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연설문은 중요한 문서다. 신년 연설부터 3·1절, 4·19, 5·18, 현충일, 광복절 등 주요 계기마다 대통령의 생각을 담는다. 대통령의 연설은 정부의 방향을 나타내고, 국민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일 삼아 찾아 읽는다. 읽기 싫어도 읽는다.
1년 전 광복절 77돌 경축사를 다시 읽어보았다.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는 것을 전제로 경제와 민생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1인당 소득을 3000달러까지 올려주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을 연상케 했다. 그 정책은 실패했다. 1년 전에 대통령이 강조했던 ‘담대한 구상’은 이번 광복절 78돌 경축사에는 한 줄 들어가는 데 그쳤다. 또한 1년 전 연설에서는 집중호우를 언급하며 ‘재난은 늘 서민과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피해와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더 세심하고 더 철저하게 챙기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이번 광복절 연설에서는 ‘재난’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한·일 관계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띈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일본을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으로 규정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배상 등 과거사 해법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연설 이후 한·일 관계는 알다시피 급변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는 여섯 차례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제3자 변제 방식으로 봉합되었다. 과거사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을 덮은 채 한·일 협력 강화를 내세워왔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라고 규정했다. ‘이웃’에서 ‘파트너’로 표현이 나아갔다. 민감한 한·일 안보 협력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했다. ‘한·미·일 3국 간에 긴밀한 정찰자산 협력과 북한 핵·미사일 정보의 실시간 공유’ ‘일본이 유엔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 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번 광복절 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반공과 북한의 위협을 강조했다.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왔다”라고까지 말했다. ‘공산 전체주의’라는 단어는 낯설고, 대통령의 인식이 어디에 머물러 있나 의아하다. 대통령의 연설은 정책이 된다. 대통령의 과격한 ‘워딩’은 한국 사회를 또 어디로 끌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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