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외교부 장관이 공식 석상과 사적 모임에서 자취를 감춘다. 한 달 뒤 돌연 외교부가 그의 사퇴 소식을 알리고, 신임 장관 후보의 이름을 발표한다.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사태다. 이런 일이 실제로 중국에서 벌어졌다.
중국의 ‘명목상’ 입법 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7월25일, 친강 외교부장을 해임하고 그 후임으로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을 임명한다고 밝혔다.
화려한 등장과 기이한 추락
중국의 외교부장은, 한국이라면 외교부 장관에 해당한다. 중앙정치국 위원은 당의 한 직책에 불과하다. 그러나 공산당이 항구적으로 집권하는 중국에선 ‘공산당의 최고 외교관’이 외교부장의 상급자다. 왕이는 당분간 공산당 중앙위원(외교 담당)과 외교부장을 겸임할 전망이다. 그는 친강 직전의 외교부장이기도 하다.
올해 57세인 친강은 지난해 12월 중국 외교부장에 임명됐다. 주미 중국 대사로 근무 중이었던 그를 중국으로 부른 사람은, 같은 해 10월에 세 번째 연임을 확정한 시진핑 주석이었다. 나이로나 경력으로나 이례적 발탁이었다. 시진핑이 친강을 특별히 신임한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며 그는 동경과 질투를 동시에 받았다.
친강은 존재감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시진핑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라는 소문 외에도 그에겐 특별히 주목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시진핑의 ‘교시’대로 당당하고 투지로 무장한 ‘늑대 외교관’의 면모는 물론 풍부한 해외 생활에 기반한 세련된 풍모와 서방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박학한 지식도 겸비했다고, 해외 언론들은 평가한다. 실제론 상대방을 위협하면서도 이를 ‘솔직하고 실용적인 태도’로 보이게 하는 재주도 갖고 있었다.
외교부장으로 취임한 친강은 지난 6월10일 방중한 앤서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을 맞는 등 미국의 중국 고립화 정책에 대응하는 데 여념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같은 달 25일엔, 바그너 용병의 실패한 반란 직후 중국으로 날아온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 차관을 만나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날 이후 중국 외교부장을 본 사람이 없다
그날 이후 아무도 친강을 보지 못했다. 외교부장이란 사람이 국빈 방문은 물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같은 중요한 국제회의에도 도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더 이상한 일은 국내외에서 친강의 거취에 대한 호기심이 들끓는 와중에 정작 중국 외교부는 불안한 침묵을 지킬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지난 7월 초에야 중국 외교부는 친강의 부재에 대해 “건강상 이유 때문”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웹사이트의 브리핑엔 그 입장을 넣지 않았다. 기자들이 질문하면 “현재로선 제공할 정보가 없다”라고만 답변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친강의 실종에 대한, 근거 있거나 없는, 소문이 중국 내외에 넘실거리게 된 것은 당연하다. 그의 이름은 중국 최대 검색엔진인 바이두에서 다른 모든 셀러브리티를 제치고 인기 검색어로 떠올랐다. 최고의 인기를 누린 설(說)은 그가 혼외정사로 인해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실종과 겹치는 시기에, 한 인기 TV 프로그램 진행자이며 소셜미디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이 갑자기 사라지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7월25일)는 “지난 몇 주 동안 베이징의 권력 엘리트들은 친강의 실종, 특히 사생활에 관한 소문을 즐겁게 주고 받았다”라고 썼다.
그의 사진이 있던 외교부 사이트엔 “업데이트 중” 문구만
중국 당국이 최고위 관료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도록 검열도 하지 않은 채 손 놓고 보기만 한 것이야말로 이례적이다. 사실 중국 최고위 관료들의 성적 스캔들 자체는 희귀한 일이 아니다. 고위 관료나 유명인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가 몇 달 뒤에야 감찰이나 수사를 받고 있었다고 밝혀지는 것 역시 아주 드물지는 않다. 시진핑 체제에서는 더욱 그랬다.
전인대가 친강 해임을 발표한 7월25일 저녁, 비로소 중국 외교부 웹사이트에서 친강의 프로필이 삭제되었다. 그의 사진과 환영 메시지가 있던 페이지는 “업데이트 중”이란 문구로 대체되었다. 중국 정부는 7월26일 현재까지도 친강이 어디 있는지 혹은 감찰이나 수사를 받고 있는지 등 거취 관련 사항을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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