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 간 유혈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인도 북동부의 마니푸르주에서 촬영된 성폭력 사건 동영상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세계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위터에 공유된 성폭력 사건

7월19일, 강제로 옷을 빼앗긴 여성 두 명이 남성들에게 끌려다니며 성추행을 당하는 내용의 동영상이 트위터에 공유되었다. 여성들이 울부짖으며 호소했지만, 무자비한 폭언과 폭력은 끊임없이 행사되었다. 이 영상이 찍힌 장소는 인도 마니푸르주의 캉폭피(Kangpokpi) 지역으로 밝혀졌다.

마니푸르주에서는 다수 부족인 메이테이와 산악 지대의 소수 부족인 나가, 쿠키 사이의 갈등이 지난 5월부터 유혈 충돌로 확장된 상태다. 7월 중순 현재까지 최소 130명이 사망하고 6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총격, 약탈, 방화, 성폭행 등 끔찍한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7월20일, 인도 수도 델리의 의사당 부근에서 시민들이 '마니푸르를 구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Photo
7월20일, 인도 수도 델리의 의사당 부근에서 시민들이 '마니푸르를 구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Photo

마니푸르주 정부는 지난 2022년부터 힌두교 근본주의 세력인 집권 인도인민당(BJP)에 장악된 상태다. 주 정부는 습지와 삼림, 야생동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산악 지대에 대한 토지조사를 시행하며 이곳의 거주민인 나가족과 쿠키족을 강제 퇴거시켜 왔다. 이는 나가, 쿠키 등 소수 부족들이 기독교 신도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수 부족인 메이테이는 힌두교를 믿는다. 소수 부족들은 지난 4월 원주민부족지도자포럼(ITLF)를 구성해 주 정부와 맞서고 있다.

대법원장이 나서자 가해자 1명 체포

성폭력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휩쓸면서 인도는 발칵 뒤집혔다. 다음날인 7월20일, 인도의 거의 모든 신문들이 이 사건으로 지면을 뒤덮었다. 인도 수도 델리의 연방의회에서는 의원들이 마니푸르 성폭력 사건을 추궁하면서 공식 일정이 중단되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인도를 치욕스럽게 한 사건”이라며 “내 마음은 고통과 분노로 가득하고, 가해자들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니푸르 사태에 대한 그의 첫 발언이다. 모디 총리는 마니푸르 유혈 충돌이 전개된 지난 2개월 동안 이 사태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가해자들이 힌두교도인 메이테이족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7월20일, 인도 마니푸르주의 소수 부족 여성에게 자행된 성폭력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한 시민이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캐리커처를 들고 있다. ⓒAFP PHOTO
7월20일, 인도 마니푸르주의 소수 부족 여성에게 자행된 성폭력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한 시민이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캐리커처를 들고 있다. ⓒAFP PHOTO

찬드라추드 인도 대법원장은 이 사건에 격분한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동영상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라며 모디 정부를 겨냥해서 “가해자들에게 어떤 조치를 했는지 알려주지 않으면 대법원이 움직이겠다”라고 말했다.

그제야 상황이 바뀌었다. 7월20일 오전, 인도 경찰은 동영상의 사건이 지난 5월4일에 벌어졌다는 것을 밝히며 가해자 남성 1명을 체포했다. 경찰이 이 사건을 발생 당시부터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2개월 동안 어떤 수사도 벌이지 않다가 시끄러워지자 단 1명을 체포한 것이다. 동영상엔 다른 가해자들의 얼굴도 선명히 드러나 있다.

쿠키족 마을에서 벌어진 잔혹한 일

소수 부족들을 대변하는 ITLF의 성명서 및 현지 언론의 보도를 통해 사건의 전모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종합하면, 지난 5월4일 메이테이족의 폭도들이 마니푸르주 캉폭피 지역의 한 쿠키족 마을을 습격해서 방화와 폭행을 저질렀다. 쿠키족의 여성 3명과 남성 2명(한 여성의 아버지와 형제)이 마을 외곽의 숲으로 피신하던 중 경찰에게 구조되었으나 이내 폭도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폭도들은 두 남성을 살해한 뒤 여성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가했다.

유혈 충돌로 초토화된 인도 마니푸르주의 마을. 6월21일에 촬영되었다. ⓒAP Photo
유혈 충돌로 초토화된 인도 마니푸르주의 마을. 6월21일에 촬영되었다. ⓒAP Photo

인도에서는 1947년 인도 분할,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1984년 반 시크교 폭동, 스리랑카 내전, 2002년 구자라트 폭동 등에서 성폭행이 상대측에 대한 일종의 무기로 자행되어 왔다. BBC(7월20일)가 그런 사례 중 하나로 든 빌키스 바노라는 여성은 2022년 구자라트주에서 발생한 무슬림 학살 당시 힌두교 폭도들에게 가족 14명을 잃었다. 집단 성폭행도 자행되었다. 모디 정부는 이 사건으로 유죄를 판결받은 11명을 지난해 조기 석방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