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펀드’는 기업의 재무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환경, 인권, 기업지배구조 등)까지 고려해서 투자하는 자산운용 상품이다. 고객들이 맡긴 돈으로, 사회적 가치를 잘 지키는 ‘좋은 기업’ 주식을 사거나 혹은 ‘나쁜 기업’에 투자한 뒤 주주행동을 통해 경영 개선을 요구한다. 물론 ESG 펀드의 규모가 작다면 기업들로부터 무시당할 것이다. 그러나 펀드가 보유한 자금 규모가 경영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크다면, 기업들은 ESG 펀드가 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경영에 반영하게 된다.

지난 수년 동안 ESG 업계에서 영향력을 키워온 사회적 가치 중 하나가 바로 ‘성평등(젠더 다양성)’이다. 성평등이 준수되는 기업에 주로 투자한다. 이런 펀드 중 하나로 미국 증시에 상장되어 있는 ‘SHE’의 시가총액이 2억 달러를 웃도는 등 ‘성평등 펀드’가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미 만만치 않다. 유진투자증권은 9월12일 발간한 ESG 투자 관련 보고서(〈여성과 여성기업〉)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한국 경제에서 여성의 지위를 진단했다.

성별 임금 격차는 축소 추세

이 보고서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추계’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인구’는 1255만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별도의 연도 표시가 없으면, 이하 통계수치는 모두 2022년 기준). 여기서 ‘경제활동인구’는 만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취업자와 실업자(일자리를 가지려 하지만 취업하지 못한 사람)를 합한 수치다. 이미 취업 중이거나 일자리를 구하는 여성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만 15세 이상 여성 중 경제활동인구의 비율) 역시 54.6%로 OECD 평균(53%)보다 오히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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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성기업(여성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기업)’의 수는 2022년에 3만3000개 늘어나는 등 모두 166만개(비중은 38.3%)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 및 여성기업 성장이 확산되는 것”이라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그러나 여성기업들이 일부 업종에만 쏠려 있는 것은 문제다. 여성기업 가운데 51.5%가 ‘도소매업과 숙박 및 음식점업’으로 분류된다. 제조업과 건설업은 각각 3%, 4.5%에 불과하다.

여성 임금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2022년 현재 1만8113원으로 남성(2만5866원)의 70%에 불과했다. 다만 이 비율이 2010년의 61.6%에서 2022년(70%)까지 8.4%포인트 증가하는 등 성별 임금 격차가 축소되는 추세인 것으로, 이 보고서는 평가했다.

여성들의 관리직 진출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급 이상 국가공무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2018년 16.2%에서 2022년 23.2%로 7.0%포인트 증가했다. 그러나 기업 부문의 관리직에서 여성 비중의 증가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공공기관, 지방공사, 공단 및 500인 이상 민간기업’의 관리자 중에서 여성 비율은 2018년 20.6%에서 2022년 21.7%로 1.1%포인트 상승했다. 민간기업(규모 1000명 이상)의 여성 임원 비율도 2018년 10.1%에서 2022년 12.4%로 2.3%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가족부의 방점은 ‘여성’이 아니라 ‘가족’

보고서는 정부의 여성 정책과 관련, “2024년 여성가족부 예산안은 약자 복지와 저출산 대응에 집중 투자하는 것으로 편성되었으며 총 1조7153억원으로 전년 대비 9.4% 증가”했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편중된 예산으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평가했다.

보고서가 아쉬움을 표시한 ‘편중성’은 내년 여성가족부 예산의 69.8%(1조253억원)가 ‘가족 정책(한 부모 가정 지원, 아이 돌봄 지원 등)’에 편성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일각에서 반발하는 ‘양성평등 정책’엔 예산의 14%(2407억원)가 배정되어 있을 뿐이다. ‘가족정책 예산’은 올해보다 1707억원 늘어나지만, ‘양성평등 정책’ 예산은 그나마 62억원 깎였다.

내년 여성가족부 예산은 총예산(656조9000억원)의 0.25% 정도에 불과한데, 그중에서도 14%만이 양성평등에 배정된 것이다. 이 비율은, ‘페미니즘 정부’로 알려진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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