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AP Photo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AP Photo

최근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통상정책에 비판적인 기사를 여러 차례 썼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사보타주를 감행하는 등 이른바 ‘규칙 기반 무역 시스템’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반도체법’ 등은 다른 나라 기업들의 경영 행위까지 미국 멋대로 주무르겠다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전통적 반공 보수나 제국주의 성향의 노선과 결이 크게 다르다. 오히려 깜짝 놀랄 정도로 진보적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을 주도해온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른바 ‘설리번 독트린’의 그 사람)은 지난 4월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놀라운 연설(‘미국의 경제적 리더십을 갱신하기’)을 했다. 글로벌 진보세력들이 ‘신자유주의(이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라고 부르는 이념·정책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클린턴-오바마 시절 신자유주의의 핵심 교리들(‘시장은 자본을 항상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배분한다’ ‘모든 성장은 좋다’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연결될수록 더욱 평화롭고 협력적인 글로벌 질서가 만들어진다’)은 모두 틀렸다. 지금의 산업기반 위축, 극심한 불평등, 사회적 신뢰의 악화, 이에 따른 민주주의 위기 등은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유산으로 간주된다. 더욱이 미국이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성공적으로 연결시킨 중국은, 권위주의적인 데다 주변 국가들에 위협적인 나라가 되어버렸다. 미국 경제는 이런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 인식에 따라 바이든 정부는 국가의 적극적 경제 개입, 노동 기준과 복지제도 강화, 기후위기에 적극 대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 탈피 등을 국정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기조로 다시 구축해야 할 세계 통상 질서를, 설리번은 ‘새로운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부른다. 신자유주의를 상징해온 ‘워싱턴 컨센서스’를 갈아엎겠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런이 아니지만, 그의 행정부는 클린턴-오바마의 그것과 이념적으로 천양지차다.

다만 미국의 진보세력이 자신의 노선을 밀고 나가겠다는데, 왜 이렇게 마뜩잖은지 모르겠다. 그 노선이 이미 한국 산업의 진로에 엄청난 불확실성을 던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한국이 두 강대국의 밀월 관계 덕분에 누렸던 ‘좋은 시대’는 확실히 지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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