 ‘캐나다 멀로니 총리’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캐나다의 보수당이 1988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집권 후 멀로니 총리는 세제 개혁을 통해 제조업에 한정했던 부가세를 모든 업종으로 확대했다. 누적된 재정적자를 타개하기 위해서였다. 세제 개혁 2년 뒤인 1993년 총선에서 멀로니 총리의 보수당은 단 2석을 얻으며 참패했다. 당시 자유당은 연방부가세 철폐를 공약했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집권 후 장 크레티앵 총리는 나중에 이 공약을 폐기했다. 재정적자를 우려해서다. 1997년 캐나다 재정은 흑자로 전환됐고, 자유당은 정권을 연장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물었다. “멀로니와 크레티앵 중 누가 소신 있는 정치인인가?”
18년 전에 들은 이야기였지만 기억에 남았다. ‘선거와 국가적 어젠다’ 하면 저 일화가 떠오른다. 국민연금이나 세금 정책 같은 것들. 선거 때만 되면 의제로 떠오르지만 대개는 표를 잃을 만한 방향으로 전개되지는 않기 마련이다. 돈 더 내라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까. 그럼에도 어떤 국가적 어젠다는 치열한 논쟁을 거쳐야 한다. 각 정당은 자신들의 세계관에 따라 정책 방향을 다투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타협은 불가피하다. 충분한 논의 후 이견을 조정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불쑥 튀어나온 ‘김포 서울 편입론’ 혹은 ‘메가 서울’(서울 확장론)은 어떤가. 수도권은 전체 국토의 12%이고, 여기에 50% 넘는 인구가 몰려 있는데, ‘메가 서울’은 미래를 위한 계획인가. 정확한 사실관계를 따지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제기된 건지도 의심스럽다. 당장 홍준표 대구시장·유정복 인천시장·김태흠 충남도지사 등 여권 광역단체장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11월2일 윤석열 대통령은 제1회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서 “지역이 발전하고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 그 합이 바로 국가의 발전과 경쟁력”이라고 했다. 그날 국민의힘은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논의하는 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엇박자가 심하다. 이 어젠다만이 아니다. 같은 날, 윤 대통령은 대덕연구개발특구 50주년 미래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돈이 얼마가 들든지 제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2024년도 정부 R&D 예산안은 16.6% 감소하는 걸로 나와 있다. 대통령의 진심은 어느 쪽인가? 이번 호에서 선거 앞 ‘메가 서울론’을 들여다보았다. R&D 예산 감축 ‘미스터리’도 짚었다. 대통령의 소신이 무엇인지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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