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만 할리우드 배우들이 7월14일 자정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전날(7월13일), 영화와 TV 업계 배우들을 대표하는 조합인 SAG(영화)-AFTRA(TV)와 이들의 고용자인 AMPTP(영화‧TV 제작자 연합) 간 계약 협상이 결렬되었기 때문이다. 마침 WGA(작가협회)에 소속된 1만1500여 명의 작가들도 지난 5월2일부터 파업 중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2대 축인 작가와 배우들이 모두 일손을 놓은 것이다. 지난 1960년 이후 최대 규모의 작가-배우 동반 파업이다.

7월12일, WGA 소속 작가들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넷플릭스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7월12일, WGA 소속 작가들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넷플릭스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오펜하이머’ 시사회장에서 집단 퇴장한 배우들

배우들은 파업 기간 동안 영화 촬영을 하거나 홍보 행사에 출연하지 않는다. 아바타, 글래디에이터, 데드풀 등 대작 영화들의 후속편이 제작에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배우들이 출연하는 TV 프로그램도 중단될 것이다. 수잔 서랜든, 제이슨 서데이키스, 브라이언 콕스 등 유명 배우들도 공개적으로 파업을 지지했다.

7월1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오펜하이머〉(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에서 킬리언 머피,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에밀리 블런트 등 유명 출연자들은 협상 결렬 소식을 듣자 집단 퇴장했다. 블런트는 시사회에 앞서 “파업이 결정되면 곧바로 시사회장을 떠날 것”이며 “단결해서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출연진 대표로 읽은 바 있다.

배우들은 7월14일 오전, 넷플릭스 캘리포니아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인 뒤 파라마운트, 워너브러더스, 디즈니 등 다른 제작사 및 OTT 대기업 쪽으로 이동했다. 이날 파라마운트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던 프랜 드래셔(Fran Drescher) SAG-AFTRA 의장은 밥 아이거 디즈니 CEO가 한 해 270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다고 비판하며 그를 비롯한 리우드 제작사 거물들을 “중세 시대의 지주 귀족”에 비유했다.

미국 HBO의 간판 드라마 석세션(Succession) 주연인 브라이언 콕스는 BBC(7월15일)와 인터뷰에서 “파업이 연말까지 지속될 수 있다”라며 “스트리밍 업체(OTT)들이 우리를 얼어붙게 만들어 때려눕히려 한다. 스트리밍으로 벌어들인 많은 돈을 작가나 연기자들과 공유하지 않으려는 욕망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카데미상 수상자인 수잔 서랜든은 피켓 시위 현장에서 “인공지능(AI)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에도 건드릴 수 없다”라고 말했다.

브라이언 콕스, “OTT 업체들의 욕망 때문”

이번 파업은 OTT 시장의 확대 등 엔터테인먼트 시장 및 관련 기술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작가‧배우들의 소득 하락과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

7월14일, 로스엔젤레스의 파라마운트사 주변에 모인 SAG-AFTRA와 WAG의 연합 시위대 ⓒAFP PHOTO
7월14일, 로스엔젤레스의 파라마운트사 주변에 모인 SAG-AFTRA와 WAG의 연합 시위대.ⓒAFP PHOTO

〈뉴욕타임스〉(7월15일)가 이 업계 통계를 인용‧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의 올해 영화 티켓 판매액(약 49억 달러)은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21%나 떨어졌다. 올 상반기 기대작이었던 〈인어공주〉 〈엘리멘탈〉 〈더 플래시〉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 등도 흥행 부진을 면치 못했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는 영화 티켓 수도 2019년의 79억 장에서 오는 2027년엔 72억 장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TV 비즈니스도 급격히 쇠퇴하는 추세다. 미국에서 케이블 또는 위성 TV를 시청하는 인구는, 2016년의 1억 가구에서 현재 6400만 가구로 줄었다. 이런 추세로 인해, TV 채널을 주된 비즈니스로 막대한 수익을 걷어온 디즈니, NBC유니버설, 파라마운트 글로벌,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등의 주가가 하락하고 있으며 일부 유명 채널의 매각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대기업들이 OTT 산업으로 뛰어들고 있다. 애플이나 아마존 등 영화‧TV 부문이 본업이 아니었던 업체까지 몰려드는 뜨거운 시장이다. 이런 환경에서 업체들은 제작 시스템을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바꿔야 한다. 즉, 시즌의 에피소드 수를 줄이고, 작가 고용을 더욱 유연하게 만들며, ‘레지듀어(residual, 영상을 송출할 때마다 제작 참여자들에게 지급하는 분배금)’는 낮추고, 인공지능 기술의 활용으로 인건비를 줄이려 한다.

이로 인해 OTT 대기업들의 수익은 늘었지만 배우와 작가들의 수입은 이미 크게 줄었다고, SAG-AFTRA는 주장한다. 미국 유력 IT 매체인 〈더 버지(The Verge)〉(7월15일)에 따르면, OTT 업체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봤는지에 대한 데이터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 물론 배우와 작가들에게 지급할 ‘레지듀어’를 줄이기 위해서다.

배우 얼굴 한 번 스캔하면 영원히 사용?

배우들이 파업을 선언하자 AMPTP는 “수많은 업계 종사자들을 재정적 어려움에 빠뜨릴 선택”이라며 “SAG-AFTRA 회원들을 위해 배우의 디지털 초상권을 보호하는 ‘획기적인 AI 관련 제안’까지 냈(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기자들이 그 ‘획기적 제안이 뭐냐’고 묻자 SAG-AFTRA의 수석 협상가인 던컨 크랩트리 아일랜드(Duncan Crabtree-Ireland)는 “단역 배우(영화에 출연하지만 대사가 없는 배우들)들이 일당을 받는 대신 자기 얼굴을 스캔하도록 허용하면, 제작사 측은 그 스캔 이미지와 초상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며 당사자의 동의를 받거나 보상해주지 않아도 영원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게 ‘획기적 제안’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성찰해보기 바란다”라고 대답했다.

7월14일, 뉴욕의 NBC 유니버설 앞에서 피켓을 들고 행진 중인 배우 제이슨 서데이키스 ⓒAFP PHOTO
7월14일, 뉴욕의 NBC 유니버설 앞에서 피켓을 들고 행진 중인 배우 제이슨 서데이키스.ⓒAFP PHOTO

〈더 버지〉(7월14일)에 따르면, AMPTP 측은 “거짓말”이라고 펄쩍 뛰며 성명서로 반박했다. “우리의 제안은 단역 배우의 디지털 복제본을 해당 배우가 고용된 영화에만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 외의 용도로 사용하려면 단역 배우의 동의와 협상이 필요하며, 최소한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생성 AI의 사용은 SAG-AFTRA와 AMPTP 사이의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였다. 지난 5월 파업에 돌입한 WGA도 AMPTP에 AI를 활용한 프로그램 스크립터 작성을 규제하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미국의 작가와 배우들은 이미 자신의 일자리를 AI에 빼앗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프랜 드래셔 SAG-AFTRA 의장은 기자회견 개회사에서 “지금 우리가 바로 서지 않으면 기계로 대체될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월14일 성명서를 통해 “배우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가 공정한 임금과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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