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술을 아는 사람들은 ‘로봇의 지배’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두려운 것은 극소수의 인간 권력자들이 인공지능으로 대다수를 지배하는 세계. 그러나 기술 발전은 ‘진보’와 동의어이며, 이에 대한 비판은 반문명적 야만이란 것이 우리 시대의 상식이다.

그러나 저명한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글루, 사이먼 존슨 MIT 교수는 최근 발간한 〈권력과 진보〉에서 ‘기술 발전=진보’라는 항등식을 맹렬히 질타한다. ‘권력’이라는 주요 변수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두 저자는 지난 1000년 동안 기술의 사회·경제사를 서술하며, 인류가 기술로부터 얻는 손익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권력투쟁’의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예컨대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에도 농업기술이 혁신되었지만, 이는 농민들의 생활수준 향상과 생산성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교회의 권력이 너무 강해서, 혁신으로 인한 경제 잉여들이 거대한 성당 건립 및 권력자들의 사치로 탕진되었다. 산업혁명 초기, 노동자들은 농민 시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 처했다. 19세기 후반, 노동자 계급의 환경이 개선된 것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권력이 강화된 덕분이다. 오늘날 우리가 조상들보다 나은 삶을 누리는 것은, 초기 산업사회의 시민과 노동자들의 조직화(권력화)로 권력자(자본 및 이와 결탁한 제도권 정치)들이 기술 및 노동조건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권력은 기술의 어떤 측면을 활성화하고 다른 측면은 무력화시켜 기술 발전의 방향까지 선택한다.

그래서 저자들은 ‘기술 발전=진보’라는 허황된 상식을 깨부수고, 대항(길항) 권력을 육성하며, 디지털 기술이 대자본의 사적 이익이 아니라 공동 번영 쪽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정책)을 모색하자고 주장한다. 지금의 불평등과 격차는 디지털 기술 자체라기보다 이 기술의 발전 방향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한국의 정치권에서도 일정한 지분을 가진 ‘보편적 기본소득’론을 ‘패배주의’라고 비판한다.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대다수 시민들이 일자리와 소득을 잃게 될 것이라는 체념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어떻게 시민·노동자가 권력을 확장해서 사회안전망 강화 및 좋은 일자리 창출 쪽으로 기술 발전 방향을 돌릴지 고민하자고, 저자들은 권고한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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