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면 때가 오는 게 세상의 이치인가 봅니다. 지금 남북 관계에 조그만 틈이 열리는 것을 보니 감개무량합니다. 적어도, 지난해 4월1일 노동신문에서 ‘이명박 역도’라는 말이 튀어 나왔을 때만 해도, 이제 모든 게 끝났구나 했습니다. 남북 간에 꽃피는 봄날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어야 했습니다.

그 전해인 2007년 10월. 북한은 대남·대미·대중 세 가지 방향을 놓고 활로를 저울질했습니다. 당시 대남 관계에서 활로를 모색한 주역이 바로 리제강 노동당 중앙위 조직지도부 부부장입니다. “겉과 속이 모두 빨간 철저한 사회주의자,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선이 왜 중국에 사대를 해야 하나’라는 말을 공공연히 할 정도로 강한 민족주의자”가 바로 그에 대한 평입니다. 그런 그였기에 남북 간 호혜적 관계 구축에서 ‘조선의 활로’를 모색하고자 했던 것은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남문희 편집국장
그러나 한·미 동맹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 초기의 경직된 자세로 인해, 그런 시도는 모두 물거품이 됐습니다. 북한은 발길을 중국으로 돌려야 했고,  북한 권력 내에서 그의 발언권 역시 약해졌습니다. 대신 그의 라이벌인 친중·실용주의자 장성택에게 모든 힘이 쏠렸습니다.

2008년은 바로 장성택의 해였습니다. 중국의 식량 및 경제 지원 약속은 장성택의 뒷심이 되어주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군부의 일부 세력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정남과 손을 잡았던 그는 김 위원장이 김정남을 비토하자, 올해 초 김정운을 후계자로 띄우기 위해 해외 언론을 활용하는 기민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와 손잡은 군부는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같은 대외 강경책을 통해 ‘김정일 부재’의 북한을 주도했습니다.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5월 말 장성택을 불러 더 이상 김정운 후계설을 유포하지 못하도록 중단시켰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였습니다. 그 뒤 클린턴 전 대통령과 현정은 현대 회장의 평양행이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지난 4월 말~5월 초, 김정일 위원장이 업무에 복귀하면서 장성택과 군부 연합세력의 독주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구체적으로는 바로 그 사람, 리제강 부부장이 권력의 축으로 복귀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복귀와 함께 후계 문제, 대남 관계·대미 관계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남북 관계를 위해 분명 또 한번 기회가 온 듯합니다.

기자명 남문희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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