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64년째다. 일본 정부는 우리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강일출 할머니(81)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에게는 할머니들이 최고다. 일본 정부가 곧 할머니들이 원하는 대로 사과할 것이다.” 백발 노인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꾹꾹 눌러서 위로를 건넸다.

마이클 혼다 미국 하원의원이 8월12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는 ‘나눔의 집’을 방문했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이곳을 찾은 데 이어 두 번째다. 혼다 의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종군위안부 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가 공식 사과하고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인사다. 강원대에서 명예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으러 한국에 왔다가 나눔의 집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는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소설 〈잘가요 언덕〉을 쓴 탤런트 차인표씨도 함께했다.

ⓒ전문수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전쟁 피해를 증언했던 김군자 할머니(왼쪽 두 번째)와 재회한 혼다 의원(오른쪽).
혼다 의원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에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 3세로 전쟁 피해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전쟁 당시 일본계라는 이유로 콜로라도에 있는 일본인 수용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그는 30년간 고등학교 교사로 일한 후 캘리포니아 주의회 의원을 거쳐 2000년 연방 하원의원이 됐다.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자 혼다 의원에 대한 일본계 미국인의 지원은 뚝 끊겼다. 대신 미국 내 한인의 지원이 부쩍 늘었다. 일본 보수 세력이 뉴욕 타임스에 북한 인권을 문제삼는 광고를 냈을 때 그는 “남의 눈의 티끌보다 제 눈의 들보를 먼저 봐야 한다”라고 자신의 조국 일본에 일침을 놓았다.

위안부 결의안 통과되자 일본계 지원 ‘뚝’

혼다 의원은 “고 김순덕 할머니가 2년 전에 준 그림 〈못다 핀 꽃〉을 거실에 걸어두고 매일 네댓 번씩 본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혼다 의원은 전쟁 피해자와 풀뿌리 시민의 구실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장대비 속에서도 878차 수요집회를 마치고 온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존경의 말도 건넸다. 1992년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연다.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지 2년이 지났지만 결의안에 강제성이 없어서인지 일본 정부는 여전히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없다. 조급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혼다 의원은 “미국 말고도 9개 나라에서 미국과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고, 일본의 새 세대가 일본의 전쟁 범죄를 알게 되면서 일본 내 여론이 바뀌고 있다”라며 희망적 전망을 제시했다.

혼다 의원이 떠난 후 강일출 할머니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직후에 했던 “성숙된 한·일 관계를 위해서는 (일본에) 사과나 반성하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라는 발언을 언급하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강 할머니는 “혼다 의원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 믿는다”라고도 말했다. 한국 정부와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을 저 멀리 미국에서 일본계 3세인 마이클 혼다 의원이 대신 하고 있다.

기자명 정화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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