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국가수사본부〉의 한 장면.ⓒWavve 갈무리
웨이브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국가수사본부〉의 한 장면.ⓒWavve 갈무리

“가자.” 백발의 베테랑 형사가 뱉은 한마디에 팀원 전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들을 태운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하는데, 원경으로 보이는 장소가 모두 유적지다. 천년 고도의 고요한 풍경 안에서 이질적인 소음을 만드는 이들은 바로 경북 경주경찰서 형사3팀 형사들이다. 파출소의 연락을 받고 그들이 출동한 곳엔 남성의 시신 한 구가 있다. “68세 남성. 미혼. 최근 함께 살던 어머니가 사망. 범죄나 타살 혐의 없음.” 함께 출동한 과학수사팀의 현장 감식이 끝나고 이웃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고인의 삶과 죽음이 허무하게 요약된다.

형사는 신고를 한 고인의 친구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넨다. “이렇게 (친구를) 오래 외롭게 두지 않으신 거. 잘하신 겁니다.” 밤은 점점 어두워지고 인터뷰에 응하는 형사의 표정에도 그늘이 드리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영화 같은 삶을 살았을 텐데…. 생을 마감할 때 주변에 누가 없었다, 쓸쓸하게 죽었다…. 그런 사람한테 제일 처음 가는 사람이 형사들이지.” 시신 수습이 끝나고 다시 고요해진 경주의 밤. 현장에 남은 형사들이 서로 담뱃불을 붙여주며 기도하듯 중얼거린다. “외롭고 고독하게 살았네.” 웨이브 오리지널 〈국가수사본부〉 9화의 오프닝 시퀀스다.

“어제 사람이 죽어서 인구가 한 명 줄어버린 관내를 오늘 아무렇지 않게 순찰해야 하는 직업.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떨어져 나온 탓에 그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직업. 그게 경찰관이더라.” (〈경찰관 속으로〉 (원도 지음, 이후진프레스 펴냄) 중에서)

또 다른 에피소드를 본다. 어느 여름밤, 강릉경찰서 강력4팀 형사 스무 명이 편의점 직원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다. CCTV를 보니 물건들을 봉지에 담은 한 남자가 계산대에서 칼을 내밀며 점원을 위협한 뒤 당황한 틈을 타 유유히 사라진다. 소위 ‘좀도둑’이지만 잃을 것이 없는 생계형 범죄가 더 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에 형사들은 촉각을 곤두세운다.

범인의 동선을 추적하기 위해 길에 있는 모든 CCTV를 재생해서 조합하고 범인이 숨어 있는 빈 건물을 찾아내 포위한다. 도망치려던 남자는 횡설수설하고 검거 현장엔 빈 과자 봉지들이 나뒹굴고 있다. 취조가 시작되고 남자는 ‘너무 배가 고파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연 없는 범죄자가 어디 있나? 남자는 고작 1만원어치 물건을 훔치기 위해 홀로 근무 중인 여성 점원을 향해 칼을 들었다. 치안을 위협한 범인에게 벌을 주는 것이 경찰의 의무. 동료 시민으로서 생기는 연민은 컵라면 하나 끓여주는 것으로 끊어내야 한다.

대체 이게 뭔가. ‘100% 리얼 수사 다큐’라는 홍보 문구와 박진감 넘치는 테마곡이 기대하게 했던 스펙터클 넘치는 액션물은 어디 가고, 〈극한직업〉 〈다큐 3일〉 〈인간극장〉의 호흡과 여운을 가진 형사들의 지친 일상만이 내 안에 남는다. 〈국가수사본부〉는 〈그것이 알고 싶다〉와 〈궁금한 이야기 Y〉를 연출했던 배정훈 PD의 첫 OTT 기획작이다. 연출자의 전작은 많은 것을 보증한다. 실제 범죄 사건을 각색해 구연하는 이른바 ‘범죄의 재구성’ 콘텐츠 대부분이 〈그것이 알고 싶다〉의 영향 아래 있기에 〈국가수사본부〉는 그 어떤 작품보다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부각된 작품일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13부작’이라는 애매한 회차의 에피소드까지 모두 시청한 결론을 말하자면 〈국가수사본부〉는 범죄자의 심리를 읽거나 사건 이면에 파고드는 것 따위엔 관심이 없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향한 헌정 다큐멘터리다.

경찰의 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

〈국가수사본부〉의 모든 에피소드는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시점에서 시작한다. 수사에 착수한 형사들의 업무는 매우 불규칙하고 가변적이다. ‘수사’란 예측할 수 없는 모든 종류의 노동을 뜻하기 때문이다. 흔히 형사의 일이라 생각하는 추격전과 취조, 보고서 작성 등은 그들이 맡은 수백 가지 업무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형사들은 대체로 범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노숙을 하거나,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하수구 구멍을 들여다보고, 야산을 파헤치고, 시민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시장·버스·택시·불특정 장소의 CCTV를 조사한다.

〈국가수사본부〉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향한 헌정 다큐멘터리다.ⓒWavve 갈무리
〈국가수사본부〉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향한 헌정 다큐멘터리다.ⓒWavve 갈무리

범인은 언제 집 밖으로 나올지 모르고, 쓰레기는 매일 수거되며, 하수구 구멍 개수는 경찰 인원의 몇십 배가 넘는다. 좌표가 없는 야산을 뒤지는 일보다 무모한 짓은 없을 것이며, 시민들은 경찰의 협조 요청을 귀찮아하고, CCTV는 기계마다 시간·장면을 기록하는 방식이 달라서 모을수록 어려워지는 퍼즐 같다. 관찰자의 거리를 유지하던 〈국가수사본부〉의 카메라도 한계를 느끼고 흔들린다. 그러다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형사의 얼굴에 꽤 오래 머문다.

다큐멘터리를 수백 편 만들어낸 김옥영 작가는 저서 〈다큐의 기술〉에서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개개의 팩트에 있는 게 아니라, ‘그 개개의 팩트를 어떻게 내러티브화했는가?’ 하는 맥락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말한다. “왜 맨날 우리가 잘못한 것만 찾아다니냐”라는 한 형사의 볼멘소리로부터 시작된 〈국가수사본부〉는 에피소드를 거듭하며 경찰이란 존재를 이해하기로 한 자신들의 결심을 노골적으로 내보인다. 탐사보도형 다큐멘터리에 익숙한 시청자는 경찰과 대립하거나 협력을 요청하는 존재였던 카메라의 태도 변화를 포착하면서 공권력에 대한 경계를 내려놓지 않고도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진 개인의 일상을 만나고, 문제적 상황을 해결하는 존재에게 문제적 상황이 발생하는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국가수사본부〉는 지상파 르포가 OTT를 통해 상업 다큐멘터리 작품이 될 수 있는지 자문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편성 시간이 자유롭게 보장된 OTT만의 특성을 이용해 연출자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시청자들이 60분 이하의 다큐멘터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한다. 자극적이고 선정적 표현이 가능한 제작 환경 앞에서는 오히려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며 조심스럽게 모두가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미리 제시하기도 한다. 작품 전반에서 보이는 이런 시도들은 ‘실제 범죄 사건을 소재로 삼은 콘텐츠는 그것을 담는 방식과 표현에 관한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라는 주장처럼 느껴진다.

“찾았다.” 결국 형사는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봉투와 범행 현장 주변의 모든 하수구를 뒤져 살인의 결정적 증거물을 확보했다. 난항에 빠진 수사의 열쇠를 찾았는데 형사들은 덤덤한 얼굴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증거를 발견한 것은 또 다른 수사 과정의 시작이며, 사건의 끝에 다가갈수록 피해자와 그 유족의 슬픔은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국가수사본부〉의 카메라 또한 그런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 듯 상황에서 한 걸음 물러선다. 대신 승합차를 타고 이동하는 형사들의 실없는 농담을 비추며 성취를 해도 기뻐할 수 없는 그들의 애환을 담아낸다. 그 서글픈 감정은 카메라를 거쳐 타인의 비극을 애도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로 돌아온다. 다수가 외면하는 거대한 슬픔을 대신 감당하며 치우고 수습하는 존재는 비단 경찰이란 직업에 한정된 것은 아님을 깨닫게 한다.

기자명 복길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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