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를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이 영국 언론에서 나왔다. KT, 포스코 등 ‘소유분산 기업’의 대표 자리에 대한 정부‧여당의 개입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기업들의 가치(주가)가 실제 실력보다 낮게 평가받는 현상을 의미한다.
〈파이낸셜타임스〉 서울지국장인 크리스천 데이비스 기자는 ‘검사 출신 대통령이 한국 기업들의 상공에서 부유하고 있다’란 제목의 칼럼(8월23일)에서, 소유 분산 기업들의 대표 자리를 둘러싼 시비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관계자들의 말을 전했다.
대통령의 기업인 사면, “흥미롭다”
이 칼럼에서 데이비스 지국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광복절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명예회장, 이중근 전 부영그룹 회장 등 기업인 12명을 특별 사면한 것과 관련, “한국에선 유죄 판결을 받은 기업인과 정치인을 사면하는 관례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지만, 특히 이번 사면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intriguing)”라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른바 “강골 검사” 출신이며 “기업 비리 수사로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총괄하기도 했다. 데이비스 지국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 역시 “정치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집행자로서의 명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며, 익명의 경영자로부터 “한국 대기업들은 윤 대통령을 정말 무서워한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썼다.
그는 이 칼럼에서 한국 검찰과 기업 간의 복잡한 관계를 “한국 발전의 토대가 된 국가 주도 자본주의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재벌’로 알려진 가족 소유 대기업은 국가로부터 재정적·정치적 지원을 받았다. 그 대가로 재벌들은 국가의 (경제개발) 목표를 지원하는 데 자원을 동원해야 했다. 정치 지향적 엘리트 검사 집단이 집행하는 불투명한 법과 규제는 기업집단들이 정부의 지시를 따르도록 보조했다.”
의심스러운 ‘KT 수사’의 의도?
데이비스 지국장은 ‘소유 분산 기업(주인 없는 기업)’에 대한 지난 몇 달 동안의 검찰 수사 역시 ‘윤석열 정부의 지배구조 개입’ 시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
포스코, KT, 4대 금융지주 등 과거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거대 기업들은 지분의 80~90%가 셀 수 없이 많은 소수 주주들에게 분산되어 있다. 정부도 지분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소유 분산 기업’들엔, 자신의 경영 의지를 소유권에 기반해서 관철할 ‘주인’이 없다. 주인이 너무 많기 때문에 주인이 없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정치‧관료 엘리트들은 ‘소유 분산 기업’의 대표 자리와 이에 딸린 직위들을 마치 전리품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가 가진 인허가권 및 감독권의 행사 가능성만으로도 이 기업들을 떨게 만들어 자리(들)를 내놓게 강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에겐 검찰 수사라는 강력한 무기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데이비스 지국장은 KT에 대해 “이사회 추천 대표 후보가, 정부의 의지에 부응하는 국민연금공단(KT의 최대 주주)에 의해 거부된 뒤 1년 동안 최고 경영자 공백 상황인 민간 통신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일감 몰아주기 등의 혐의로 지난 5월 KT 본사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7월엔 하청업체 대표를 구속하고 KT 전현직 대표들에 대해서도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
데이비스 지국장은 다른 ‘주인 없는 기업’들 사이에서도 다음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며, 포스코 전직 이사의 말을 다음과 같이 간접화법으로 인용했다.
“포스코 경영진은, 정부가 포스코의 주가를 2020년 저점 대비 3배 이상 끌어올린 최정우 회장의 내년 연임을 막기 위한 구실을 찾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제적인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한 KT와 달리 한국 정부가 포스코의 지배구조에 간섭하려는 시도는 포스코 지분의 40%를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포스코 지배구조 간섭은 외국인 투자자 분노를 촉발”
포스코의 한 대형 외국인 투자자는 데이비스 지국장에게, 포스코 경영진의 우려 사항을 알고 공유하는 중이며, 정부의 간섭이 한국 상장 기업들에 나타나는 지속적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데이비스 지국장은 대통령실이 ‘정부가 지분을 갖지 않은 기업의 경영이나 지배구조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란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지적하며, 범죄 사실이 유죄로 입증된 경영진이 힌국 산업계의 지휘부에 다수 포진한 상황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들이 합법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 ‘한국 주식회사’에 바람직한 광경이 아니다. 그들의 유죄가 억울한 것이라면, 한국인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은 법치주의의 보호를 충분히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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