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0일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 선거가 있다. 38명이나 되는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과도 정부 시절부터 아프간의 대통령직을 수행해온 카르자이 현 대통령과 압둘라 전 외무장관, 아시라프 가니 전 재무장관 3파전으로 압축되고 있다. 2004년 직접선거 이후 두 번째인 이번 선거는 아프간 정세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하지만 미군 증파로 다시 시작된 2차 아프간 전쟁, 즉 ‘오바마의 아프간 전쟁’이 탈레반의 총공세 속에서 벌어지는 대선이 잘 치러질지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미국에게도 이 아프간 대선은 아주 중요하다. 이 전쟁이 ‘아프간의 자유와 민주주의 건설을 미국이 견인한다’는 전제 아래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선이 제대로 치러지는 것은 미국이 아프간에 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착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탈레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아프간에 정의의 깃발을 꽂았다고 정당화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미국은 이번 대선의 승자와 함께 일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8월9일 CNN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녀는 “아프간은 발전과 진보가 필요한 곳이다. 미국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보장하려 노력할 것이고 우리가 아프간 정부에 기대하는 점이 조금 더 명확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비록 아프간 내부는 전쟁 중이지만 투표도 하고 대선도 치르고 미국의 바람대로 민주주의를 실천한다는 모양새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 같은 바람과는 달리 아프간의 현실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선거의 3강인 카르자이·아시라프 가니·압둘라 후보(왼쪽부터).
현재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카르자이 현 대통령부터 미국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바마 정부는 취임 초부터 카르자이 정권이 부패하고 탈레반 축출에 대한 의지와 능력이 없다며 공공연히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고 언급해왔다. 카르자이 대통령이 탈레반과 같은 파슈툰족 출신으로 탈레반에게 좀 더 강력하게 대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또한 아프간 재건 비용으로 지출되는 막대한 자금이 카르자이 정부 수중으로 들어가면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증발해버리는 아프간의 부패는 미국을 질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카르자이 말고 딱히 다른 대안도 없다. 후보가 38명이나 난립했는데 다 그만그만한 인물인지라 그에 대한 비평을 자제하는 상황이다.

미국이 카르자이 대통령을 믿지 않는 이유

하지만 최근 또 다른 미국의 대안으로 전 재무장관이었던 아시라프 가니 후보가 거론된다. 그는 인류학 박사 출신으로 한때 세계은행에서 일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살았던 그가 어쩌면 미국 정부 입맛에는 맞을 수도 있다. 최근 미국 민주당의 선거 전략가가 아시라프 가니 후보의 캠프에 합류하면서 미국이 아프간 대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한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을 도왔던 제임스 카빌이 지금 그의 선거 캠프에서 맹활약 중이기 때문이다. 아프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카르자이 현 대통령을 자리에서 내쫓기 위해 아시라프 가니 전 재무장관을 미국이 돕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이런 의혹에 대해 카빌은 “나는 개인 자격으로 아시라프를 도와주는 것이지 정부의 뜻에 따라 그를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항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또한 지난 7월23일 제임스 존스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카불의 아프간 선거관리위원회를 방문해 “미국은 어떤 대선 후보도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으며, 향후 대선에서 공정한 게임의 장을 마련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라며 미국의 선거 개입을 부정했다.

이렇게 거듭 부인하고 있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와 리처드 홀브룩 미국 아프간·파키스탄 특사 등 민주당 내 고위 인사와 친분이 두터운 제임스 카빌 같은 중량급 선거 전략가가 아프간에서 활약 중이라는 것 때문에 미국이 항간의 의혹을 거두기는 힘들다. 미국이 만약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요, 이번 대선에서 미국이 지향하는 ‘아프간의 민주주의’ 상징이 되기가 힘들다. 이렇게 해서라도 아프간 전쟁의 정당성을 대외에 과시하고자 하는 미국의 힘겨움이 역력하게 드러날 따름이다.

탈레반 “모든 방법 동원해 대선 방해”

미국의 이런 힘겨움의 원인은 사실 더 큰 곳에 있다. 바로 한창 전쟁 중에 대선이 치러진다는 사실이다. 당초 6월부터 미군 증파가 시작된 것도, 지난 7월 대규모 탈레반 소탕 작전이 전개된 것도 아프간 대선을 겨냥해서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선 전에 아프간의 치안을 안정시켜서 조금은 그럴듯하게 대선을 진행하고자 했다. 조금 더 많은 미군이 투입될 경우 길면 한 달 안에 평정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미국의 바람은 만만치 않은 탈레반의 반격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급기야 아프간 최고 미군 사령관의 “아프간에서는 탈레반이 이기고 있다”라는 회의적인 대답을 들어야 했다. 스탠리 매크리스털 미군 사령관은 선거를 겨우 열흘 앞둔 8월10일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이기고 있다. 탈레반이 전통적 근거지인 남부 지역을 넘어 그동안 비교적 안정됐던 북부와 서부도 위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치열하게 탈레반과 한판을 치르고 난 지휘관의 이 말은 현재의 아프간 상황이 대선을 진행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대변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을 도운 제임스 카빌이 아시라프 가니 후보 캠프에서 맹활약해 ‘미국의 선거 개입설’이 나돈다. 위는 아프간 대선 포스터.
대선에 대한 탈레반의 반격도 나날이 거세져 간다. 그들은 대놓고 이번 대선을 보이콧하라고 선전했다. 7월30일 AFP 보도에 따르면 탈레반은 8월20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거부하고 서방 군대를 아프간에서 몰아내기 위한 지하드(성전)에 참여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탈레반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아프간 대선을 방해하겠다고 공언한 셈이다. 이는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 성명 이후 탈레반은 정부 청사와 경찰서 등에 자살 폭탄 테러범과 무장 괴한을 침입시켜 보안군과 총격전을 벌이며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남부에서도 미군 사상자는 늘어나 ‘단검 작전’이 전개된 7월 미군 45명이 숨졌고, 8월에도 12명이 사망하는 등 최악의 전황을 맞았다. 수도 카불에서 탈레반은 산발적인 로켓포 공격을 주도하며 겁을 주고 카르자이 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까지 탈레반에게 공격받는 일이 발생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8월11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최근 심각한 테러가 자행되고 있지만, 앞으로 아프간의 안정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다. 아프간의 선거가 치러지기 전까지 반군들의 저항이 거셀 것이다”라며 아프간 상황을 인정했다.

이처럼 아프간 내 탈레반의 공격이 동시다발로 계속되자 리처드 홀브룩 아프간·파키스탄 특사는  카불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쟁 중에 선거를 치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번 선거는 안전을 포함해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라고 염려했다. 아프간 선거관리위원회도 현 상황이 계속될 경우 대선을 예정대로 치르기 힘들 수 있다고 걱정한다. 제크리아 바라크자이 선관위 부위원장은 8월10일 “필요한 치안조처가 제때 취해지지 않으면 10개 지역 선거는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선관위 위원 중 한 명인 하뮤윤 하미드 씨는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치안이 제대로 통제가 안 되는 전쟁터에서 투표소를 차려놓고 대선을 치른다는 자체가 사실 코미디이다. 이 선거로 미국을 만족시켜야 하고 아프간도 뭔가 민주주의로 가려고 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서방세계에서 더 많은 재건 비용을 받아낼 수 있다는 것뿐이다. 일반 시민은 관심 없다. 먹고사는 것이 더 힘든 그들에게 종이 한 장 투표한다고 그들의 힘겨운 생활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대선을 제대로 치르려 하지만 수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위는 선거 벽보 앞의 아프간 미군.
선거 이후도 문제이다. 부패와 무능의 대명사인 카르자이 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정치 변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 실망한 아프간인들이 소요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이번 대선의 유력 후보 3인 중 한 사람이자 미국이 은밀히 지원한다는 의혹을 받는 아시라프 후보가 당선할 경우 미국에 대한 시민의 반감으로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타지크족 계열인 압둘라 전 외무장관이 당선하면 아프간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탈레반의 종족 파슈툰족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래저래 대선 후폭풍을 예약해놓은 상태라 말할 수 있다. 아프간에 주둔한 데이비드 헤이트 대령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벌써 아프간 대선을 방해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지만, 사실 대선 이후의 상황이 더 걱정이다. 앞으로도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 정치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무관심은 분노로 바뀔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후유증 심각할 듯

미국은 이렇게 탈레반에 의해 위협받고 주민에게 외면받는 아프간 대선의 해결책으로 더 많은 미군과 나토군을 아프간으로 증파할 계획이다. 매크리스털 장군도 지난 2월 증파와 별도로 9개 여단 규모인 4만5000명을 추가 파병해야 할 것이라고 언론에 말했다. 그럴 경우 미군 규모가 10만명이 되고 이는 이라크에 파견되었던 병력 수준과 맞먹는다. 이에 대해 존스 국가안보보좌관은 8월9일 폭스TV에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전투병력 1만7000명 외에 추가 파병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나토에도 추가 파병을 요청했다. 친미 성향의 안데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미국이 탈레반·알 카에다와의 전투에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유럽 국가의 아프가니스탄 참여 노력을 확대하겠다”라고 밝혔지만 유럽 각 나라의 반응은 나토군의 추가 파병에 냉담하기만 하다. 지난 8년간 아프간 전쟁 비용은 2230억 달러였고 앞으로도 매년 40억 달러씩 소요될 전망인데, 미국 혼자서 짊어지기에는 너무 버거워 보인다. 오바마의 아프간 전쟁에서 한 축을 이루는 아프간 대선은 미국과 오바마를 더욱 외롭고 험난한 길로 몰고 간다.

기자명 시애틀·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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