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0일 중구 민주노총에 주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 찬반 조사판이 놓여 있다. 이날 민주노총은 노동시간 개악 폐기투쟁을 발표했다.ⓒ연합뉴스
3월20일 중구 민주노총에 주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 찬반 조사판이 놓여 있다. 이날 민주노총은 노동시간 개악 폐기투쟁을 발표했다.ⓒ연합뉴스

직업이 직업인지라 정부 보도자료를 자주 접하게 된다. 정해진 양식 안에 행정적인 용어들이 ‘신명조’체로 빼곡히 적혀 있는 보도자료를 보면서 무언가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가장 강렬한 감정을 꼽으라면 따분함이라, 여기에 나열돼 있는 무미건조한 글자들이 실제 시행되었을 때 사회에서 일으킬 파급력을 되새기며 흐트러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3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보도자료는 놀라왔다. 길다고 할 수 없는 8쪽짜리 보도자료를 읽는 동안 내면에 극심한 동요가 일었다. 고용노동부는 현행 주 최대 52시간 근무를 주 69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이번 제도 개편의 지향점을 “근로자의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의 보장”이라고 소개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일반 상식과 배치되는 정부의 파격적인 주장에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근로시간에 대한 노사의 ‘시간 주권’을 돌려주는 역사적인 진일보”라는 대목에서는 실소가 나왔다. 획일적이고 경직된 지금의 제도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지 않는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우롱당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고용노동부는 그 근거로 일정 기간 유연하게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독일과 영국 사례를 들었는데, 그러면서 버젓이 독일과 영국의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48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병기해놨기 때문이다.

업종에 따라, 경기 상황에 따라,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할 필요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산업계의 이해가 반영된 요구이다. 불규칙·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질 유인이 다분한 제도를 내놓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한다면 이는 기만일뿐더러 성공적인 정책이 될 수도 없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정부의 선의를 십분 이해해서 그 주장처럼 전체 노동시간이 늘지 않는다 할지라도 불규칙 노동 자체가 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이번 개편안은 “근로자의 건강권을 위한 것”이라고 발표하는 순간 실제 노동자들에게 닥칠 피해는 사라져버린다. 측정할 수도, 대비할 수도 없어진다. 뒤이어 나온 대통령의 지시처럼 주 69시간이 아니라 주 60시간이 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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