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담론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이는 강준만 교수(전북대)였다. 1995년 〈김대중 죽이기〉를 들고 나온 그가 주목한 것은 ‘개인 김대중’이 아닌 ‘김대중 현상’이었다. 그는 우리 사회의 김대중 혐오증 기저에 집단적 편견과 음모가 깔려 있음을 갈파했다. 그것이 겨냥한 것은 호남이었다. ‘김대중 죽이기’는 곧 ‘전라도 죽이기’와 동의어였다.

때는 바야흐로 DJ의 정계 복귀를 둘러싸고 온갖 저주와 비난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P 연합이 성사되면서 비난은 극에 달했다.    DJP 연합을 성사시킨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것은 황태연 교수(동국대)였다. 황 교수는 호남·충청 등 역사적·사회적으로 소외되어온 지역을 ‘내부 식민지’라 명명하면서 이들 지역민과 영남 지역 서민이 ‘소외 지역 연합’을 형성해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지역패권의 나라〉).

 
그로부터 김대중=지역주의 담론은 좀 더 노골적인 양상을 띠었다. 당시 독일 유학 중이던 유시민(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유권자의 전략적 투표행위를 감안할 때 DJ가 아닌 제3후보를 내세워야만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게임의 법칙〉). 당대의 이데올로그들이 뛰어든 이 논쟁은 그해 12월 끝이 났다. 그러나 DJ가 승리했다고 지역주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김대중 담론’은 그로부터 5년 뒤 ‘노무현 담론’으로 다시금 불붙는 궤적을 밟았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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