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공모자들의 범죄 행위에 대한 잭 스미스 특검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악용한, 복잡하고 긴 권력 이양 절차

미국 대선은 간접선거다. 예컨대 2020년 11월3일, 미국의 각 주(州)에서 투표한 일반 유권자들은 바이든이나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직접 선출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실제로 한 일은 ‘바이든을 찍을 선거인단(electors)’이나 ‘트럼프를 찍을 선거인단’을 뽑은 것이다.

각 주별로 인구 규모에 따라 선거인단의 수가 할당되어 있다. 이날 선거에서 시민들로부터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쪽이 해당 주의 선거인단 전부를 독식하게 된다. 예컨대 어떤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이 20명이라면,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각 자당의 선거인단 20명을 선정해둔다. 공화당 후보가 시민들의 표를 더 많이 얻는다면, 공화당 선거인단 20명만이 '선거인단 투표'에 참여해 미국의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된다. 일반 유권자들의 투표 결과를 집계하면, 어느 쪽 선거인단이 많이 뽑혔는지(즉, 누가 다음 대통령인지) 곧바로 알 수 있다.

2021년 1월6일, 미국 국회의사당으로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 ⓒAFP PHOTO
2021년 1월6일, 미국 국회의사당으로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AFP PHOTO

이 절차를 지난 미국 대선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다. 2020년 11월3일 선거의 결과로 뽑힌 각 주의 선거인단은 1개월여 뒤인 12월14일, 자신들이 거주하는 주에서 소속 정당이 지명한 후보에게 투표했다. 요식 행위에 가깝지만 이 선거인단 투표가 공식적인 미국 대통령 선거다.

각 주는 선거인단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연방 상원의회 의장에게 보낸다. 미국에선 부통령(당시엔 마이크 펜스)이 상원의장을 겸직하게 되어 있다. 상원의장은 선거인단의 투표로부터 20여 일 뒤(지난 대선 당시엔 2021년 1월6일), 자신이 주재하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투표용지를 개표, 집계한다. 신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인증되는 최종 절차다. 여기서 과반수 이상 득표자가 공식적으로 ‘대통령 당선자’ 직위를 갖게 된다.

정권 교체를 저지하는 방법

한국의 대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긴 권력 이양 절차다. 연방국가인 미국의 역사의 특수성을 반영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이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 지난 미국 대선에서 입증되었다.

지난 4월4일, 성매매 여성의 입막기용으로 회사 돈을 지급한 뒤 회계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되어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으로 들어서는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AFP PHOTO
지난 4월4일, 성매매 여성의 입막기용으로 회사 돈을 지급한 뒤 회계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되어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으로 들어서는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AFP PHOTO

예컨대 선거인단의 지위를 흔들거나 바꿔버릴 수 있다. 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시민들이 뽑은 선거인단의 구성이 완료되려면, 해당 주 의회나 정부의 임명(혹은 승인)이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론 법률적 시비가 따르겠지만) 주 의회와 정부가 제멋대로 선거인단을 해임하거나 교체해도 괜찮은 것으로 관련 법률을 해석할 수도 있다. 또한 연방 상원의장(부통령)이 선거 결과를 최종 인증하는 상하원 합동회의를 진행하지 않으면, 신임 대통령이 백악관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미스 특검에 따르면, 트럼프와 공모자들은 이런 방법들을 동원해서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시도했다.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아서.

권력 이양 저지 시도 1 _ 부정선거 주장 확산시키기

트럼프와 공모자들은 11월3일 선거가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정말 부정선거였다면, 주 의회나 정부가 '부정선거로 뽑힌 선거인단'을 확정해서는 안 된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스미스 특검은 기소장 첫 페이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피고(트럼프)는 자신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권력을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투표 이후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부정행위 때문에 대선 결과가 바뀌었고, 실제로는 자신이 이겼다는 거짓말을 퍼뜨렸다.” 특검은 “그 주장은 허위였고, 피고도 허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권력 이양 저지 시도 2 _ 주 의회 압박해서 선거인단 바꾸기

트럼프가 아슬아슬하게 패배한 7개 주(애리조나, 조지아, 미시간, 네바다, 뉴멕시코,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에서 선거인단을 바꾸려 시도했다. 실제로 트럼프 측은 앞의 7개 주에서 기존의 선거인단을 대체할 사람들의 명단까지 확정해둔 상태였다. 트럼프의 법률 고문인 루디 줄리아니는 주 하원 의장들에게 전화로 선거인단을 교체하라고 압박했다. 이 명단을 상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말을 듣지 않는 주 의회 의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소셜미디어에 노출해서(이른바 ‘좌표 찍기’), 그들이 수천 통의 항의와 욕설 문자메시지를 받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주 의회나 정부 측에선 부정선거의 증거는 물론 법원의 절차 중단 명령도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 측의 강요를 따를 수 없었다. 자칫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출두할 연방법원 앞에서 한 여성이 8월2일 '트럼프, 또 기소당하고 또 기소당한다'라는 내용의 배너를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Xinhua
트럼프가 출두할 연방법원 앞에서 한 여성이 8월2일 '트럼프, 또 기소당하고 또 기소당한다'라는 내용의 배너를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Xinhua

권력 이양 저지 시도 3 _ 법무부가 수사할 것이라며 압박하기

트럼프 측은 주 의회와 정부가 선거인단 교체를 거부하자, 방법을 바꿨다. 기소장에 따르면, 표적으로 삼은 주들에 “법무부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중대 의혹 사항들을 파악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만약 한 주라도 이 거짓말에 속아 유권자들이 뽑은 선거인단을 무효화하거나 바꿨다면 미국에서 심각한 정치적 변란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권력 이양 저지 시도 4 _ 마이크 펜스 설득하기

주들이 거부한다고 해도 트럼프 측은 믿을 만한 마지막 보루가 있다고 생각했다. 신임 대통령을 최종 인증하는 상하원 합동회의를 저지할 수 있는 권력자가 트럼프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바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 겸 연방상원의장. 트럼프는 2020년 12월 말부터 펜스에게 직접 ‘선거 결과를 인증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펜스로서는 국가체제에 대한 반역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는 행위는 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게 선거 결과를 바꿀 권한은 없는 것 같다”라며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자 트럼프 측은 이미 실패하고만 ‘법무부가 중대 의혹 사항들을 발견해 부정선거 수사에 들어갈 것’이고 ‘부통령은 선거 결과를 변경할 합법적 권한을 갖고 있다’ 같은 논리까지 동원해서 펜스를 설득하려 했다. 이 또한 거짓말이다. 그러나 펜스는 이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권력 이양 저지를 위한 마지막 비상구 _ 의사당으로 돌진하기

펜스로부터도 ‘배신’당했지만 트럼프와 공모자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2021년 1월6일의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조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최종 인증되는 꼴을 앉아서 구경할 수는 없었다. 기소장에 따르면, 트럼프와 공모자들은 당일 국회의사당 주변에 모인 군중들이 “국회의사당으로 가서, 펜스 부통령을 압박하는 한편 인증 절차를 방해하”도록 유도했다. 트럼프는 이날 오전 백악관 앞에서 시위대에게 “의사당으로 가라”고 외쳤다.

2021년 1월6일, 미국 국회의사당 주에서 대통령 인증을 위한 상하원 합동회의를 중단하라며 시위를 벌이는 트럼프 지지자들 ⓒAFP PHOTO
2021년 1월6일, 미국 국회의사당 주에서 대통령 인증을 위한 상하원 합동회의를 중단하라며 시위를 벌이는 트럼프 지지자들.ⓒAFP PHOTO

이날 오후 1시쯤 국회의사당으로 난입해 점거한 군중들을 퇴거시킬 수 있는 사람은 트럼프밖에 없었다. 측근들마저 그에게 점거자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성명서를 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요청들을 여러 차례 거절하다가 오후 4시를 넘겨서야 “귀가하라”는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대해 특검 측은 트럼프와 공모자들이 국회의사당의 “혼란”과 “폭력”을 “악용(exploit)”해서 부정선거 주장을 확산시키는 한편 의원들이 인증 절차를 연기하도록 시도했다고 기소장에서 주장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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