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작은 전기차 업체의 시가총액이 미국 포드와 GM을 추월했다. 지난 8월15일 미국 나스닥에 첫 상장된 베트남 전기차 업체 빈패스트(VinFast)의 주가는 주당 10달러로 시작했다. 그러나 개장 직후 22달러로 폭등하더니 마감 때는 37.06달러까지 치솟았다. 시가총액(주가*총주식수) 기준으로, 그날 빈패스트의 가치는 850억 달러에 달했다. 같은 날,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전통적 강자인 포드와 GM의 시가총액은 각각 480억 달러, 460억 달러에 불과했다.

빈패스트 850억 달러, 포드 480억 달러

이로써 베트남 최고 부자이자 빈패스트의 회장인 팜 녓 브엉(Pham Nhat Vuong)의 재산은 서류상 390억 달러(8월15일 기준)나 늘어났다. 〈포브스〉는 빈패스트 상장 덕분에 브엉 회장이 아시아 5번째 갑부로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의 빈패스트 판매점 앞에 주차되어 있는 VF8 전기차. ⓒREUTERS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의 빈패스트 판매점 앞에 주차되어 있는 VF8 전기차. ⓒREUTERS

빈패스트는 2017년 6월 베트남에서 설립되었다. 운영 본부는 베트남에 있지만 본사는 아시아 금융허브인 싱가포르에 뒀다. 2021년 12월, 첫 번째 전기차 모델인 ‘VFe34’ 100대를 현지 고객에게 인도했다. 베트남에서 최초로 제조, 판매된 전기차다. 2022년 말엔 VF8 모델 999대를 미국에 출시했다. 지난 7월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전기차 공장을 착공했다. 이 공장은 2025년부터 미국 현지 생산을 개시할 계획이다. 연간 15만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브엉 회장은 빈패스트를 나스닥에 상장하기 위해 편법을 동원했다. 나스닥에 이미 상장되어 있는 사실상 페이퍼 컴퍼니에 빈패스트를 합병시킨 것이다. 비상장 스타트업들이 복잡하고 엄격하며 느리기 짝이 없는 미국 증권거래소의 상장 절차를 일거에 해치우기 위해 널리 사용하는 방법이다. 일종의 우회상장이다.

높은 주가의 핵심적 이유 : 물량 부족

빈패스트의 주가가 거대 카메이커들을 제친 것은 놀라운 일인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일단 빈패스트의 높은 주가는 전기차 산업과 ‘베트남이란 생산 기지’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를 보여준다. 중국 상하이 소재 컨설팅 업체인 오토모빌리티 CEO인 빌 루소는 BBC(8월16일)에 이렇게 말했다. “투자자들은 미래가 전기차에 달려 있으며, 저비용 생산이 가능한 동아시아 국가가 미국의 경쟁자로 떠오를 것이라고 믿는다. 그 동아시아 국가로는, 지정학적으로 볼 때, 중국보다 베트남이 유력하다.”

더욱이 빈패스트는 이미 연간 30만대의 전기차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빈그룹(브엉이 통솔하는 베트남 최대 기업집단)이란 든든한 자금줄을 갖고 있다. 지난 상반기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850대의 VF8 모델을 실제로 판매하기도 했다.

지난 7월28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몬큐어에서 열린 빈패스트 현지 제조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이 회사 CEO인 레 티 투 투이(왼쪽)와 로이 쿠퍼 주지사(오른쪽). ⓒAP Photo
지난 7월28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몬큐어에서 열린 빈패스트 현지 제조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이 회사 CEO인 레 티 투 투이(왼쪽)와 로이 쿠퍼 주지사(오른쪽). ⓒAP Photo

그러나 이 회사가 지금의 높은 주가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없다. 빈패스트 주식 폭등의 가장 큰 이유는, 시장에 나온(매입할 수 있는) 주식 물량 자체가 지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총주식 수가 23억 주에 달하는 가운데 현재 거래 가능한 물량은 수백만 주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회장인 브엉이 빈패스트 지분의 99%를 직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 증시에서 전기차 등 신기술 관련 기업의 주식 가격이 상장 초기에 폭등했다가 곧바로 폭락하거나 점차적이지만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이런 회사 중 상당수는 빈패스트와 마찬가지로 페이퍼 컴퍼니와 합병을 통해 우회상장에 성공했었다.

상장 다음날 19% 하락

더욱이 전기차 부문의 선두주자인 미국 테슬라와 중국 BYD가 세계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가격인하 경쟁을 펼치고 있는 시점이다. 미국의 유력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쿼츠〉(8월16일)는 “2023년 상반기에 테슬라가 88만8000대를 고객에게 인도한 반면 빈패스트의 그것은 1만1300대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선두주자들과 빈패스트 사이의 격차가 크다며 “손실을 줄이고 현금 보유량을 늘리라”고 이 회사에 권유했다. 빈패스트는 올 상반기에 5~6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첫 상장 다음날(8월16일) 빈패스트의 주가는, 예상대로(!), 19%나 폭락했다(종가로 주당 30.11 달러). 그러나 시가총액은 700억 달러로 여전히 포드와 GM보다 훨씬 높았다.

온라인 투자정보 사이트인 모틀리 풀(Motley Fool)은 8월16일 게시물에서 빈패스트가 장차 한국과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처럼 크게 성장할 수도 있겠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이 투기적 성장주(speculative growth stock)에 주목하는 투자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앞으로 도래할 험난한 날들에 대비하기 위해 안전벨트를 바짝 조여라.”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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