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개시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급격한 금리 인상 이후 글로벌 평균 기준금리가 1년여 동안 무려 3% 남짓 올랐다. 상당수의 경제학자들은 주택담보대출자들이 상환해야 하는 원리금이 크게 오르면서 ‘팔자’ 주문이 쇄도해 집값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큰 폭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집값 하락의 폭은 당초 예측보다 작다. 물론 일각에선 집값이 정부 정책에 따라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지만 결국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이런 의문은 단지 한국인뿐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관심사인 것 같다. 영국 유력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기사(6월12일)에서 나름의 진단을 내놓았다.

이 매체는 글로벌 차원의 주택 가격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부터 팬데믹 시기까지의 급격한 상승세에선 벗어났다고 본다. 그러나 금리 인상 이후의 하락세는 이미 진정되고 있으며 붕괴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것. 이에 따라 “주택 가격 하락으로 ‘내 집 마련'을 꿈꿨던 수많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썼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의 한 주택에 걸린 임대 광고 간판 ⓒEPA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의 한 주택에 걸린 임대 광고 간판.ⓒEPA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글로벌 주택 가격은 최근의 가장 높은 시기(팬데믹 당시)에 비해 3%(인플레이션을 반영하면 8~10%) 정도 낮은 상태다. 실질 가격 기준으로 2019년보다 높다니, 하락 폭이 아주 크지는 않다. 더욱이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선 올해 들어 오히려 완만한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주택 가격이 지난 3개월 동안 올랐으며, 미국의 주택가격지수는 지난 1월 대비 1.6% 상승했다고 한다. 유럽의 부동산 시장도 안정세다. 이 매체가 글로벌 종합금융회사인 골드만삭스의 전망을 인용·보도한 바에 따르면, 한국 역시 “주택시장 침체가 민간 소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의 정점을 이미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낑낑대며 조금씩 빠지지 폭발하지는 않을 것”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예상만큼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코노미스트〉는 일단 그 원인 중 하나로 이민을 들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의 경우, 팬데믹 혹은 과거의 최고치에 비해 두 배에 달하는 이주민을 받고 있다. 이런 신규 이민자들의 수요가 집값의 버팀목이 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순이민자가 10만명 증가할 때마다 집값이 1%씩 상승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가계 재정’이 과거의 경제위기 때보다 탄탄하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기, 가계들이 소비를 대폭 줄이면서 ‘초과 저축’이 쌓였다. 가계들은 이런 초과 저축 덕분에 더 많은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을 비교적 순조롭게 상환할 수 있다. 또한 세계금융위기 이후 팬데믹 당시까지 부동산에 투자한 가계 중엔 고소득층이 많다. 고소득층은 금리 상승을 버틸 만한 여유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유한 나라들의 최근 ‘소득 대비 부채 상환액(소득 중에서 원리금의 비율)’은 팬데믹 이전보다 오히려 낮은 상황이라고 한다. 즉, 가계들이 원리금을 상환하기 위해 ‘팔자’ 주문을 넣어야 할 이유가 이전의 경제위기 때보다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금융위기 이후 혹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경기가 완만하게 하락할 뿐이며 ‘최악의 상황(세계금융위기 당시의 부동산 시장 붕괴)’은 오지 않는다고 믿는다. 적어도 부유한 나라들에선 ‘소비자 신뢰도(consumer confidence : 소비자들이 시장 상황을 낙관적으로 전망하면 소비 성향을 높이고, 비관적으로 예측하면 줄이는데 이를 수치화한 지수)’가 지난해에 바닥을 치고 다시 오르는 중이며, 가계들 역시 여전히 풍부한 초과 저축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값 거품이 꺼지긴 하겠지만, “낑낑대며 조금씩 빠지지 폭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주장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